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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Oct 03.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22

외식 시장은 가성비의 프랜차이즈와 장인정신의 자영업자로 양분되어 있다

2019.4.9 (화)


밖에서 깍깍대며 우는 까마귀 소리에 일어날 때가 됐나 싶어 무거운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시원하게 물을 한 잔 마시고 창문 너머 텐몬칸 공원을 보고 있는데, 어제 못한 검은 모래찜질을 생각하니 갑자기 뭔가 아쉽고 분하게 느껴졌다. 어제 모래찜질을 했었더라면 이부스키를 다시 안 가도 되고 그 시간에 다른 곳을 가거나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그 시간이 아쉬워 이부스키의 상징인 검은 모래찜질을 안 하고 돌아가면 나중에 후회가 막심할 거 같아 다시 가봐야 할 건 같고, 타네가시마로 출발하기 전에 언제 가는 게 좋을지 아침부터 일정 구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늘은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 여행 계획을 짜기로 했으니 이부스키를 갈 수 있는 날은 내일 아니면 모레인데, 타네가시마로 출발하는 전날인 모레에는 짐을 싸야 하니 그 날 원정을 갔다 오는 건 부담스러울 거 같고, 결국 남은 일정은 내일밖에 없어 내일 다시 이부스키를 다녀오는 것으로 하고, 그 일정에 맞춰 남은 전체 일정을 구상하기로 하였다. 

방 보단 아무래도 카페에서 작업하는 게 효율적일 거 같아 나갈 채비를 하고, 오전 9시쯤 호텔을 나서 늘 가던 탈리스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우선 급한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 숙소를 먼저 잡기 위해 여행 책자와 포털 사이트를 번갈아가며 검색을 하였다.  

먼저 타네가시마는 야쿠시마 대비 방문 비중이 적고 방문한다고 해도 대부분 자동차를 렌트해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나오기 때문에 호텔 정보가 많지 않았는데, 가고시마에서 들어가고 야쿠시마로 나가는 페리 터미널이 있는 니시노오모테(西之表)에 설립된 지 170년이 넘은 호텔이 있다고 하여 별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예약을 하였다. 

야쿠시마는 타네가시마에서 들어가고 가고시마로 나가는 페리 터미널이 있는 미야노우라(宮之浦) 쪽으로 알아봤는데, 혹시 야쿠시마에서 같이 등산할 수 있는 일행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방을 쉐어하는 게스트 하우스로 예약을 하였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숙소 예약을 끝내고 나니 큰 산 하나를 넘은 거처럼 속이 후련해졌다. 


다음은 타네가시마에서 가 볼만 한 곳을 검색하였는데, 주요 명소인 텟포칸(조총) 박물관, 카도쿠라 곶(조총 유래지), 우주 센터를 거점으로 라이딩을 하면서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면 괜찮을 거 같았다. 이동 루트를 짤 때 느꼈던 것은 주요 명소 간 거리를 고려했을 때 자전거로 이동하니 하루가 필요하지 차로 이동하면 반나절이면 되는 곳이라 왜 대부분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야쿠시마에서 등산 코스는 정해져 있으니 나중에 보기로 하고 해안 라이딩할 때 가 볼만 한 곳 중심으로 찾아보았다. 이나카하마 해변 (바다거북이 구경), 세이부린도(세계 자연유산 지정 원생림 지대 통과 도로), 오코노타키 폭포(일본 100대 폭포), 해수 노천탕 등을 둘러보면 좋을 거 같았다. 


정신없이 일정 작업을 하다가 시간을 보니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잠깐 리프레쉬하고 싶기도 하고 살짝 허기지기도 해서 나가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보니 여기 와서 버거를 제외하고는 프랜차이즈 식당에 안 가본 거 같았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 둘러보다가 스키야(すき家)라고 하는 일본 전역에서 손꼽히는 규동 프랜차이즈 식당이 보여 가보기로 하였다. 

가게 입구에 있는 현란한 음식 사진과 경쟁력 있는 가격이 방문을 유인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노인 혹은 학생들이 대부분 가게 안을 메우고 있었다.

어떤 메뉴로 할지 메뉴판을 보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서 '인기 No.1'라고 쓰여있는 '3중 치즈 규동'(500엔)을 주문하였다.


맛은 나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와우 할 정도로 맛있지도 않았다. 500엔이라는 가격을 고려했을 때는 꽤 가성비가 괜찮은 반대로 가격이 1,000엔이었다면 별로였을 거라고 느껴졌는데, '일본에서는 딱 지불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는 나의 가설을 이제는 '나만의 이론'으로 받아들여도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스키야라는 요식 프랜차이즈를 보면서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일본 외식 시장은 '가족 비즈니스'와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자영업자와 '대자본'을 무기로 가성비를 극대화한 프랜차이즈로 양분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가업을 이어받는 일본 대부분의 요식 자영업자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게 고유의 레시피를 계승받아 그것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매사 노력하고 소비자들도 그것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에 좀 더 비싸더라도 지불 의향이 있다고 했을 때, 비교적 최근에 생긴 프랜차이즈들이 공략할 수 있는 곳은 자영업자보다 음식의 퀄러티는 조금 떨어지기만 확실한 가성비를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이는 퀄러티의 자영업자와 가성비의 프랜차이즈가 각자의 영역 침범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장 구조이지 않을까 는 생각에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졌다. 퀄러티 혹은 가격을 쫓는 건 소비자의 본능이자 권리이기 때문에,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골목 상권을 침범하는 존재로 무조건 비난하는 것이 맞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침범 속에도 잘되는 개인 전문점들이 분명 있기 때문에, 개인 자영업자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전문성이나 차별성을 보유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계발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개선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만이 현재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소화도 시킬 겸 마루야 가든에 있는 로프트에 가보기로 하였다. 로프트는 항상 올 때마다 다양하고 기발한 상품들이 많아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데, 이번에는 지난번에 자세히 보지 못했던 생활용품 쪽을 둘러보았다. 

여성 가방과 남성 구두 케어 섹션이 인상적이었다. 'Urban 여자 비즈 스타일'이라는 가방은 노트북 같이 업무에 필요한 용품뿐만 아니라 보온병, 도시락, 우산 등 여성이 일상에 필요한 용품을 효율적으로 넣을 수 있게 구성된 내부가 기발하였다. '엠.모우브레이(m.mowbray)'라는 구두 케어 브랜드가 제안하는 단계 별 구두 관리 방법과 제품들은 '제조뿐만 아니라 관리에 있어서도 장인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해 역시 일본답다 싶었고, 평소 구두 신는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브랜드라고 느껴졌다.  


로프트를 둘러보고 나와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건물 안내도를 보면서 혹시 안 가본 곳이 있나 확인을 해보았다. 자세히 보니 지하 1층에 있는 그로서리(Grocery)는 아직 안 가봐 나가는 길에 잠깐 둘러보기로 하였다.  

우리로 치면 백화점 식품관 같은 곳이었는데, 전반적으로 분위기도 고급스럽고 취급하는 제품도 프리미엄 제품 중심이었다.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쪽이 주류다 보니 주류 코너에서 맥주나 하이볼 같은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주종 별로 전국구, 지역구 상관없이 브랜드 수가 많고, 같은 브랜드 내에서도 맛과 도수별로 종류도 다양했는데, 이 곳 매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일본 주류 시장의 규모와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중에 방에서 혼술용으로 마시기 위해, 편의점에서는 팔지 않는 눈에 띄는 맥주, 하이볼, 과실주 몇 개를 구매한 후 마루야 가든을 빠져나왔다.  


몽벨 매장으로 이동해서 야쿠시마에서 등산 시 사용할 등산 장갑을 구매하였다. 지난번에는 자전거 가방을 구매하느라 자세히 못 봐 몰랐는데, 등산 장갑뿐만 아니라 등산 의류 및 기타 악세사리들도 용도에 따라 그 종류가 정말 다양하였다. 우리나라 등산 브랜드랑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디테일한 면에서 조금 더 깊이가 있는 거 같아 사용자의 니즈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제품을 만들어 낸 브랜드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다.  


장갑 구매 후 오전에 못다 한 야쿠시마 여행 계획을 좀 더 짜 보기 위해 카페에 가기로 하였다. 아침에 갔던 탈리스 커피는 또 가긴 싫어 호텔 주변에 갈 만한 다른 카페가 있나 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무자키(むじゃき)라고 하는 빙수집이 눈에 들어왔다. 무자키는 일본 전국적으로 시로쿠마(白熊, 전통 팥빙수)로 유명하여 내국인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도 가고시마에 오면 필수 코스로 들르는 곳이라고는 알고 있었는데, 이 가게 앞을 하루에 몇 번씩 지나다녔으면서도 나중에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가고시마에서의 일정이 얼마 안 남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무자키 간판을 보니 오늘이 가봐야 하는 바로 그 날이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빙수 한 그릇 먹으면서 여행 계획 구상하는 것도 좋을 듯싶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곳의 대표 메뉴인 시로쿠마 작은 사이즈를 주문하였다. 가격(510엔) 대비 과일이랑 빙수 양도 많고, 맛도 달달해 여행 계획 구상 전 기분 전환 하기에 딱 좋았다. 


야쿠시마 등산 일정을 어떻게 가져갈지 검색을 쭉 해보았다. 야쿠시마의 상징인 시라타니운스이쿄(애니메이션 원령공주 배경)와 조몬스기(수령 7,200년 삼나무) 산행 코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잘 나와있어 어느 날에 어딜 가는 게 좋을지 전체 틀을 잡기는 쉬웠는데, 거기까지 가거나 다시 돌아오는 버스 운행 정보는 찾기가 어려워 등산을 제외한 나머지 일정을 어떻게 짜야할지는 고민스러웠다.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오늘은 여유 있게 여행 계획 짜는 걸 생각했건만, 아침부터 장시간 이것저것 보고 신경 쓰면서 계획을 짰더니 피곤하고 집중도 잘 안되었다. 호텔 방으로 돌아가 잠시 쉬면서 리프레쉬를 하기로 하였다. 


방에 와서 잠깐 쉬니 머리가 조금은 맑아지는 거 같았다. 타네가시마와 야쿠시마 일정 계획은 거의 잡아놨고 출발 전까지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검은 모래찜질 외에 아직 별도 계획이 없는 내일 일정을 고민해보기로 하였다. 


원래는 이부스키에 가서 모래찜질만 하고 바로 가고시마로 돌아와서 남은 오후 일정을 보낼까 하였다. 하지만 모래찜질만 하고 오기에는 왕복 2시간이 넘은 이동 시간이 조금 아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는 야쿠시마에서의 등산을 제외하고는 등산 계획이 없었는데) 어제 본 가이몬다케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한 번 올라가 보고 싶기도 하고, 2번이나 되는 검은 모래찜질 시도 실패에 대한 '설욕'으로 산 정상에 올라섰다 내려오면 뭔가 속이 후련할 거 같아, 새벽에 산에 갔다가 내려와서 모래찜질을 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할까 고민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변수는 내일 아침부터 비가 올 수 있다는 일기 예보였다. 일본 일기 예보의 정확성을 고려했을 때는 등산 계획을 접는 게 맞으나, 내일 아니면 갈 기회도 없어 혹시라도 비가 안 올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쉽사리 등산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계속 고민한다고 해도 답이 없으니 일단 두 개 옵션을 모두 준비해놓고 내일 새벽 날씨를 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었다.   


내일 일정의 틀이 잡혀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는지 배가 슬슬 고프기 시작하였다. 저녁은 닭사시미에 가볍게 한잔할까 하였다. 가고시마 지역에서만 먹는다는 걸 알고 나서 그런지, 여기 있을 때 아니면 더 이상 맛 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더 구미가 당기는지 이상하게 계속 닭사시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호텔 직원이 추천해 준 다른 닭사시미집인 사쓰마킹(薩摩きんぐ)이라는 곳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가게가 텐몬칸과 가고시마중앙역 중간쯤에 위치해 있어, 나가는 김에 먼저 중앙역 쇼핑몰에 잠깐 들렀다 가기로 하였다. 


트램으로 중앙역으로 이동하여 빅카메라(ビックカメラ)라고 하는 가전 매장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전제품들은 여기에 다 모아놨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품 카테고리와 종류가 다양하였고, 가전 매장에서 가전제품 외에 여행, 운동기구, 주류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제품들도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빅카메라도 여타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거처럼 단순 가전 매장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중앙역 상가 건물을 빠져나와 15분 정도 걸어서 사쓰마킹에 도착하였다. 평일 저녁임에도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이 곳의 대표 메뉴로 보이는 닭사시미 타타키와 소주 온더락을 주문하였다. 사시미 식감이 조금 거칠긴 했지만 소주랑 곁들었을 때 조화가 꽤 괜찮았다. 

현지인들을 주로 무엇을 먹나 쓱 둘러보았다. 가고시마가 소주로 유명한 곳이라 대부분 소주를 마실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남자들도 소주가 아닌 맥주나 하이볼을 마시고 있었다. 현지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해 나도 하이볼을 한잔 더 주문하여 마셔보았다. 편의점 캔으로 먹을 때와 달리 청량감도 좋고 술집에서 먹어서 그런지 취기도 적절히 올라는 게 기분이 좋았다. 


내일 일정을 생각했을 때 늦지 않게 방으로 복귀하는 게 날 거 같아 가게를 나와 호텔로 향하였다. 걸어가는 동안 미세하게 비가 내려 내일 아침에 진짜 비가 오긴 오려나, 등산은 어렵겠는데 원래 계획대로 찜질만 하고 와야 하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나와서 혹시 모르니 일단 등산 장비들을 챙겨 놓은 후 내일 기차 출발 시간 일정을 확인하고 있는데, 창 밖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가 아까보다 좀 더 굵고 크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아까 술이 조금 부족했는지, 아니면 등산 못 갈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생각에 한 잔 더 해도 괜찮겠다 싶었는지, 뭔가 아쉬운 마음에 마루야 가든 슈퍼에서 산 하이볼 캔 하나를 더 마시면서 일기예보에 따른 플랜 A와 B 일정을 리뷰하였다.


새벽에 비가 오지 않아 가이몬다케 등산을 한다면 중앙역에서 오전 6시 20분 기차를 타야 하는 지라, 일단은 5시 반에 일어나기로 하고 더 늦기 전에 침대 속으로 들어가 깊은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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