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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썸준 Oct 13. 2020

일본 가고시마 한 달 살기 : Day29

가고시마에서 만난 인연들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전하다

2019.4.16 (화)


야쿠시마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전에 가고시마로 향하는 배에 탑승하기 전까지 미야노우라에서 별다른 일정을 계획하지 않았던 터라 아침에 여유 있게 일어나려 했으나, 요 며칠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몸에 배었는지 잘 잤다 싶어 눈을 떠보니 아침 6시 40분이었다. 좀 더 눈을 붙여보려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으나 잠도 잘 안 오고 오히려 잠에서 점점 깨는 거 같아 차라리 체크아웃 전에 미야노우라 동네나 한 바퀴 슬슬 둘러보고 오는 게 낫겠다 싶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나갈 채비를 마친 후 오전 8시쯤 자전거를 갖고 숙소를 나와, 숙소에서 미야노우라 대교 쪽으로 향하는 뒷길을 따라 이동하였다. 어제보다 구름도 어둑어둑 끼어있고 기온도 살짝 낮아 분위기가 뭔가 차분하고 가라앉아 있었는데, 오늘이 나의 야쿠시마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하늘도 아는지 같이 아쉬워해주는 거 같았다. 

자전거 체인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주변을 둘러보며 이동하다가 미야노우라 대교에 도착하였다. 다리 위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눈 앞에 흐르는 강을 보고 있으니, 3박 4일 동안 정들었던 야쿠시마를 곧 떠나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이 점점 커져갔다. 야쿠시마 여행 중에 얻은 경험과 교훈을 가슴속에 잘 새겨 앞날의 성공을 위한 자양분으로 잘 쓰겠노라 다짐을 한 후, 다리 건너 동네 주변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복귀하였다. 


복귀 후 씻고 짐을 꾸린 후, 10시 45분 배에 탑승하기 위해 10시가 조금 안돼서 체크아웃을 한 후 숙소를 나섰다. 페리 터미널로 가는 길에 야쿠시마 관광센터에 들러 오늘 가고시마에 도착해서 인사드릴 몇몇에게 드릴 야쿠시마 기념품을 구매한 후 터미널로 이동하였다.  


터미널 주변은 야쿠시마를 막 도착해 어디론가 향하려는 자와 곧 떠나려는 자들로 북적였다. 내가 느꼈던 그리고 느끼고 있는 거처럼, 도착한 자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떠나는 자는 아쉬움이 얼굴 전체에 가득해 보였다.  

건물 주변 공터에서 자전거 분해 및 패킹 작업을 한 후, 대합실 안으로 이동해 대기하다가 승선 안내 방송이 나와 페리에 탑승을 하였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페리가 엔진 소리를 뿜어내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선착장을 빠져나와 유유히 뱃머리를 돌린 후 힘차게 앞으로 가속하기 시작하였다.

야쿠시마를 뒤로 한채 가고시마를 향해 가고 있으니, 주어진 모든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하는 요원처럼 마음이 홀가분하면서도, 앞으로 있을 인생에서의 또 다른 미션들을 생각해보니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몹시 비장해졌다.      


야쿠시마를 출발해 1시간 정도 망망대해를 달렸는데 저 멀리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가이몬다케였다. 가이몬다케와 옆쪽으로 늘어서 있는 해안을 보고 있으니, 이부스키에서 했던 라이딩과 검은 모래찜질 추억들이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고, 불과 1~2주 전 일이지만 마치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창문 너머 사쓰마 반도 해안도 바라보며 그간의 추억들도 같이 회상해보면서 한 시간 정도 더 이동한 끝에, 마침내 가고시마 페리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사흘 만에 다시 가고시마로 돌아오니, 오랜 외유를 마치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 거처럼 주변에 보이는 광경 하나하나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고, 바다 건너 오늘도 우뚝하니 서 있는 사쿠라지마에게 나 없는 동안 가고시마는 잘 지키고 있었냐며 인사를 건네보았다. 터미널 주변 공터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고 짐 가지를 정리한 후, 오늘 묵을 숙소가 있는 텐몬칸으로 이동하였다.


오늘 하루 묵을 숙소는 AI 호텔이라는 곳이었다. 짐을 아파호텔에 맡겨놨던 터라 같은 곳에서 하루 더 묵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오늘은 빈방이 없어 주변에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다가 이 곳으로 잡게 되었다.  


호텔이 있는 텐몬칸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였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라 호텔 직원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동할 때 불편한 큰 배낭들만 먼저 리셉션에 맡겨놓고, 오늘 일정을 보기로 하였다. 


오늘은 내일 귀국 전 마지막 날인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기 보단 짐을 정리하면서 가고시마에 한 달 동안 있으면서 도움을 받은 분들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전할 계획인데, 마음 같아선 모든 분들을 찾아뵙고 싶지만 시간 관계 상 그럴 수 없어 텐몬칸 주변에 계신 분들에 한해 찾아뵙기로 하였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와 도움받은 분들을 찾아뵙기 전에 먼저 점심 식사부터 하기로 하였다. 가고시마에서의 마지막 점심인데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가봐야 하지 하고 찾아놨던 가고시마 유명 라멘집 중에 아직 못 가본 곳이 생각나, 마침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기도 해서 그리로 가보기로 하였다. 


텐몬칸에 있는 코무라사키(こむらさき) 라멘이라는 곳인데, 가게에 가서 보니 1950년에 개업해서 영업한 지 거의 70년이 다 된 오래된 식당이었다. 혼자 와서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라멘 한 그릇을 주문하여 먹었다. 진정한 고수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듯, 겉으로 봤을 때는 화려하지 않고 평범해 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깔끔하면서도 깊은 국물이 인상적이었고 잘 삶아진 면발과의 전체적인 조화도 훌륭하였다. 

라멘 한 그릇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오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내일부터는 가고시마 라멘을 먹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첫 번째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찾아간 곳은 Fun Ride 자전거 샵이었다. 여행 초반에 자전거 점검부터 해서 중간중간 체인 및 타이어 교체까지, Fun Ride 사장님이 안 계셨더라면 가고시마에서의 라이딩 자체가 불가했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텐데,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양심적이고 성심성의를 다해 봐주셨기에 계획했던 모든 라이딩들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 귀국 전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사를 하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사장님께서 (자전거에 또 무슨 문제 있어 온 줄 알고 걱정하시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지만) 반갑게 나를 맞아주셨다. 자전거에 이상이 있어서 온 건 아니고 요 며칠 타네가시마랑 야쿠시마에 갔다 왔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덕분에 가고시마에서 라이딩을 잘할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였고, 야쿠시마에서 산 양과자도 같이 건네드렸다. 

사장님도 환하게 웃으시면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받기만 하는 게 뭐하셨던지 Fun Ride 스티커와 에너지 젤 같은 것들을 답례품으로 주셨다.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다음에 가고시마에 다시 오게 되면 찾아뵙겠다고 한 후 가게를 빠져나왔다. 


다음으로는 찾아간 곳은 아파호텔이었다. 짐을 찾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호텔에 묵었던 25일 동안 1층 로비를 지나칠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해주시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세심하게 챙겨주시고, 문의 사항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덕분에, 집처럼 편하게 잘 지낼 수 있어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흘 만에 아파호텔을 다시 보니 엄청 반가웠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건네면서 짐을 맡겼을 때 받았던 번호표와 함께 야쿠시마에서 산 과자 선물도 드리면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감사했다, 덕분에 여행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말을 건넸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뭐 이런 것까지 주냐라는 표정으로) 괜찮다고 손사래 치셨으나 나도 괜찮으니 받으시라고 하였고, 그럼 직원들과 나눠서 잘 먹겠다고 하시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주셨다. 

교대 근무다 보니 모든 직원분들에게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짐을 찾고 인사를 드리면서 그간 정들었던 호텔을 빠져나오니, 이제는 여행의 끝부분에 거의 다 왔구나라는 느낌이 확 밀려 올라왔다.  


아파 호텔에서 나왔을 때가 거의 오후 3시가 다 됐을 때라, 맡겨놨던 짐도 찾았겠다 호텔 체크인 후 어느 정도 짐 정리를 미리 해놓는 게 낫겠다 싶어 AI 호텔로 이동하였다. 

배정받은 방으로 이동 후, 바닥에 전체 짐들을 쫙 깔아보았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에 가고시마에 있는 동안 구매한 짐까지 추가돼서 그런지 짐을 싸야 하는 양이 어마어마하였다. 단시간 내에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우선 호흡을 가다듬을 겸 호텔 내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보았다. 

물건 종류 별로 구분해놓고 캐리어와 배낭 여기저기에 나눠 넣으면서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었다. 이 정도면 얼추 다 정리한 거 같아, 귀국 후 지인들에게 선물할 기념품을 사러 나갔다 오기로 하였다. 


호텔 옆 마루야 가든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구매하였다. 7시가 조금 넘어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이미 해는 지고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식사 시간대가 되기도 했고 살짝 허기져 뭘 먹을까 하는데 지나가는 길에 KFC가 보였다. '100% 국내산 닭 사용'이라는 문구를 보고 일본산 닭을 이용한 치킨 맛은 어떨지 갑자기 궁금해 치킨 몇 조각을 테이크 아웃하였고, 치킨에 술이 빠질 수 없기에 편의점에서 닭요리와 좀 더 어울린다는 '선토리 토리즈 하이볼'을 구매해서 방으로 올라갔다. 


먼저 하이볼을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가고시마 여행 후반부에는 맥주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하이볼을 중심으로 많이 마셨었는데, 오랜만에 마시는 하이볼이 뭔가 반갑고 맛도 청량해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일본산 닭을 이용한 치킨 맛은 뭐가 좀 다르려나 했는데 사실 한국 KFC 치킨과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물론 재료도 중요하겠지만 치킨은 튀김옷을 입혀 튀겨내는 스킬과 양념에 따라 맛이 좀 더 좌우되지 않나라는 생각에, '국내산'이라는 문구는 우리나 일본이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 도구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치하(치킨+하이볼)를 하면서 기분도 업됐겠다, 구매한 기념품까지 해서 짐도 다 정리했겠다, 밖에서 한 잔 더 하며 가고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하고 싶어 다시 호텔 밖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해적선이었다. 한 잔 생각날 때 부담 없이 갈 수 있어 가고시마에 있는 동안 나에게는 동네 단골 술집과 같이 편안한 곳이었는데, 귀국하기 전에 사장님께도 작별인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늘 앉던 자리에 앉으며 사장님께 인사를 건넸고, 한 동안 안 보이다가 오랜만에 왔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맥주와 안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한국에서 자전거 타러 온 사람이라고 소개해주셨다. 나도 그 간 라이딩했던 곳에 대해 얘기하면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렸고, 사장님께서도 그러냐면서 조심히 돌아가라라고 하셨다. 남은 술잔을 비운 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왔을 때는 10시쯤이었다. 마지막 밤인 만큼 다른 곳에서 한 잔 더 할까 했으나 내일 출발 시간을 고려했을 때 늦지 않게 자는 게 날 거 같아 바로 호텔로 향하기로 하였고, 가는 길에 내일 공항버스를 타는 정류장 위치와 운행 시간도 한 번 더 확인한 후 방으로 복귀하였다. 


씻고 자기 전에 호텔 방에서 보이는 밤하늘과 텐몬칸 거리를 한 동안 바라보았다.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이면 가고시마를 떠난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밤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텐몬칸 거리의 네온사인이 유난히 반짝이는 거 같았고 왠지 아름다워 보였다. 


내일 일어나야 할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고, 마지막 밤이라는 것에서 밀려오는 아쉬움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채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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