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 Sep 03. 2021

복희와 정임

   

복희가 치매에 걸렸다. 기억을 조금씩 잊어버리거나 원래 있지도 않던 물건을 누가 훔쳐 갔다고 주장하더니 어느 날 중풍으로 쓰러졌다. 두 번째 중풍이었다. 복희의 손과 발이 멈추었다. 아주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씻는 것과 같은 일상의 기본적인 일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복희를 돌본 것은 그녀의 며느리 정임이었다. 네 아이를 돌보고 농사로 바쁜 와중에도 복희를 살뜰히 챙겼다.     


정임은 쉴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새벽에 밭에 나가 일을 하다가 아침 식사 시간이 되면 복희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기 위해서 돌아와야 했다. 복희의 속도에 맞추어 음식을 떠먹어주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흘렀고, 정임은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말아먹고는 다시 밭으로 갔다. 세 끼를 그렇게 챙기면서 때맞춰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씻기는 일도 했다. 정임이 일을 하러 나가려는 찰나에 복희가 똥오줌을 지리면 정임을 기저귀를 갈고 이불을 바꾸어 깔았다. 더러워진 이불은 둘둘 말아 두었다가 저녁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다시 빨았다. 당뇨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었던 복희의 식단을 짜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가난한 살림 탓에 넉넉하게 식사를 준비할 수 없었던 복희는, 커가는 아이들 대신에 복희를 중심으로 식사를 꾸렸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문득 죽은 동생이 생각나면, 복희는 죽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을 했는데 그 통곡을 달래주는 것도 정임의 몫이었다. 도저히 통곡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들을 대신해 정임이 복희의 곁에서 잤다. 병원에 모셔가는 것도, 스스로 외출을 하지 못하는 탓에 복희를 업고 밭 한쪽 그늘진 자리에 앉혀놓고, 정임이 일할 동안 바람을 쐬게 해주는 것도 정임의 몫이었다. 복희의 아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정임이 복희를 돌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 더 충실하게 돌보아주길, 가족들을 바랬다.     


돈이 없어서 복희를 요양원에 보내지 못하던 정임에게 숨 쉴 구멍이 생긴 것은 십 년쯤 복희를 돌보고 난 후였다. 없는 살림에도 정임은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들을 한 노인요양원에 간간이 한 트럭 씩 가져다주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다. 요양원에서 일하던 수녀님이 마침 같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원의 빈 자리를 소개한 것이다. 한 달에 오십만 원을 내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복희는 전문적인 돌봄을 받았다. 매일 목욕하고 잘 차려진 세 끼 밥을 먹었다. 매시간 누군가 기저귀를 갈아줬고 돌아가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복희를 위해 기도도 해주었다. 아주 가끔 복희는 힘을 내어 성모송을 따라 했다. 정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갔다. 갈 때마다 여기저기 핀 꽃들을 꺾어갔다. 부용꽃을 가져다줄 때마다 복희는 웃었다. 정임은 더욱 부지런하게 농사를 지었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비로소 정임의 시간이었다.  

   

복희는 그 후로도 몇 년은 더 호스피스 병원에 머물렀다. 단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게 되었고 눈도 겨우 뜨지 못하는 날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욕창이 생겼고, 다리가 곪아 썩어가기 시작했다. 산소호흡기에 들숨과 날숨을 의존했다. 그래도 그녀는 살아있었다. 병원에서는 복희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정임은 복희가 죽기 전 며칠 동안 복희와 함께 잤다. 복희의 평안을 빌며 기도를 하거나 꽃을 꺾어다가 복희의 머리맡에 두었다. 정임의 마지막 돌봄이었다. 정임이 물건을 챙기러 집에 잠깐 간 사이 복희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 


눈을 감지 않던 복희는 정임이 오자 비로소 눈을 감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