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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부 Oct 13. 2023

마음대로 이혼도 못하는 나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법률

지은은 갑자기 묵직한 통증을 느껴 눈을 떳다. '몇 시쯤 되었을까.' 여전히 창 밖은 어둡다. 낯선 곳이라 일찍 깬걸까? 낮에 회사에서 졸지 않으려면 조금 더 자야 하는데.... 생각과 달리 손은 어느새 주위를 더듬고 있었다. 어둠 속의 핸드폰 화면은 너무 밝았다. 밝아도 눈을 찌푸리게 되는구나.


지은은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결혼 5년차인 지은은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그동안 남편은 지은이 출근한 사이 이웃집 여자와 외도를 했다고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웃에 사는 지은의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남편에게 진실을 듣고 싶어 물었다. 아기도 못낳는 년이 어디서 따지냐는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손찌검과 함께. 그래, 오늘 회사 안가도 되는구나.


이제는 창문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서둘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지은은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아갔다. 지은은 남편과 합의로 이혼하고 싶었지만, 전화기 너머의 남편은 심한 욕설로 거부했다. 옆에서 남편의 욕설을 같이 듣고 있던 변호사는 지은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두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남편이 외도를 하고 이렇게 맞기까지 했는데, 이혼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거야? 내가 저 인간이랑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싫다는데,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뭐 이런 개같은 법이 다 있어!' 지은은 차마 변호사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변호사는 최소 1년은 걸릴거란다. 긴 싸움이 시작됐다.



어린 나이에 생식기가 없는 남편과 결혼해 학대받은 여성이 이혼 허락 판결을 받았다는  매일신보 1921년 7월 29일자 기사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이혼 법률을 만든 것은, 결혼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권장한 '결혼의 파기 불가능성'에 대한 반대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그러했다고 단순히 종교의 문제로 국한할 문제는 아닙니다. 과거에는 결혼이 당사자의 결정보다 외부의 힘이 더 크게 작동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이나 국왕의 명령으로도 결혼해야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혼도 교황이나 국왕이 결정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부모의 강권으로 결혼을 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유교적 규범이 지배하던 시절에 남성은 아내가 칠거지악을 범했다는 이유로 쫓아낼 수 있었지만, 아내가 먼저 이혼을 제기하는 것은 범죄처럼 취급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08년 재판이혼이 허용되면서 이혼소송이 급증했고 원고의 90%이상은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의 결혼은 오로지 당사자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그 책임도 당사자가 지면 됩니다. 굳이 한쪽이 반대한다고 국가(법원)의 허락을 필요로 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민법에서는 일방적인 축출 이혼을 방지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하지만,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을 강제로 유지시키는 행위가 행복 추구권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건 아닌지도 고민할 때입니다. 다만, 축출 이혼과 연계하여 기타 권리나 재산에 대하여는 법원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또한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려는 정책적 고려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없는 경우와 자녀가 성년이 된 경우에 한정해서라도 일방의 신청으로 이혼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지은은 갑자기 묵직한 통증을 느껴 눈을 떳다. '몇 시쯤 되었을까.' 여전히 창 밖은 어둡다. 낯선 곳이라 일찍 깬걸까? 낮에 회사에서 졸지 않으려면 조금 더 자야 하는데.... 생각과 달리 손은 어느새 주위를 더듬고 있었다. 어둠 속의 핸드폰 화면은 너무 밝았다. 밝아도 눈을 찌푸리게 되는구나.


지은은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다. 결혼 5년차인 지은은 남편의 폭력과 외도로 이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왔다. 그동안 남편은 지은이 출근한 사이 이웃집 여자와 외도를 했다고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웃에 사는 지은의 친구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남편에게 진실을 듣고 싶어 물었다. 아기도 못낳는 년이 어디서 따지냐는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손찌검과 함께. 그래, 오늘 회사 안가도 되는구나.


이제는 창문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서둘로 나갈 준비를 했다. 지은은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구청을 찾아갔다. 이혼 신청서를 작성하고 어제 병원에서 발급받은 상해진단서를 함께 제출했다. 담당 공무원이 잠시 기다려 달라며 서류를 검토했다. "네, 서류는 빠짐없이 잘 작성되었고요. 진단서 진위 여부 등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아마 하루 이틀정도 예상하시면 되고요. 처리 완료되면 문자로 안내드립니다. 혹시 취소하시려면 두분이 함께 오셔야 됩니다. 다 끝나셨어요. 연락기다리시면 됩니다. 어제보다 멋진 오늘 만드세요."  


'그 사람과 함께 올 일 없어요. 다음에 올때는 다른 사람과 올거에요.' 지은은 차마 담당자에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웃으면서 감사인사를 건네고는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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