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향은 언제나 비극에 있다. 예정된 파멸에도 굴하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 인간의 의지를 느끼게 해주서어,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닌 것 같다. 극 속 인물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결말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극의 바깥에서, 그러니까 배우가 태어나기 전부터 주어진 조건으로 인해 결국은 어떠한 파멸로 이끌어질 수밖에 없다는 숙명성이 비극의 핵심인 것 같다. 그러니 정리하자면
1. 모든 서사는 (소위 "열린 결말"이라 하더라도)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
2. 어쩌면 내가 마조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 작품, <저수지의 개들>은 비극인가? 앞서의 논의에 따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핑크가 총에 맞는 순간, 아니면 경보기가 울린 순간, 아니면 핑크가 조직에 잠입한 순간부터 파멸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이 영화는 비극적이다. 하지만 어디서도 영웅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끔찍한 고문을 버티면서도 결코 핑크의 정체를 말하지 않은 경찰이야말로 가장 영웅에 가까운 인물이겠지만, 타란티노는 그에게 영웅적인 최후를, 다시 말해 관객이 그의 죽음에 어떠한 감정을 느낄 만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빵빵빵, 끝. 비명 소리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웅의 무대, 말하자면 테바이의 궁전과는 올림푸스 산의 높이만큼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 개판 같은 창고 한 구석에서는, 마치 비극과도 같은 어떤 감정선이 느껴진다.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파편적인 서사는 경찰의 죽음처럼 관객이 알아차릴 새도 없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 모여든다. 강도에 의해 구조된 경찰과 끝까지 경찰을 믿고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강도.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없어야 할 관계 속에서 보이는 인간다움. 그러한 모순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씁쓸함.
개들Dogs이라는 제목은, 타란티노가 좋아하던 어떤 영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아주 적절한 것 같다. 개라는 동물은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낸 동물이었던 탓에 인간다움, 인간적인 어떤 것에 반대되는 동물성의 표상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영화 속 강도들은, 시덥잖은 농담이나 잡담을 하면서 재밌게 어울리지만, 그리고 그것은 무척 인간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 산책하다 마주친 개들이 서로의 꽁무니 냄새를 맡는 것 정도에 지나지 않고, 진실로 인간적이었던 두 인물은, 상대의 이름을 물어보고 걱정해주고 미안함을 느꼈던 그 인간성으로 인해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인간성이란 그들에게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잠입을 준비하는 핑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배우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렇다면 템페스트를 식상하게도 언급하고 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모든 인간은 배우라는 그 대사 말이다. 강도가 강도 역할을 하지 못하고 경찰이 경찰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배우가 무대에서 끌려내려 온다면, 우리는 개 같지 않음을, 그러니까 인간다움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웨이트리스에게 주어야만 하는 팁처럼, 당연해보이지만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 어떤 것, 그리고 팁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웨이트리스처럼, 인간적이어서는 인간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