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 투기장
비가 내리고 난 후의 아침. 포석에 고인 빗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빛을 등진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베로나의 투기장은 콜로세움이나 다른 유명한 곳들에 비하면 크지 않음에도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이 사진을 보며 이천년 전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상상해 본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상상이라기보다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에 대한 기억일 뿐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칼에 찔린 채 콜로세움으로 걸어 들어가는 러셀 크로우의 모습. 막시무스, 막시무스, 막시무스. 이 사진과는 이천 년 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