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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Nov 17. 2019

Magic, 할머니


#1.
누르스름하고 빳빳하지 않은 종이 한 뭉치가 책상 앞 줄부터 한 명 한 명의 손으로 넘겨져 온다. 손에 받아 들면 돋움체의 두꺼운 글씨로 쓰여있다 -가정통신문-
 
“본교에 발전을 위해 힘써 주신 학부모님들 감사합니다. 2학기 운영비 납부에 관하여...”
“..아이들의 영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급식 비를 아래 기한까지 납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귀하의 가정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학부모회의에 관해 안내드리오니 희망하시는 날짜..
 
학부모 소집이 뭐 이렇게 많고 돈 낼 건 왜 이리 많은지 난 그 누리끼리한 종이가 싫었다. 대충 접어서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가 한 며칠 지나면 가방 안에 꽤 두둑이 쌓여서 한 번에 내다 버리곤 했다. 번번이 가정통신문에 직접 ‘불참석’이라고 적어내도 선생님들은 이해해줬다, 아니 이해해줄 수밖에 없었다. 학년이 바뀐 뒤 매번 마주해야 하는 ‘선생님과의 1대 1 면담’ 때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저는 부모님을 학교에 모셔올 수 없는 데다가, 할머니가 계시긴 하는데 할머니도 무릎이 안 좋으셔서 못 오신다고, 미리 못 박 듯 이야기 한 덕분이다.
사실 할머니는 꽤 정정하셨다. 버스비가 아깝다는 이유로 한 시간 거리도 걸어 다니셨던 분이다. 하지만 학교에 오신다 하더라도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리라, 그래서 할머니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뭘 알겠어, 그런 건 젊은 부모들이나 참석하는 거지. 은연중에 그런 생각 했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 학교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줘도 관심이 없을 것이고, 00이 엄마가 햄버거를 쏘건, 남의 부모님들이 교실에 들어오건 말건, 그냥 할머니는 그런 거 모르니까 학교 얘기할 필요도, 가정통신문을 보여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했다. 단, 수련회, 소풍 가정통신문만은 예외였다.
 
“반 애들 꼭 다 같이 가야 하는 데가 있으니, 얼마 내야 한대. 보내줘.”
 
내가 말하면 할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런 것도 못해줘!” 난 울며불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밤이 될 때까지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께 등을 진 채로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밥 먹어”라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볼멘소리로 “안 먹어” 라며 딱 잘라 말하고 실내화 가방을 챙겨 들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할머니가 슬며시 내 손에 흰 봉투를 쥐어줬다.
 
“칠렐레 팔렐레 뛰어다니다가 잃어버리지 마!”
 
‘치, 없다더니 순 뻥이었어’ 난 그 생각을 하고 말없이 대문 밖을 나섰다.
 
#2.
할머니는 딸딸이를 아꼈다. 중학교 때 한 번은 친구가 집에 놀러 와 있는데 할머니가 “딸딸이가 고장 나서 큰일이네”라고 해서 친구가 엄청 웃었다. 한참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 우리에게 그 단어는 남자들의 자위행위를 일컫는 명칭이었고, 공교롭게도 그것이 할머니가 매일 끌고 다니는 끌차를 (할머니가) 부르던 사투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왠지, 아니 엄청 민망했다. 그 민망함을 숨기려 친구와 덩달아 할머니를 보고 웃었다. 그러나 민망한 건 그 명칭뿐만이 아니었다.
난 점점 작고 느려지는 할머니를 대신해 끌차를 끌고 오고 가야 했다, 끌차 안엔 온갖 반찬 통이며 김치 통이며 과일이며 그릇이며, 뭐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끌기도 힘들고 소리도 ‘덜덜 덜덜’ 요란하기 그지없었다. 길가다가 아는 사람들이라도 만날까 싶어 난 땅만 보고 빨리 걸어갔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열심히도 따라왔다.
그러다 한 번은 정말 민망한 일이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반 친구들을 마주쳤다. 그날따라 헐렁한 교복에 덜덜거리는 끌차까지, 너무 나 자신이 초라하고 볼품없게 느껴졌다. 멀어지는 순간까지 ‘덜덜덜’ 거리는 소리에 친구들이 날 계속 뒤돌아보며 웃을 것 같았기에, 난 할머니에게 끌차를 주고 골목골목을 크게 돌아 늦게야 집에 들어갔다. 집에 돌아온 내게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차려줬다. 밥을 먹는 내내 좀 전에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나는 할머니의 끌차를 더 이상 대신 끌어 주기 싫었다.
 
#3.
아르바이트에서 설거지를 하던 중 유리잔이 깨졌다. 영화에서 봤던 장면처럼 곧이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추운 겨울, 대문 앞에 포대기에 쌓인 핏덩이를 가슴에 품었을 할머니의 옅은 주름을 상상해 봤다. 할머니의 삶이 나 때문에 참 아까웠다.
 
#4.
어느 날 문득,
그동안 간절히 기도 했던,
밤마다 그리는 순간이 마법처럼 이뤄진다면,
셀 수도 없는 무수한 후회들을 만회할 수 있다면,
 
할머니에게 돈을 받았을 그때로 돌아가
“할머니 돈이 어디 있다고. 또 누구한테 빌렸지?”
“나 놀러 안 가도 괜찮아.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훨씬 더 좋은데 할머니랑 같이 갈래.”
말하고 싶다.
 
할머니랑 끌차를 ‘덜덜덜’ 소리 내며 끌고 지나가다 반 친구를 만났던 날,
골목을 돌고 돌다 밤늦게 들어오지 않는 나를
문 앞에서 한참이나 기다렸을 할머니에게 빨리 달려가 안기고 싶다.
“할머니, 미안해.” 말하고 싶다.
 
그냥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가 할머니를 등진 채 잠들던 그날 밤으로 돌아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나 때문에 너무 고생 많았어. 고마워, 사랑해 할머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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