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
4월 중순, 지천에 초록이 가득하다. 겨우내 숨죽이며 무채색이 가득했던 팍팍한 땅은 이제 서서히 녹아 포슬포슬한 봄의 땅이 되었다.
불과 지난 주와 이번 주의 모습도 다르다. 트일 듯 말 듯 닫혀 있던 꽃봉오리에 점차 컬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불쑥, 꽃봉오리가 터졌다.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은 아침엔 본격적인 하루를 보내기 전에 동네 산책을 하는 편이다. 고요한 아침에는 봄의 컬러가 좀 더 확연하게 눈에 띄는데, 어제의 그 길과 오늘의 길조차 다르다. 더 연둣빛으로 물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고. 좀 더 음지였던 곳도 느리지만 제시간에 맞춰 꽃을 피워낸다. 다음 차례는 철쭉이다. 눈이 시리도록 쨍한, 다양한 색을 지닌 철쭉은 인도 가에 주로 많이 심어져 있다. 덕분에 어디를 거닐든 화려한 색감의 꽃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봄은 벚꽃이 빨리 피고 빨리 졌다. 하얗게 눈부셨던 며칠을 빠르게 피고,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그러면 벚꽃비를 맞으며 행복감에 도취되곤 했다. 하얗게 떨어져 내린 벚꽃을 보며 아, 봄이 왔구나 한다.
며칠 전에는 베란다를 정리했다. 겨울에 추워서 엄두를 못 내던 것을 이제는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묵혀있던 짐들을 정리하고, 뒹굴던 먼지를 수돗물로 깨끗이 씻어냈다. 새로운 타일들을 깔고 선반을 맞춰 식물들을 올려 둘 수 있게 했다. 새로운 씨앗들도 심었다. 잘 자란 화분들은 좀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마쳤다. 새롭게 돋아나는 초록 잎을 보고 있자면 내 마음에도 연둣빛이 퍼지는 것만 같다.
요 며칠 비가 잦다. 나는 비 오는 날보다는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을 더 좋아라 하지만 봄비가 내리고 나면 더욱 초록해질 것을 알기에 비가 오는 게 싫지만은 않다.
이제 점점 더 따뜻해지고, 무거운 자켓은 한동안 장롱 속에서 나오지 않을 테지. 몸과 마음이 다 가벼워진 어느 날에는 문득 여름이 올 것이다.
언제 추운 겨울을 보냈나 싶게 우리는 추위를 잊고, 따뜻해지고, 또 무더워지겠지. 소중한 봄날이다. 지금 이 꽃길을 잘 만끽해야지 되뇌는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