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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 농린이 Jun 04. 2019

케냐를 사랑하는 방법 : 케냐의 하늘은 오늘도 푸르다.

케냐 매력 찾기, 첫 번째

  케냐 살이를 시작한 지 2년째, 고작 2년째면서 한국이 집인지 나이로비가 집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에 휴가를 다녀와 나이로비에 다시 도착한 그날, 이 밍숭맹숭한 나이로비 공기가 왜 그리 정겨웠는지 모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하루하루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케냐는 정겨운만큼 지겨운 공간이 되고 있었고, 한국이 미워 떠나온 케냐였으나, 이제는 케냐를 미워하려는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오늘 문득 소파에 누워 하늘을 보는데, 구름이 어찌나 예쁜지. 그 못된 마음에 적응해버리려는 나 스스로가 참 한심했다. 이 넓고 맑은 하늘만으로도 케냐를 사랑할 이유는 충분한데 말이다.


집에서 막 찍은 사진1. 소파에 누워 막 찍어도 이정도는 나온다.


  적응의 동물인 인간은 또 망각의 동물이어서, 이렇게 예쁘다-해놓고 돌아서면 또 까먹는다. 월요일이면 사무실에 앉자마자 '어우, 지긋지긋한 케냐!' 하면서 투덜거릴게 뻔하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케냐의 매력을 남겨놓을까 한다. 언젠가 케냐를 떠나고, 언젠가 지금 이 시간을 떠올릴 그 날, 지금의 케냐를 조금 더 매력적이고 선명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케냐의 매력 1. 미세먼지? 그게 하늘이랑 무슨 상관?


  작년을 돌이켜보면, 한국에 사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물어온 푸념 같은 질문은 '미세먼지'였다. '거기는 미세먼지 없지?' '한국은 하늘이 안 보여.' '케냐는 맑은 공기 한가득이겠다, 숨 많이 쉬고 와'.

  음, 솔직히 말하자면, 공기 안 좋다. 좋은 곳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나이로비 공기는 최악이다. 어딜 가나 매연 덩어리다. 한국보다 차가 많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소득 수준이 낮다고 해서 차가 없을 것이라는 편견은 버렸으면 한다.

  개발도상국 하면 넘치는 오토바이와 경적소리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경우도 있는데, 케냐는 단연코 아니다. 자가용, 우버(택시), 마타투까지. 자동차가 넘쳐흐른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매연도 넘쳐흐른다. 게다가 대부분의 차량은 일본에서 버려져 아프리카까지 흘러온 구식의 중고차량들이다. 연료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독한 가스를 수천 대의 차량들이 밤낮으로 뿡뿡 뿜어댄다.


  거기다 케냐는 대부분의 쓰레기를 태워서 버린다. 나이로비 최대 슬럼지역 중 한 곳인 단도라에 가면, 쓰레기 산이 있다. 쓰레기 산은 매일매일 높아지는데, 이를 처리할 방법이 없으니 죄다 태워버린다. 그래서 단도라 근처만 지나가도 쓰레기 타는 냄새가 낭낭하다. 대체 여기에 산소가 있기는 한 건지, 이 공기 속에서 산소를 찾아내 내 생명을 이어주는 내 기도와 폐가 그저 기특할 뿐이다. 나이로비에서 숨을 많이 쉬고 오라니, 나는 폐암으로 죽기는 싫다.


나이로비의 평범한 출근길. 출처 데일리네이션(Daily Nation)
단도라 쓰레기산. 언덕같지만, 전부 쓰레기다. 옅은 구름같지만, 쓰레기가 타는 연기들이다.

  케냐의 매력은 웃기게도 여기서 나온다. 아니, 이건 나이로비의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 미세먼지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공기를 자랑하는 나이로비지만, 신기하게도 하늘은 참 맑다. 언제 봐도 맑고 또 맑다. 이게 하늘이구나, 하늘이라는 단어는 이런 걸 보고 만들어진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막 찍은 사진2. 하늘반, 땅반. 기묘하게도 하늘 바로 밑에는 마타투(버스)들이 꽉 차있다. 마타투의 매력은 다음에.


  왜, 어릴 적 보던 만화책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림들을 보면 뭉게뭉게 한 구름들이 가득이지 않은가. 나는 그걸 볼 때마다 '무슨 구름이 이래? 과한데?' 하며 비꼬아대었는데, 사실 구름은 진짜 뭉게뭉게 한 것이었다는 걸 케냐에 와서 확실히 느낀다.

  솜사탕 같은 구름, 구름 같은 솜사탕이라는 표현도 과대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딱 맞는 비유다. 정말 케냐의 구름은 솜사탕 같다. 폭신하고, 복실 하고, 포근하고, 따뜻하고, 몽실하고, 토실하고, 뭉게뭉게 하다. 조금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뛰면 어떻게 닿을 것도 같고, 손으로 만지면 포실포실하게 만져질 것만 같다.


나이바샤 크레센트 아일랜드, 새들이 조금만 열심히 날아오르면, 구름은 가뿐히 넘을 것 같다.


  밤하늘도 꽤 예쁘다. 하늘이 맑다 보니 달과 별이 선명히 보인다. 하늘이 가깝다 보니 해가지면서 변해가는 하늘색도 선명히 보인다. 하늘이 분홍빛으로, 주황빛으로, 그러다 진한 감색이 되어가는 과정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이런 걸 감상하는 날에는 오히려 구름이 없는 게 더 낫다. 깨끗한 형형색색의 하늘과 달, 그거면 충분하다.


저녁하늘, 바오밥나무, 달.  어두운 밤이 다가오는게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다.
동네에 널린 평범한 나무도 손톱만한 달 한조각과 함께 밤하늘에 그늘이 지면, 꽤 그럴싸하다.


  케냐에 처음 왔을 때, 선임분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가 참 인상 깊었다. '하늘만 예쁘다.' 참 많은 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업무가 힘드신가, 아니면 케냐가 힘드신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더라. 케냐라고 업무가 안 힘들고, 업무가 힘든 게 케냐뿐이겠는가. 다만, 케냐에 감사한 점은, 힘들 때 언제든 올려다볼 하늘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고-힘들다. 왜 이렇게 안 힘든 날이 없나-"

    "그러게요 대리님. 그래도, 오늘도, 하늘은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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