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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 Dec 03. 2019

아줌마의 영어 공부법


10대 때 다이어리 기억하나요?


그 시절 다이어리의 목적이 ‘일정 체크’가 아니라 ‘꾸미는 재미’에 있었던 것과 비슷하게


요즘 나의 공부는 지식의 체득 보다 ‘줄치고 붙이는 재미’에 있다



영어를 손 놓은지 십수년쯤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 졸업 후 짧게 몸 담았던 여행사에서 현지 업체들과 연락을 해야해서 가늘게 붙잡고 있던 영어의 끈을 퇴사와 함께 지금껏 놔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급작스럽게 미국으로 와 살게 되었고 온지 1년만에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그간,
시원스쿨 독학, 튜터링, 유튜브 채널, 시트콤 학습 등 

깨작이는 수준으로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도통 재미가 붙지 않았다 

공부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의를 기다리고 기다리길 어언 1년...

그러다 얼마 전, 내 개인 통역사인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을 때 딸 아이가 심하게 아팠다 

1시간 사이에 열이 40도 가까이로 껑충 뛰어 동네 urgent care로 달려갔다 

마음이 급하니 손짓 발짓 안할 수가 없었는데 안타까운 사실은 내 손과 발은 어떻게든 상태를 설명할 수 있었으나 내 귀는 도통 먹통이었다는 것이다 

의사의 손짓 발짓 눈빛을 동물적 감각으로 추측하고서야 겨우 겨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똥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게 똥줄이 타들어가다가 고열로 까무러치던 아이의 체온이 조금씩 수습되어가자 나는 그 ‘때’가 왔구나... 느꼈다 

인간이 말을 해서 인간인데 말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입이 있는데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없으니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결심이 서졌다 

그 이후로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은 이게 공부인가 사실은 공부를 가장한 놀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내 공부법 첫번째는 

서점에 가서 쉽고 관심이 가는 책을 사는 것이었다 
좋은 아침을 만드는 루틴에 대한 책인데 어려울 것 없는 내용이고 좋아하는 이야기라 이 책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앉아 소리내어 읽는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에 빙의하며 아메리칸 제스쳐를 써가며 읽으면 뜻은 모를 지언정 문장이 익숙해진다 

주어와 동사 부수적인 추가 내용등을 정신 차리고 읽으니 영어식 문장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음은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고 포스트잇에 적는다 
최대한 예쁜 글씨로 정성스레 한자한자 적고 난 후에는 책의 여백이나 삽화 부분에 붙인다 

여기서부터는 놀이에 가까운데 글씨 쓰는 재미, 포스트잇 붙이는 재미가 크다 




하지만 모르는 단어 체크하며 한 번 읽고, 파파고로 뜻 조회하며 뜻과 발음을 파악하고, 포스트잇에 쓰며 또 읽고 외우고, 책에 붙이며 한 번 더 본다 

그렇게 모르는 단어를 쫙 파악하고 나면 무엇보다

“이렇게 모르는데 뭔 책을 읽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예쁘게 붙여진 포스트잇을 보면 괜히 재밌고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나는 놀고 있는 것인가...

어쨋든 단어를 인지한 후에 또 다시 한 번 소리내어 읽는다 

단어의 발음을 파악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게 읽히고 

뜻을 알기 때문에 해석이 시원시원 이어진다 

그런데 복병은 정말 쉬운 단어 혹은 전치사? 같이 별 뜻 없는 단어들이 조합될 때이다 

걔네들은 문맥에 따라 뜻도 달라지고, 모르는 단어라고 생각 되어 굳이 뜻을 새로 찾지도 않기 때문에 문장의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진짜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미묘한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 

모호하게 해석되는 문장 전체를 파파고에 돌린다 

그러면 그 뜻을 유추할 수가 있게 된다 

그렇게 다 파악된 내용은 손글씨로 한 번 옮겨 적는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나는 수두룩 하게 쌓여 있는 펜을 하나라도 빨리 소진시키기 위해 제일 액이 적은 펜 하나를 골라 다 쓸때까지 조진... 아니 열심히 쓴다 

어느 세월에 다 쓰겠냐마는 이것도 공부를 재미있게 만드는 한 요소이다 

공부인지 놀이인지 여튼 이것들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 효과를 보았다 

하나는 영어에 눈이 간다는 점이다 

전에는 그 유명한 “까만게 글씨요 허연게 종이여?”라고 느끼는 사람이었는데 

내 수준보다 어려운 책에서 꾸역꾸역 놀다보니 일상 문구가 눈에 쉽게 들어왔다 

두 번째는 책을 예쁘게 꾸미는 재미가 재미있어 계속 책을 펴게 된다는 점이다 

더 예쁘게 공부하고 싶어서 나는 그만 아마존에서 20여개의 펜 세트를 2개나 사고야 말았다 

미니멀리스트 한답시고 팬 하나만 써보겠다는 나였는데 40개를 더 사고 말았네;;

이런 약간의 부작용 빼면 꽤 도움이 되는 공부법이지 않나 생각한다 (펜은 모레 배송 예정 두근두근)

나는 예연이를 프리스쿨에 보내놓고 

오전 동안은 이렇게 공부 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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