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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 농린이 Jun 04. 2019

케냐를 사랑하는 방법 : 오늘 케냐는 너무 춥습니다.

케냐 매력 찾기, 세 번째 : 아프리카에도 겨울이 있다.

  오늘 나이로비는 비가 쏟아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비가 내린다. 올해 우기는 조금 늦게 오는가 싶어 괜히 섭섭하더니, 막상 우기가 시작되니 섭섭해하던 과거의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보통 '우기'라고 하면 밤낮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폭우를 생각하겠지만, 사실 케냐의 우기는 나쁘지 않다. 낮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고산지대인만큼 태양과 가깝다 보니,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걸리는 시각이면 내리려고 준비 중이던 비 마저 말려버리는 덕...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나마의 장점마저도 요새는 신통치가 않네. 요즘은 가끔 낮에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케냐 사람들은 이걸 보고 '지구가 미쳤다'라고 한다.

  아무튼, 낮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감사한 우기라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나는 우기가 싫다. 케냐의 우기는 너무 춥다. 우리나라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시즌은 여름이다 보니 후덥지근할 것 같겠지만, 케냐는 우기가 겨울이다. (계절이 한국과 반대다.) 겨울인 만큼 두껍게 옷을 껴입어야 하는데, 비가 내려서 공기가 축축하니 몸이 더 무겁다. 환경이 기분을 만드는지, 기분이 환경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지, 어떤 게 맞는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케냐의 우기는 사람을 쳐지게 한다.

  그럼에도, 계절이 있다는 사실은 참 매력적이다. 추운 때가 있으니 더운 때를 기다리게 되고, 우기가 있으니 건기를 기다리게 된다.

 


케냐의 매력 3. 아프리카는 뜨거운 태양의 땅이 아니에요.


  아프리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일 듯 내려쬐는 태양과 가벼운 옷차림의 사람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곳도 있겠지. 하지만 케냐는, 특히 나이로비는! 전혀, 전혀, 아니다! 케냐의 여름이 한국의 여름보다 더 시원하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더운 계절은 건기여서 습하지도 않다. 너무 더워서 걸을 힘 조차 없어!라고 느껴질 만큼의 더위가 없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면 정말 춥다. '에이-추워봤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나이로비 여행을 추천드린다. 공항에 내리는 순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다 깰 수 있다. (한국에서 나이로비에 오는 비행기의 50%는 한창 추운 아침에 도착한다)

  지금 이 시즌에 가장 핫한 한국 아이템이 있다. 전기장판. 전기장판 없이 겨울을 날 생각을 하면, 너무 끔찍하다. 처음 케냐에 올 때엔 부피만 크고, 이걸 어디다 써-하면서 툴툴거렸는데, 그때 나를 붙들어(?) 주셨던 선임분께 이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양털 후드 집업을 챙겨 오지 못한 건 아직도 한이다.


털모자를 뒤집어쓴 아저씨. 패딩이 비싸다 보니, 구제시장에서 저렇게 모자만 사다가 쓰시는 분들도 많다.


 사실 케냐 사람들이 'Winter'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겨울이라는 단어가 필요하진 않다. 'Rainy Season'이라고 하면 다들 '아, 추운 시기구나'하고 알아들으니까. 한국인들(혹은 외국인들)만 Winter라고 한다. 아침에 발이 너무 시려서 직원들에게 '겨울이 왔나 봐- 발이 너무 시려'라고 하면 대답은 '우기라서 그래-'라고 한다. 외국인들은 겨울이라고 묻고, 케냐인들은 우기라고 대답하는 기묘한 대화가 반복된다. 미드 '왕좌의 게임' 대사를 따라 'Winter is coming-.'하고 농담을 하면, 현지 직원은 'Rain is coming-'하고 받아친다.



  더 놀라운 사실, 케냐에는 눈도 온다! 게다가 만년설도 있다!


만년설을 찾아 오르기 전, 밝은 척 있지만 사실 고산병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케냐에는 킬리만자로 다음으로 2번째로 높은 '마운틴 케냐(Mt.Kenya)''가 있다. 마운틴 케냐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데, 눈이 쌓여있는 레나나포인트는 해발 4,985미터다. (작년에 여길 올라가려다 고산병 때문에 하늘나라를 먼저 갈뻔했다.) 이렇게 숫자로 보면 뭐 높아봤자 얼마나 높나-싶겠지만, 참고를 위해 말하자면 백두산이 2,744미터, 한라산이 1,950미터다.


레나나 포인트, 건기에 올라갔음에도 눈이 쌓여있다.  /  레나나 포인트에 오르기 전 마지막 캠프, Shiptons. 해발 4200m.


  이렇게 높다 보니, 눈이 내린다. 너무 높다 보니 해가 떠도 한겨울 날씨이고, 그러다 보니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다. 스위스의 물이 맑다,라고 하지만 마운틴 케냐의 물도 참 맑다. 눈을 퍼 먹어도, 산을 오르다 흐르는 어떤 물을 떠먹어도 괜찮다. 케냐에서 눈 내리는 겨울이 그립다면, 마운틴 케냐 등반을 추천한다.(마운틴 케냐의 매력도 너무 많아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렇게 케냐의 겨울을 자랑해도 여전히 우기가 싫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겨울이 있는 아프리카는 충분히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매력이라는 게, 생각지도 못했던 측면을 발견할 때 또 더 빛나는 법이니까.

  그리고 또 혹시 아는가, 추운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아프리카(케냐) = 더운 나라'라는 생각 때문에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분이 있으실지도. 혹시 그런 분이 있다면, 걱정일랑 마시고, 전기장판과 양털 기모 후드 집업, 수면양말, 플리스까지 잘 챙기셔서 케냐로 오세요! Karibu Kenya(Welcome to Ken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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