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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끼 Aug 19. 2020

내 삶의 의미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

내 삶의 의미, 써놓고 보니 너무 거창하지만, 일련의 사건 (독서모임, 소개팅 해프닝) 들로 인해 내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20대의 한 때는 내가 가진 능력을 사회를 위해 써야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20대의 포부라 할 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이 무언지도 잘 모르고, 아직 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던 시절의 치기 어리고 순진했던 생각이었다.      

30대가 되어서 나름 숨 가쁜 날들이 지나갔다. 사회의 문법에 익숙해지는 일은 숨이 차기도 하고 힘에 부치기도 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마음의 발 뿌리가 걸려 멈춰 선 어느 날, 거대한 의문이 생겼다.      


내 삶의 의미는 뭘까, 라는 삶의 근본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생각을 하게 된 건, 결혼에 대한 생각에서부터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내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이 내 삶의 의미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의미에 기대어, 남은 생 동안 내 생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러려고 사는 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내 삶의 의미라고 하면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될 것만 같았다. 다른 생명을 낳고 키워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내는 일이라면 다른 나태함에 대한 변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 부모이신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이없으실 수 있습니다.)      

이 넓고 광활한 우주에서 나라는 먼지의 의미는? (by FelixMittermeier @pixabay)

그런데 나에게는 결혼이 없을 예정이니 당연히 아이가 없다. 그렇다면 내 생의 의미는 뭐지? 이 우주에, 이 지구에, 이런 우주의 먼지로 태어나서 머물다가 사라지는 것이 나의 삶의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어쩌면 나이 들면서 진행되는 노화로 인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저 환절기에 호르몬 변화로 인한 우울감일지도 몰랐지만, 그 생각은 나를 오래 침전시켰다.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걸 아등바등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아무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학원에 다니는 것이, 논문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의욕이 없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도무지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겨우 회사만 다니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퇴근하고 그저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 나면 자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나면 달리기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그렇게 흘러 달릴 때 빰에 느껴지는 바람이 서늘해지자 나름의 깨달음이 왔다.      


나란 사람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 생의 의미는 없다.


내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성취하거나, 무언가를 바꾸거나, 인류 역사에 족적을 남길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나를 대단하게 보고 무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환상이다. 그저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과업들을 잘 성취해왔고 어쩌다 보니 그 과업들이 잘 풀려왔을 뿐, 그 모든 것을 걷어내고 보면 그저 벌거벗은 나라는 사람일 뿐이다. 그저 나일뿐이다.      


나를 어떤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 나의 부족한 점을 그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누군가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그저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수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이란 그렇게 되기 위해 안전하고 행복하게 나의 안위를 돌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잘 자고 맛있는 것을 먹고, 나를 돌보는 것이 내 삶의 의미인 것이다.      


내 생을 놓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살겠지만 무리하지 않는 삶,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삶이라면 그것 나름이 득도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 앞의 생이라면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물음표가 가득한 답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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