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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Feb 19. 2021

억대 졸업장을 받다

후원자 : 부모님

드디어 대학교를 졸업했다.

입학하면서부터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졸업하고 싶다'였다. 빨리 졸업해서 사회로 나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에 매일같이 수강편람을 들여다보며 학점 계산을 했다. 남들은 대학 입학의 설렘과 함께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 들을 때, 나는 들어야 하는 수업을 찾아다녔다.

대학교 1학년, 엑셀을 켜고 4학년까지 수강 계획을 짰다. 목표는 7학기 내에 졸업 학점을 채워 조기졸업을 하든가, 8학기에 취업을 하는 것.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려오니 벌써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실 빨리 졸업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독립이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돈을 아껴 아껴가며 딸내미, 아들내미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함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늘 사과를 달고 사셨다. '이만큼밖에 못해줘서 미안해', '그래도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자식들 기죽지 않게 키우겠다고 본인들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포기해가며 아낌없이 돈을 대줬다.

코로나 19로 인해 졸업식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졸업행사도, 송별회도 없이 졸업자는 정해진 날짜에 학교에 방문해 졸업장을 받으면 끝이었다. 졸업식 가야 하지 않냐 묻는 아빠의 말에 학교에 가서 학위증만 받아오면 되니 고생스럽게 멀리까지 오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고민 끝에 대학 졸업사진 한 장 없는 건 아쉬워서 안 된다며 단번에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셨다.

학사모를 빌려 쓰고 졸업장과 꽃다발을 양손에 쥐어 드니 꽤나(?) 졸업식 분위기가 났다. 졸업식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차려 입고 학교에 서니 복잡한 감정과 함께 4년이 스쳐 지나갔다. 학위증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이거 하나 받기 위해 이렇게 고생했나 싶었다. 가만 생각하니 이 학위증 하나 받기 위해 들인 돈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대학 등록금에, 생활비에. 따지고 보면 수천만 원이 넘는 부모님의 재정적 지원과 고생으로 완성된 졸업장이었다.

부모님은 나의 졸업사진을 찍으며 나보다 더 기쁜 웃음을 지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왈칵 눈물이 고였다. 딸 아쉽지 말라고, 이 순간을 위해 멀리까지 와 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했다.

나름의 졸업식을 마친 후, 부모님은 나를 끌고 백화점에 갔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이라며 가방을 하나 사주겠다고 선포하셨다. 비싼 가방 필요 없다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무조건 하나는 있어야 한다며 백화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구찌, 루이비통, 버버리•• 명품관을 스쳐 지나오며 아빠는 '저런 명품백 못 사줘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왜 미안해~ 저렇게 비싼 건 부담스러워서 내가 싫어. 그리고 안 예뻐~' 웃으며 말을 받아넘겼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가방을 고르며 가격을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빙빙 돌고 돌며 결정을 하지 못 해 잠시 소파에 앉았다.
'나 근데 진짜 안 사도 될 것 같아! 아니면 내가 인터넷으로 살게!' 고민 고민하다 부모님 생각한답시고 내가 던진 말이었다. 

‘네가 이러면 더 속상해. 엄마 아빠 이거 사줄 정도는 돼! 편히 받아. 늘 좋은 거 한번 못 사줬잖아.’

아빠가 말했다.


결국 부모님을 위해(?) 가방을 샀다. 부모님은 예쁘게 잘 쓰는 게 엄마 아빠를 위한 일이라며 "예쁘다 예뻐! 빛난다!" 해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꼭 명품 사주신다는 말을 덧붙였다.

딸을 위해 졸업식 사진 한 장 찍으러 세 시간을 와주셔놓고 '명품' 못 사줘서 오히려 미안해하시는 부모님을 보니 눈물이 차올랐다. 매일 잘해주는 것밖에 할 줄 모르면서 매번 미안한 게 부모 마음인가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였다.

월급을 받은 후 큰 지출이 부담돼 부모님 선물을 망설였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본인 옷 살 때는 이것저것 비교해가며 오백 번도 더 망설이다가도, 딸 아들 사주는 거라면 고민 없이 결제하는 게 부모님이신데.. 내가 그걸 잊고 살았다. 학교 앞에서 파는 꽃들 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예쁜 꽃을 고르고, 비싼 가방을 사주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들. 아낌없이 주는 그들은 늘 ‘아빠 엄마’였다.

다음날 아침,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부모님과 인사했다. 객지 생활 8년 차, 이런 헤어짐이 익숙할 때도 되었지만 유독 떨어지기 싫은 날이었다. 부모님이 떠나신 뒤 나에게 남겨진 것(?)은 깨끗해진 자취방과 전날 사주신 가방이었다. 아빠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미안한 마음만 가득해 눈물이 났다. 나 철 좀 든 건가. 하지만 난 제대로 고맙다고 표현도 못 하는 못된 딸이다. 다음번에 집에 갈 땐 양손 가득히 가봐야겠다.

아빠, 엄마. 당신들 덕에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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