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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하루 Mar 05. 2023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기

6학년 교실의 첫날은 한 마디로 고요했다. 아이들은 검은색 옷으로 자신의 색깔을 숨긴 채 앉아 있었다. 누구도 먼저 나서 서먹함을 깨트릴 용기가 없어 보였다. 고요함이 수용의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경직되어 있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하루 만에 고요를 깨는데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친구 이름을 알아보는 놀이, 인터뷰 놀이를 하면서 조금씩 교실에 아이들 목소리가 떠다녔다.


쉬는 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모여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도 하고, 몸을 부대끼며 친근함을 표시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몇 번의 쉬는 시간에도 자기 자리에만 앉아 있는 아이들 서너 명이 보였다. 컴퓨터로 일하는 척하며 아이들을 관찰했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끼리 모여 있기도 했고, 원래 친한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된 경우도 있었고, 어색하지만 무리에 끼어보려 애쓰는 아이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 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둘째 날이 되었다. 매년 아이들 스스로 학급 규칙을 만들도록 한다. 모둠을 지어 우리 교실에 꼭 필요한 규칙 다섯 가지를 화이트보드에 적고 칠판에 붙이게 했다. 아이들이 쓴 여러 규칙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기'였다. 여섯 모둠 중에 무려 네 모둠에서 같은 말이 나왔다. 


아침에 홀로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마음에 쓰여 친구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했었다. 요즘 떠들썩한 학교폭력 이슈를 덧붙이기도 하며 우리 반은 모두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해를 함께 보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 졸업앨범도 함께 찍어야 하고 수학여행도 같이 가는 특별한 인연이 아니냐며 설득과 부탁과 당부를 했다. 내 말이 아이들 마음에 스며든 모양이었다. 다들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어제, 오늘 조금씩 다른 강도의 외로움을 맛본 듯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뿌듯함과 내 말을 깊이 새겨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교차했다.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기'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로 수정되었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은 친구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는 친구나 혼자 있는 친구가 없도록 하자고 함께 다짐했다.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어깨가 움츠러든 아이에게 한번 더 눈길이 간다. 떠들썩한 교실에서 혼자 고요한 아이의 마음이 고요하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외로움이 너무 차갑지 않게 교실을 데우는 게 내 역할일 것이다. 오늘처럼 그렇게 아이들에게 조금씩 스며들기를 바란다.


머리가 자라고 성숙한 어른의 세상은 다툼 없이 모두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 세상에도 어깨가 움츠러든 사람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먼저 다가가는 사람인가? 사람들의 평판에 휩쓸리고, 혼자 있는 사람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책임을 물었고, 나도 바쁜데 먼저 말 걸어줄 시간이 어딨냐며 합리화하며 외면했다. 


그 뿐인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른 체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다. 최근에 은유 작가의 책들을 여러 권 이어 읽었다. 이주노동자, 학교밖 청소년, 성폭행피해자, 각종 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아프게 다가왔다. 나 하나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놓고 학교에선 고고한 척 아이들에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어려움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짊어진 부채를 미래에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떠넘겼다. 



가르치는 일은 그래서 힘들다.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에. 늘 나는 부족한 사람임을 확인하는 일이기에. 오늘도 그랬다.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겠다는 아이들의 꼿꼿한 다짐을 들으며 슬며시 부끄러워졌다.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어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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