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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구 aGu Jul 14. 2021

환승연애,X의 자기소개서

아 참, 같은 버스는 환승이 안 되지


마음을 나눈 연인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행동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성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까. 상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의 욕망이 상대에게 투영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상대의 욕망이 반영되어 누군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지만, 대개 흐릿해지는 게 우리 기억이다. 망각은 상황에 따라 축복이고, 지나간 추억은 미화되기 쉽다. 그때 참 좋았었는데 우리, 그래도 그 사람 만날 때 참 행복했었는데.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기간에 관계없이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그 마음. 누구에게나 있겠지. 여기 나온 출연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직 1회밖에 보지 않아 단정할 수 없지만,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면 출연하지 않았겠지. 시간이 흘러 서로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크기는 다르더라도 우연히 한 번은 스치고 싶다거나, 어떤 식으로라도 한 번은 닿고 싶었을 그 마음. 타오르던 불꽃이 꺼져도 온기는 남을 수밖에 없다. 


제목이 ‘환승연애’다. 연애에서 환승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환승은 머물던 곳에서 내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리고 보니 마침 버스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잠시 후 도착이라는 안내가 뜰 수도 있다. 배차가 길어 꽤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막차가 이미 떠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환승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하차하는 순간 타고 온 버스 번호를 잊을 수는 없다. 머물던 공간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흔적을 남기고, 배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흔적을 모른 척해야 하고, 숨겨야 하고, 함께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이 방송은 가슴이 미어진다. 누군가는 이게 가능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관계에서 환승의 의미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굉장히 획기적인 시도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X.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기억을 드러내어 건드린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아 참, 같은 버스는 환승이 안 되지. 그렇다고 버스를 못 타는 건 또 아니고. 같은 버스는 환승이 안 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횟수와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 역시. 정해진 환승 시스템을 뒤집을 사람이 있을까. 비용을 새로 지불하고 타고 온 버스를 다시 탈 사람은 누구일까. 환승해서 다른 버스를 타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버스도 타지 않고 정류장에 머무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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