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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IAN May 28. 2023

아무에게도 부치지 못한 편지 1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나의 비밀, 사실 저는..


  “잘 지냈나요?”


 아뇨, 저는 사실 그렇지 못했어요.

매일이 선택의 연속 같았던 요즘, 그 모든 선택들이 그다지 저를 만족시키진 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렇지 않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력일 뿐 진실된 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저의 지난 20대는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쉼 없이 달려왔어요. 언뜻 보았을 땐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그 꿈을 향해 잘 살아온 듯 보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왜 그걸 하고 싶었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연히 고향집에 내려가 보게 된 제 어릴 적 일기장엔 정확히 꾹꾹 눌러 적힌 장래희망이 있더군요. 어쩌면 저는 어릴 적부터 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던 저는 지금 우습게도 꿈을 이룬 30대가 되었지만, 더 이상 어디로 발을 내디뎌야 할지 몰라 매일같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내 마음과 몸이 모두 무너져 내리면서 더 이상은 일상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국 잡고 있던 모든 걸 던져버리고 도망치기로 결심했죠. 국내며, 해외며 충동적으로 아무 곳에나 가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던 마음에서였습니다.


10년 전쯤엔 익숙하던 곳을 떠나면 새로운 느낌과 가득한 호기심들로 잠시나마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는데... 슬프게도 이번엔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 있는 동안에도 너무나 외로움이 사무쳤고, 또 온종일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좋아하던 음악, 음식, 그림들을 보아도 무감각 그 자체였습니다.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어도 웅웅 거리는 느낌, 내가 말을 할 때에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느낌, 즐겁지도 슬프지도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무중력 공간 속에 홀로 떠있는 느낌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저는 퇴사를 하고 나서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더 깊게, 더 조용하게, 더 은밀하게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으로 서서히 잠겨 갔습니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떠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단 사실을 마주하기가 너무나도 싫어서 눈을 감은채 침대에 누워 시간을 하루, 이틀.. 그리고 몇 달을 그저 흘려만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눈을 뜰때면 떠있는 해를 마주할 때면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게, 시간은 지치지도 않고 무심하게 흘러만 간다는 게 끔찍했습니다. 그럴때면 다시 분노를 느끼며 눈을 꾹 감아버리곤 했습니다. 모든 것들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한번 씩 잠 못 이루는 어떤 새벽엔 튀어나오듯 이불을 걷어차고 대충 옷으로 몸을 감싸고는 집밖을 나와 미친 듯이 걸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어두운 새벽 3시쯤 멍한 상태로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새 머릿속으로 죽음을 택하는 방법을 미친듯이 고민하는 제가 보였습니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저 새벽 산책을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보였겠지만, 제 머릿속엔 온통 삶을 끝내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마 그 누구도 몰랐을 겁니다.


 바삐 걷는 다리와는 달리 머릿속은 온갖 자살방법을 상상하고 수없이 시현해 보는 생각들로 바빴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덜 가슴 아프게 끝낼 수 있을까, 주변인들에게 피해 주지 않을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아기고양이는?.. 이런저런 질문들의 답을 구하지 못해서 결국엔 죽음의 결정은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그랬죠. 아마도 이 질문들의 답을 비슷하게나마 찾았더라면 지금 전 이미 죽음을 선택했을 겁니다.


 제가 자꾸만 죽음을 택하려 했던 건 아마도 굳이 죽음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만큼 삶이라는 선택이 더 나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이 아릅답다’, ‘그대도 아름답다’,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런 말들, 글들이 저는 단 한 번도 가슴에 와닿았던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제 머리와 가슴은 그러한 말들에 지금껏 아무런 감흥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척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 적은 많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솔직한 제 감정을 잘 압니다.


'저는 사실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아요. 원래부터 그랬어요.'


 혹시 그대는 이런 제가 불쌍하다고 느끼나요? 안타깝고 도와주고 싶나요? 이런 감정을 털어놓았을 때에 동정심을 느끼고 도움의 손을 뻗는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를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저는 제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불쌍한 게 아닙니다. 단지 저는 제 감정에 아주 솔직한 사람일 뿐입니다.


 사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딱히 이런 내가 혹은 내 상황이 ‘공정하지 못하다,’ ‘나는 왜 이러한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와는 다른 ‘아름다운,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행복한 이들이 그저 신기할 뿐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행복해 할 수 있지?'하며 신기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불쌍해할 필요도, '억울하게 느끼지마 다들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살아가는 거야.'라며 타이를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행복이란 감정을 어쩌면 느껴본적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제게 한들
'행복'이라는 감정을 순식간에 느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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