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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o May 20. 2020

미숙한 인간의 죄와 벌

인간수업 (2020)

학교 안에서는 모범생, 학교 밖에서는 영리한 범죄자. 그의 비밀스러운 이중생활은 완벽했다. 같은 반 친구가 그의 위험한 사업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N번방이며, 박사방이며,

터지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들을 보면서 느낀 건 사실 분노보다는 괴리감이었다. 정말 나랑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맞나? 내가 쓰고 있는 이런 핸드폰으로 그런 일들이 발생하는 게 맞나? 하면서. 분명 뉴스를 보고 있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능적인 범죄를 저지르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군림하다가는, 모든게 밝혀지고 양지로 나오면 그제서야 죄송하다고 말(만) 하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들... 텔레그램 박사방의 주인 '박사'는 자신의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하다"는 장엄한 발언을 내놨다.
 
사람을 보는 관점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선하고 악함을 떠나 상을 좋아하고 벌을 두려워하는 본성에 대해 말한 학자가 있다. "인간수업"은 딱 이런 관점에서 인간을 조명한다. 그를 통해 범죄자들이 악마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모범생 오지수가 사실은 온라인으로 매개되는 성매매 사업을 운영중이며, 이를 동급생 배규리에게 들키며 꼬여가는 오지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수업 | 메인 예고편 | Netflix



어른이 꼰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

청소년과 십대 범죄를 다루는데, 이 드라마는 청소년 관람불가다. 결국엔 어른들 보라고 만들었다는 건데, 흥미로운 점은 이 드라마엔 진짜 도움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것 같진 않다는 것이다. "꼰대"라는 건 도움도 되지 않는데 훈계하는 사람이니, 이 드라마는 어른들의 꼰대력이 아이들에게 왜 설득력이 없는지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속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속고 매달리며 오히려 더 낮은 포지션을 가진다. 서민희에게 겪은 것에 대한 경험을 갈구하는 경찰, 아들의 돈을 훔쳐 달아나는 오지수의 아빠, 좋은 부모로서는 결격사유가 많은 배규리의 부모... 조폭들은 당연하고, 서민희에게는 정신적인 지지가 되고 그만두라며 만류도 하지만, 그럼에도 범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이 실장도 모범적인 어른의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지수와 규리를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좋은 사람으로 남지만, 그는 자기 학생들의 비밀을 알 길이 없다. 그나마 마지막 부분에 오지수의 감정컨트롤에 도움이 될만한 말은 하지만, 너무 의미심장해서 오히려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어른들이 분명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경험도 더 많이 쌓았건만, 이 드라마는 "요즘 애들"이 얼마나 어른보다 알고 할 줄 아는 게 더 많은지, 얼마나 더 대담한지 보여주는 수단으로 어른을 사용하는 정도다.


이제까지의 한국 하이틴물은 대부분 비슷한 흐름을 가졌다. '그럼에도 청춘'이라는 주제를 설정한 경우가 많아서 싸웠던 친구와도 화해를 하고,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하는데 성공하고. 아이들도 어른들과 대립하다가는 이내 타협하며 화해하는 결말을 선보였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 하이틴 드라마는 잘생기고 예쁜 청소년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청소년 그 자체에 집중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다. 여태까지의 드라마는 청소년을 말하면서 항상 더 성숙한 존재로서의 어른이 함께 나타나곤 했는데, <인간수업>은 그 흐름을 깨부수고는 어른을 배제하고 그저 더 깊은 아이들만의 세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끝내는 20세를 기점으로 나뉘어진 두 세계를 화해시키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는 그야말로 법적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일 뿐이다. 담배, 성관계와 성매매, 자금 세탁, 모텔 출입,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아이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별 게 아니고, 교복은 그저 나이의 상징일 뿐이다. 이토록 하이퍼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인간수업>은, 어른들이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같은 류의 말들로 외면해온 성년과 성년 직전 아이들의 줄다리기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도록 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저 아이들은 과연 '아이들'인가? 과연 저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의미가 있을까? 사실은 어른들도 나이만 먹었을 뿐, 그다지 '좋은 어른'은 되지 못했는데. 그럼 '좋은 어른'이라는 건 대체 뭔지. 결국 이 작품은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하면서도 어른들에게 그래서 대체 어른이 뭔지 묻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는 와중에도,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드라마를 보며 드는 생각은 사실 하나다. 얌전히 학교나 다니지. 그러나 그 정도로 이 아이들을 내몬건 무엇일지. 답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저 막막할 뿐이다.


눈과 귀가 즐거운 작품.

오프닝씬부터 드라마틱하다. 파격적인 내용을 받쳐주는 입체적인 연출이 매력적이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걸 카메라로 단순히 담는 게 아니라, 감정상태에 따라 역동적인 무빙과 다채로운 샷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초현실적인 오지수의 꿈 장면들도, 인물의 심리 상태와 맞물리며 훌륭한 장치로 작용했다. 물론 그런 촬영에 부응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또 일품이다. 곽기태와 서민희는, 몸짓이며 말투까지 죄다 진짜 일진같아서 배우들이 좀 놀았나 생각이 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얼마나 노력해서 나온 결과물인지 알 수 있었다.


뉴페이스들이 많더라며 보는 걸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저없이 봤으면 좋겠다. 다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높은지, 몸짓이며 딕션이며 모든 부분에서 연기력이 돋보인다. 애초에 감독이 자신보다 십대에 더 가까운 연령인 배우들에게 캐릭터 해석의 자유를 넘겼다고 하고, 씨네21과의 인터뷰를 보면 각자 얼마나 '캐해'를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배역에 빠져들면서도 자신의 캐릭터를 정당화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사회 문제 공부도 많이 하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얼마나 실력있는 뉴페이스들이 성공적으로 등장했는지, 또 이 작품이 얼마나 배우들에게도 멋진 작품으로 남을지 충분히 보였다.

 
똑같은 권리를 요구한다면, 죄의 무게도 같다.
"인간수업"의 원래 제목은 "극혐"이 될 뻔 했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극혐의 감정이 아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래도 인간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어 아주 다행이다.

아무래도 청소년 범죄, 그것도 성범죄와 강한 폭력에 노출되다못해 직접 범죄를 저지르는 학생들을 보며 재미와 동시에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호평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드라마가 인물들이 쌓아가는 죄를 평가하지 않으며,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해석도, 해결 제시도 하지 않는다면 거의 일어난 일을 쭉 훑기만 하는 르포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드라마의 장르는 블랙코미디. 신랄한 극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사회현상비판물은 명쾌한 해답을 내릴 수 없고, 죄에 대한 평가 역시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직접 생각해보아야 의미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작품의 스토리텔링 그 자체로 상당히 좋은 "인간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상대로 정당한 인권과 권리를 지킬 것을 요구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동등한 대우를 받길 원하고 이제는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미성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더 낮을 이유도 없다는 것. 어차피 어른들은 아이들을 막을 수 없고, 보호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회로 몸을 던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인간 수업'은 단 하나. 죄의 무게와 처벌의 두려움 뿐이다. 그걸 모르고 뛰어드는 요즘 애들, 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는 겪어 봐야 안다. 지금은 이 말이 꼰대같지? 나중에 내 나이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거다.


진한새 작가 인터뷰

제작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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