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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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정리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 시간을 걸어왔을까. 나에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행이다. 수학여행도 해외로 떠난다는 요즘 세상에 참으로 시시한 키워드다.
23살, 처음 해외에 나갔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19개의 나라를 오갔다. 이 많은 나라를 다니며 단순히 여권에 19개의 입국 도장을 찍고, 관광지 돌아다니고 끝냈더라면 이 여정에 굳이 의미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여행에 나만의 독특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고 믿으며, 늘 마음속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내 여행의 키워드는 바로 '집밥(가정식)'이다.
제주도도 가보지 않았던 아주 어려서부터 세계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세계 테마 기행은 최애 TV 프로그램이었다. 대학생 땐 유학생 친구들의 한국어 수업을 도우며 교환학생은 다녀오지 못했지만 교내에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늘 함께 였다. 회사에선 50개국이 넘는 다양한 국적의 코워커와 연간의 긴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떠나면,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 지내며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렇게 오고 가며 만난 다양한 사람과 겪은 스토리가 어느덧 내가 걸어온 20대를 보여주는 발자국이 되어있었다.
이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던 기회가 많았고, 아주 오랜 시간 연락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중심에는 바로 '음식'이 있었다. 여행을 가면, 이 사람들이 좋아 다시 재회하기 위해 그날의 여행지가 결정되었고, 그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곤 했다. 그곳에서 만난 그들의 지인과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며 수많은 요리를 소개받았다.
집밥이 주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비유하자면 나에게 새로운 경험들이 마구마구 팡팡 던져지는 폭죽과도 같았다. 참으로 기분 좋은 순간이았다. 재료를 사러 현지 시장에 가는 그 순간부터 새로움의 시작이었다. 처음 보는 식재료를 발견하기도 하고, 알고 있는 재료일 지라도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 다른 크기나 색깔 혹은 가격까지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식재료를 직접 만져보고 다듬고 볶는 요리를 함께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맛있는 식사와 함께 문화를 배운다. 단순히 먹는다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작은 취미생활이 생겼다. 프랑스부터 그리스, 터키, 스페인까지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직접 집에서 만들어 보고 있다. 사실 아직 미숙하기에 대단한 요리가 탄생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소스나 드레싱, 잼 만들기 도전에 성공하기만 해도 굉장히 재미있고, 무엇보다 나의 20대 시절 그 향수를 채워준다. 내가 왜 그토록 이 취미에 몰두하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과거 경험에 대한 그리움이 컸음을 깨달았다.
나의 여행은 첫 시작은 늘 혼자였지만 많은 나라의 지인들과 함께였고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들의 따스한 집밥이 곁에 있었다. 서울에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들의 집밥과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