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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끼 Dec 08. 2020

코로나 시대의 식생활

코로나 19와 에어 프라이어

나는 꽤 고집이 센 사람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하자는 데로 잘하지만 고집이 쎄다. 내가 굽히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버팅기는 편이다.


이런 내가 고집을 피우던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에어 프라이어였다.


에어 프라이어가 그렇게 신세계라는데, 홈런볼만 돌려먹어도 그렇게 맛있다는데, 냉동 만두의 최상의 맛을 이끌어내 준다는데도(만두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난 구매할 생각이 없었다.


집에 살림살이를 늘리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직 내 집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호더기질이 있어서 최대한 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으니, 괜히 에어 프라이어를 사서 냉동식품을 많이 먹게 돼서 살이 찌는 사태를 막고 싶었다.  


또한, 활용도도 낮을 것 같았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만 해도 주말에 집에서 한두 끼나 먹을까 말까,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와 함께 1년, 지고 말았다.


집콕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주말 식사를 챙기는 것뿐인데도 자취 요리 레시피는 이미 육개월만에 다 떨어졌다.


뭐라도 할라치면 그릇은 또 왜 이렇게 나오는지, 혼자 먹으나 여럿이 먹으나 음식을 조리하면 조리에 들어가는 냄비, 그릇들이 수북하게 개수대에 쌓였다.


에어 프라이어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마트에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나는 유행에 끝끝내 저항하는 편인 사람이었는데 버틸 수가 없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손을 드는 편이고, 유행에 저항하는 걸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고 말았다.


에어 프라이어를 기다리며 미리 고구마를 샀다.

자취하면서 한 번도 고구마를 사서 쪄먹거나 구워 먹은 일이 없다. 삶은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가스레인지에 사용하는 군고구마를 만드는 냄비를 사려다가 포기했다. 게다가 지금은 인덕션을 써서 샀어도 그 냄비를 쓸 수가 없다.


배송이 되자마자 에어 프라이어 내부를 닦고 나서 바로 고구마를 구웠다. 따끈 달콤한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따끈 달콤한 고구마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물건을 사지 않는 건 좋지만, 어차피 필요한 물건이라면 그 고민을 할 시간 동안 미리 샀으면 지난 11개월이 더 행복했을 텐데.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다 먹지 못해 남게 되는데,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맛이 없어 그냥 식은 채 먹었던 치킨들을 에어 프라이어가 있었다면 더 맛있게 먹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코로나 시대, 에어 프라이어와 함께 집콕하면서 결국 화악 찐자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행복하다.


주말에 어떤 새로운 에어 프라이어 요리에 도전해 볼까, 그 생각으로 지겨운 집콕의 시간이 1그램 정도 행복해지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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