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드라마] tvN 주연_한예리, 김지석, 추자현
'가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또 하나의 드라마가 있다.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 비교적 최근 드라마다. 매니저를 통해 처음 전달받았을 때는 '가족입니다'라고 들었다. '무슨 제목이 이렇게 싱겁냐 진짜 재미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첫 대본을 받았을 때 드라마의 풀네임을 보고 당황했다. 글에서 생략할 수 있는 요인을 나타내는 소괄호를 우 리 매니저는 아주 철저하게 지키며 얘기해 줬던 것. 헛웃음이 났다. 이렇게 국어 문법을 잘 지는 매니저였나 싶어서.
아무 기대 없이 받았던 제목과 달리 작감배(작가, 감독, 배우)를 보고 조금 설렜다. 공동 연출만 하다가 첫 입봉 작을 맡은 권영일 감독님.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으셨던 김은정 작가님. 원미숙, 정진영 베테랑 배우들을 비롯해 추자현, 한예리, 신재하, 김지석 등의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젊은 배우들. '가족입니다'라는 노관심 드라마에서 단숨에 안 볼 이유가 없는 작품 목록으로 올라갔다.
'가족입니다'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청춘 남녀의 꿈, 사랑, 시련을 보여주지만 여기선 이미 굳어져 돌이키기도 어려운 부모의 갈등, 오해, 상처를 건드렸다. 그리고 부모들의 상처 때문에 상처 입은 자식들의 상처를 보여줬다.
학력에 자격지심이 있는 아빠, 젊은 시절 미혼모가 될 뻔해 눈치 보는 엄마, 서로 오해만 쌓이는 가족을 떠나고 싶어 결혼으로 도피했던 첫째,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눈치 보고, 아빠 눈치를 보는 엄마를 무한 신뢰하는 둘째, 철없다는 핑계로 자기 속내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항상 밝은 척 지내는 막내, 가족끼리 아는 것보다 이 가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아는 남사친까지. 가깝지만 남보다 먼 가족의 이야기. 드라마를 보는 내내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우리 가족의 이야기 같았다.
이 가족이 묵혀둔 오해와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은 다소 신선하다. 우울증으로 남몰래 약을 복용했던 아버지가 사고로 기억이 22살 청춘으로 돌아간 것. 기억의 회귀 덕분에 아버지는 자신이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열등감에 찌들어 얼마나 권위적으로 행동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사고 전 졸혼을 요구했던 엄마 역시 어려진 남편을 챙기다가 그간 우울증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신에게 못되게 말하고 소리치던 것들의 실상이 어떤 사건에서 비롯된 건지 알게 되며 갈등의 해소 점을 찾는다. 여기에 정진영, 원미경 배우의 연기력은 이로 말할 것 없이 완벽하다. 20살의 아빠와 60살의 아빠가 그렇게 다를 줄 몰랐다. 달라서 튀는 연기가 아닌 중간중간 나오는 회상으로 서사를 쌓여서 변한 아빠의 이면까지 보여주는 연기였다. 졸혼하는 엄마, 아빠를 보며 자식들 역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가족을 마음대로 재단하며, 내가 편해지고자 했던 삶을 반성하고, 고쳐 나가려 노력한다. 힘이 되고 싶어 노력한다. 물론 노력하는 과정 역시 힘들고, 아프고, 찢어진다. 하지만 그래서 다시 성장하는 캐릭터의 성장이 보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식들을 맡은 모든 배우가 연기를 잘했지만 단연 최고는 둘째를 연기했던 한예리다. 사극, 청춘물, 장르물까지 섭렵하더니 이제는 가족극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다니.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딸의 일상을 보여주는 한예리. 한예리가 출연한 다른 작품을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연기다.(실제로 드라마가 끝나고 한예리의 연기를 더 보고 싶어서 녹두꽃, 스위치를 다시 보기도 했다.)
아마 내가 한예리에게 더 이입했던 이유는 맏이의 책임을 가진 첫째와 철부지 늦둥이 셋째 사이에 낀 둘째라는 설정이 우리 가족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롤과 같아서 더 이입이 된 것일지도. 우리 언니가 첫째 은주처럼 까칠한 성격은 아니지만 옆에서 보면 언니가 느끼는 맏이의 무게가 보인다.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도 절대 가지고 올 수 없는 무게. 한예리는 내가 느꼈던 감정을 형상화시킨 것 같았다. 가끔 엄마에게 나도 짜증 나고 화나지만 오래 화내지 못한 채 다시 살랑거리며 먼저 말을 거는 모습도, 아빠한테 괜히 툭툭 던지며 쓴소리 하는 모습도 내가 우리 집에서 생존하는 방법과 비슷해 보였다. 혹시나 한예리도 진짜 사이에 낀 둘째인가? 그래서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하는 마음에 찾아보니 그녀는 다름 아닌 첫째. 또 다른 집의 첫째 은주였다.
일로 시작했지만 가장 애착 가고,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드라마다. 글 쓴 김에 다시 정주행 해야겠다. 정주행이 끝나고 나면 난 또 울면서 아빠, 엄마를 한 번 안아주며 1초 사랑을 표현하고 오겠지?
가족의 문제가 뭔지 알아? 할 말을 안 하는 거야. 먼지처럼 털어낼 수 있는 일을 세월에 묵혀서 찐득찐득하게 굳게 해.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팡 터져버리는 거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ep.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