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는 현대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자질로 '긍정적 사고'와 끊임없는 자기계발, 자아 성장이 중요함을 계속해서 얘기하고 요구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쉼없이 성장하기 원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삶으로 덮기 위해 노력하며 점차 지쳐가고,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에게 <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의 저자 스벤 브링크만은 자기계발서의 일반적 양식인 ‘7단계 지침서’ 형식과 비슷한 형태로 불안과 우울증 등으로부터 현대인의 정신건강을 지켜낼 대안을 제시한다.
그 대안의 내용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 '삶은 흠투성이라는 걸 받아들여라', '때로는 과감히 ‘아니요’라고 말하라',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라', '멘토를 좇는 대신 우정을 쌓아라', '소설을 읽어라', '당신이 뿌리내릴 곳을 찾아라' 등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관점을 가진다. 그리고 스토아 학파의 이론들을 소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개인의 자아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 존재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며 행복을 추구하는 법을 말한다.
우리는 안이 아니라 밖을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사회, 문화, 자연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인생을 잘 사는 법에 대한 답은 내 안에 있지 않다. '진정한 자아' 같은 건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진정한 나'를 찾고 싶으면, 내면이 아니라 밖을 주시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것, 행동하는 일,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봐야 한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p. 35
물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기 기분에 따르는 일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자신들이 한 행동을 두고 뿌듯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내면의 목소리'와 만족감만을 좇기 위해 사는 게 아니란 점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위해, 그럼으로써 결국 우리에게도 좋은 일들, 다시 말해 윤리적으로 옳은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p. 53
그러나 한 가지 두려운 점은 이런 긍정적 사고방식이 개인에게 긍정적 태도와 행복을 강요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역설적으로 긍정성과 행복의 강요가 개인의 고통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자신이 늘 행복하지 못한 것에,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고 우울해한다.
강요된 긍정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긍정적 사고가 상황과 환경의 중요성을 외면케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 '외적' 요인이 아니라 '내적' 요인에 달려 있다고 하면, 지금 당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온전히 당신 책임이 된다. 거기에 사회경제적 지위나 환경 같은 요인은 제거된다. p. 67-68
'인격적 존재의 길로 들어선다'는 생각은 중요하다. '개성'이나 '역량'같은 통속 심리학 개념과는 달리, '인격'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연결된다. 제자리에 굳건하게 서서 본질적으로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며, 그 가치가 위협받을 때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 나는 '존엄'이라는 단어를 '인격'과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존엄함이란 최신 유행을 좇는 대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존엄함은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일관된 정체성을 구축하고 지키려는 노력이다. p. 86-87
자기계발서나 자서전과 달리 소설은 삶을 더 정직하게 그린다. 삶의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럽고 다면적인 모습을 그대로 그린다.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삶을 뜻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삶이 수많은 타인과 사회, 문화, 역사와 얽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소설의 책장을 덮고 나면, 자신만만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겸허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겸허함은 끊임없는 자기 탐색과 자기계발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는 일로 우리를 이끈다. p. 157
책을 읽으며 완고한 느낌의 어조가 조금 강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있었지만, 평소에 긍정적인 사고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피로도를 느끼고 있었기에 그 부분을 비판하는 면이 통쾌했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가치가 갖는 소중함과 안정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 가끔 투덜거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라는 부분에서 많이 공감했다. 우리는 이미 대부분 이런 나날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닌 가끔은 투덜대고, 의심하며 조금 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전해져서 좋았다. 새로운 관점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견고하고 안정적인 행복을 지키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간다면 불안하고 고단하게 느껴졌던 삶의 여정도 제법 든든하고 멋지게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