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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Dec 17. 2023

절교 아니고 손절

6학년 교우관계

여학생들 간에 따돌림이라고 할 수 없는 애매한 문제를 눈치챘다. 1학기와 다르게 무리에서 한 아이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함께 쫑알거렸는데 조용히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읽고 있다. 며칠을 가만히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아이와 이야기 나누었다.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심리적 압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왕따라고 보기 어려웠고, 나머지 아이들이 특별히 괴롭혔다거나 따돌린 정황은 없어 보였다. 


나머지 아이들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여러 번 손절이라는 낱말이 들렸다. 손절. 너희가 말하는 손절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교실에서 필요한 말은 하되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는 관계라고 했다.


몇 해 전까지도 아이들은 곧잘 절교라고 했었는데 그 사이에 손절이라는 말로 바뀐 모양이다.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손절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대꾸할 말을 골라보았지만 좋은 생각은 나지 않았고, 어쩐지 상황은 자꾸 꼬여갔다. 아이들은 내가 혼자 떨어져 있는 아이의 편만 든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마무리를 짓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조용히 손절을 읊조려보았다. 낱말에서 차가운 얼음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칼같이 사람을 끊어내는 것만 같은. 다시 사이가 괜찮아질 여지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절교는 교제를 끊는 것이고 손절은 인연을 끊는다는데 어쩐지 나는 손절이 더 매섭게 느껴질까. 


점점 더 아이들이 냉정해지고 매서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손해를 손가락 셈하는 모습을 볼 때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허용해도 된다고 할 때, 지불할 통일비용이 크다는 이유로 통일을 반대할 때, 혹시 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 제정을 반대할 때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히곤 한다.


윤리와 도덕보다 이익을 셈하는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세상은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또 시간이 흐르면 절교, 손절 말고 더 차가운 낱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쓰이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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