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에 대한 짧은 넋두리
조커가 범죄자를 미화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된다는 기사를 봤을 때, 지금이 2019년이 맞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하필 이 영화가 논란이 되는 게 이해가 되었다. 이 영화는 강렬하고, 그만큼 선동적이다.
사이코패스를 미화하는 영화라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영화가 강렬하고 선동적인 이유는, 아서 플렉이 사이코패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심리학자도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라, 사이코패스의 정의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아서 플렉의 정신병을 악화시킨 것은 그에게 지급되는 약조차 끊어버린 사회 복지의 부재라는 것과 그의 정신병이 학대 받던 유년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에게 알약 몇 알만 제대로 지급되었더라면 조커라는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아서 플렉은 그저 인정 받기를 원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광기와 혼돈을 퍼뜨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코미디언으로서, 아들로서, 남자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그에게 너무나 차갑다. 그를 무시하고, 짓밟고, 배제하고, 없는 사람인 것마냥 취급한다.
"The worst part about having a me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이 영화가 범죄를 미화하는가? 바보 같은 소리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아서 플렉처럼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학대 당하고, 가난하고, 직장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꿈으로부터도 무시 당하는 삶을 원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세상에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배제당하고 외면당하고 꿈으로부터도 거부당하는 경험을 겪는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점점 빈번해져간다. 이 영화가 선동적인 것은 조커가 사이코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욕망과 좌절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며, 이 영화가 모방 범죄의 우려를 낳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고담 시티와 다를 게 없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우리 모두는 정신병 환자라고. <조커>가 그토록 선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모두 좌절하고, 배제당하고,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거부당하고, 그래서 우리가 인정받을 방법이란 광대 가면을 쓰고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