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서점 문을 열며...
서점 하나를 인수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서점이다. 얼마 전 우리는 숫자가 적힌 메일 한 통을 써 보냈다. 응찰 가격이었다. 물론 그 금액은 우리 수중에 없었다. 그리고 몇 주 뒤 답신이 왔다.
‘귀하가 서점을 인수하셨습니다!’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라는 부제의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책의 저자 페트라 하르틀리프처럼 나도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됐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 7월 19일 공식 개점했다.
서점 ‘오래된 질문’은 충남 공주의 구도심에 있다. 제민천에서 나태주풀꽃문학관으로 접어드는 나태주 골목길 어귀다. ‘골목길 서가’라는 부제 같은 수식어를 붙였는데 꼭 나태주 골목길이어서만은 아니다.
서점의 대문에서 서가에 이르는 길에 붉은 벽돌로 골목길을 만들었다. 설계에 ‘미로 끝에 발견하는 진리(책)’라는 암시가 반영돼 있다.
골목길은 추억과 위안, 회복이다. 어린 시절 지칠 때까지 놀다 하루를 끝냈던 곳이다. 지친 영혼이 광장의 시선을 잠시 피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벽에 기대어 다시 일어설 힘을 모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책의 제목과는 달리, 누구도 어느 날 갑자기 서점 주인이 되진 않는다. 저자인 하르틀리프도 남편과 자신이 서점은 아니어도 그와 무관치 않을 일을 해왔다고 털어놓고 있다. “(서점을 인수한다는 것은) 남편 올리버가 급여도 많고 괜찮은 직장인 독일 대형 출판사를 그만둔다는 것, 내가 문학비평가라는 타이틀(?)과 작별하고 방송국 신분증을 반납한다는 말이다.…”
나도 기자로서 평생 글을 쓰면서 저널리즘에 살았고, 이런 생활 중에도 아카데미즘에 틈을 냈다. 뒤늦게나마 서양철학을 공부했는데 지적 성취는 신통치 않았을지 모르지만 철학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철학이 삶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일종의 ‘철학 서점’이랄 수 있는 인문학 서점을 냈다.
서점을 내고 나서야 오랫동안 이 일을 갈망해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내는 서점을 하게 된 이유를 나 대신 말할 기회가 있으면 “남편이 신혼 때부터 언젠가 서점을 하고 싶다고 했다”라고 말한다. 그 정도였나 싶긴 하지만 그럴만한 기억들은 적지 않다. 어린 시절, 헤르만 헤세가 서점 점원으로 일했다는 그의 자전적 글을 읽고 책이 손에 잡히는 환경이 대문호를 만들어 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때 등하굣길에 있던 ‘문학서림’을 자주 찾았다. 이름처럼 참고서는 취급하지 않고 문학 서적 위주인 작은 서점이었다. 절반은 빌려주고, 절반은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자주 책을 빌려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읽곤 했다. 몇 시간 동안 책 속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어둑어둑해져 교실을 빠져나올 때면 가슴이 벅찼다.
그 순간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명탐정 셜록 홈스 시리즈를 탐독할 땐 만나는 사람들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추리를 하게 된다. 홈스는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을 단 한 차례 보고 그의 과거와 습관을 줄줄이 알아맞힌다. “한때 육체노동을 했으며, 코담배를 즐기고, 프리메이슨 회원이며,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고, 최근에 글을 꽤 많이 썼군….”
어린 나이에도 삼국지 영웅들의 서사에 빠지면 고산준령의 태산에서 도도한 황하(黃河)를 굽어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의 조나단 리빙스턴은 참 독특한 갈매기였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하루 종일 비행 연습에 매달렸다. 이 갈매기의 목표는 물고기를 재빨리 낚아채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자재의 완벽한 비행, 그 자체를 사랑했다.
리빙스턴처럼 가치를 추구하고 싶었다. 책과 커피(서점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커피숍을 겸하고 있다)를 파는 게 아니라 사유와 위안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인문학은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서점에 와서 자신의 욕망과 한계가 무엇인지 반추해 보길 바란다.
성급한 사람들은 묻는다. 거기 가면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론 아니다. 그 질문을 찾아내고 사유해 보는 시간과 공간(서점), 도구(책)를 제공할 뿐이다. ‘매체 철학(media philosophy)’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공간과 도구는 사유의 질을 높인다. 확실히 잘 걸어지는 운동화가 있다.
현대철학은 이미 철학이 어떤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럼 철학은 뭘 해줄 수 있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가 지금까지 안다고 생각해 온 확신이 잘못된 믿음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우리의 독단을 회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선물이다.
서점에 와서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발견하길 기대한다. 아인슈타인은 질문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인생이 달린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면 어떤 질문을 할지에 55분을 쓰겠다. 적절한 질문을 하면 문제 해결은 5분도 걸리지 않는다.” ‘오래된 질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의 하나는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의 ‘당신의 질문은 당신의 인생이 된다’이다.
서점 입구에 ‘오래된 질문의 질문’이라는 글을 써 붙였다. ‘오래된 질문’ 버전의 ‘질문을 권함’인 셈이다. 서점 이름이 왜 ‘오래된 질문’이냐고 묻는 분들이 적지 않은 데다 그들이 스스로 질문을 찾아내길 독려하는 마음에서다.
자영업이 다 그렇겠지만 서점을 해보니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고역이다. 가치의 추구를 다짐했지만 찾는 사람이 뜸하면 기운이 빠진다. 철학 서점의 중력을 어떻게 견뎌낼까는 떠나지 않는 걱정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많이 해소된다. 한참 전에 읽었던 개브리얼 제민의 ‘섬에 있는 서점’에서 주인공 이즈메이는 서점이 주는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펼쳐보니, 과연 서점을 시작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는지 그 대목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몰랐는데 내가 진짜 서점을 좋아하더라.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직업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잖아. 근데 세상에 책(과 관련된) 쪽 사람들만 한 사람들이 없더라고. 신사 숙녀 업종이지.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언제부턴가 주말이면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고등학생이 찾아온다.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진로를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와 종종 철학적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 됐다. 어떤 시인은 서점 이름을 주제로 두 편의 의미심장한 시를 지어 보내 주셨다. 어반스케처와 근대건축 사진작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서점을 화폭과 앵글에 담아냈다.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일컬어 “모두가 격찬하지만 모두가 읽지 않는 책”이라고 익살스럽게 정의했다. 그런데 ‘오래된 질문’에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종의 기원’, ‘이기적 유전자’, ‘순수이성 비판’ 같은 고전들이 팔린다. 1000페이지 벽돌책인 ‘러셀의 서양철학사’와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를 선뜻 계산대로 가져온 고객들도 있었다. 진짜 철학 서점이 되려나 기대감이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하르틀리프는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를 끝맺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한 주에 한 번 서점의 시대는 지나간다는 말이 나오는 이 시대에 계속 서점을 한다. 우리에게 더 남은 게 없기에.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우리는 다른 것은 차라리 하고 싶지 않기에….”
다른 일 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어서?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서점 문을 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