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새로운 것에 대한 낯섦과 설렘을 주기도 하고 또 어느 익숙한 요소로부터 편안함 혹은 따스함을 주기도 한다. 김해는 나에게 설렘과 포근함을 안겨줬다.
흔히 여행하는 곳을 정하면 명소를 가보기 마련이다. 초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한 번쯤은 들린다는 '수로왕릉'에 가보니 사실 생소한 느낌이 더 강했다. 아마 어렸을 때 갔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유적지를 처음 가본 것은 아니었기에 점점 편해져 갔다. 어른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어색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나 홀로 김해 여행’은 만족스러웠다. 어렸을 때 잘 읽지 않았던 팻말의 글들을 대부분 읽기도 했고 가고 싶은 곳들을 스스로 정하고 계획해보는 것 자체가 기특했다고나 할까.
그렇게 김해의 명소들을 소개해주는 큰 지도까지 찬찬히 둘러보다 '수로왕비릉'에 궁금증이 생겼다. '왜 수로왕릉 바로 옆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음 발길을 옮긴다. 평지가 아닌 언덕에 위치해 있어 걸어 올라가다 구지봉으로 이어지는 문턱에서 뒤로 바라본 풍경은 놀라울 만큼 광활함을 선사했다. 아래엔 유적지, 중간에는 과거에 지어진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위로는 길게 올라선 아파트나 빌딩들이 보였다.
한 폭에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의 변화가 모두 담기다 보니 벅찬 감동이 다가왔다.
김해 봉황대길(봉리단길)은 태어났을 때부터 주택에 살아서 그런지 구석구석을 보면 볼수록 어릴 때 뛰놀았던 동네의 일부 같아 친근함과 아늑함이 느껴졌다. 중앙 쉼터에서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온기를 머금고 있는 마을이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동네 중심을 꽉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자체가 동네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괜스레 흐뭇했다.
대문을 지키는 삽살개가 문턱에 머리를 빼꼼히 드러내 놓고 퍼질러 누워있는 모습에 여유로움이 느껴져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주변 집집마다 화분에 소중하게 담긴 꽃들이 벽 혹은 문 앞에 자리 잡았고, 마을을 새롭고 화사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내가 본 여러 모습들이 모여 포근함을 더했다.
물론 중간중간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이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변화의 일부고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용하던 연필을 다 쓰고 나면 새 연필을 사듯이 말이다. 그렇게 필통 속에 몇 번만 쓰면 끝날 몽당연필에서부터 깎은 지 하루도 채 안된 연필, 아직 깎지 않은 연필까지 다 모여 있다.그 필통이 봉황대길 모습과 같았다.
동네의 바깥쪽을 다녀보니 약간은 오래된 듯하지만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주택들이 보였다. 무심한 듯 걸려 있는 전깃줄과 옥상에 걸려있는 빨랫줄까지. 어렸을 적 동네에서 여러 집을 드나들며 놀았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딘가 형용하기 어려운 친숙함이 다가와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았다. 되려 반가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