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오빠 방안엔 갖고 싶은 게 많았다. 왜 갖고 싶은지 이유는 없다, 그냥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이 많았다.
나는 방도 없었고 컴퓨터도 없는데 사촌오빠의 큰 방에 들어서면 내 눈길들을 사로잡는 컴퓨터며, 게임 CD, 커다란 조립식 로봇과 장난감 자동차, 색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운동화, 그리고 제일 작은 야구공부터 제일 큰 농구공까지, 또 어른의 글씨체로 뭐라고 적혀있는 축구공도 있었다.
나랑 할머니가 쓰는 방에 내 장난감은 쥬쥬 인형 하나뿐인데, 쳇. 부럽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걸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른이 되는 방법뿐이라고 일찍이 생각했다.
하지만 내 눈에 보물창고인 사촌오빠 그 방에도 단점은 있었다. 창고를 개조한 방이라 겨울이 되면 외풍이 심해 방안이 엄청 추웠던 것이다.
그래서 사촌오빠는 이불을 꽁꽁 싸맨 채 게임을 했는데 이불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이 보라색이었다.
코를 훌쩍이며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사촌오빠, 그런 사촌오빠의 의자 옆 방바닥에 쪼그려 앉아 스타크래프트 속 “ read to roll out!, Delighted to, sir! 에쓰시뷔 굿 투고 썰! 앱 쏠 룰리~” 같은 영어 말들과 웅장한 음악소리를 들으며 바라봤던 보랏빛 발가락.
돌하르방 코 같이 투박한 엄지발가락이 차가운 방바닥 위에 노랗게 질려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할머니 옆에 누워 사촌오빠의 보랏빛 발가락을 떠올리곤 입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는 따듯하고 포근한 이불속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사촌오빠가 미웠다. 미움보다 무서움이 더 컸다. 툭하면 내 볼을 꼬집고, 내 몸을 발로 밀고 내 몸뚱이를 거꾸로 들쳐 바닥에 엎으며 ‘슈플렉스!’를 외쳤다.(왜 그렇게 나를 괴롭혔을까)
또 멀쩡한 내 이름을 내버려 두고 뜻 모를 말로 “먼네!”하며 나를 부르곤 리모컨 가져오라, 물 가져오라, 과자 사 오라, 라면 끓어오라, 쓰레기 갖다 버려라 하며 쭉 찢어진 두 눈은 한시라도 가만히 있는 나를 못 보겠다는 듯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 날 괴롭히기 위해 따라다니는 것 같았고 난 그 두 눈과 마주치기 싫어 집에 없는 듯 숨죽여 지내야 했다.
나는 사촌오빠가 집에 없는 틈이면 오빠 방에 몰라가 장난감을 구경했고, 사촌오빠가 시킨 과자 심부름을 하고선 방에 들어갔을 때, 그때 잠시 과자를 주러 들어온 핑계를 삼아 사촌오빠 옆에서 잠시 컴퓨터 게임을 구경했다.
나랑 10살이나 차이나는 나이와 체격과 말투,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얹혀사는 작은 아빠의 맏아들인 사촌오빠였다. 그런 사촌오빠에게 한마디도 못 대들던 보잘것없는 꼬맹이였던 내가 보랏빛 발가락을 보고 내 처지를 위안 삼았다. 그리곤 “고거 참 고소하네”라는 생각까지 품었다니 나도 참 심술궂었구나 싶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가엾다고만 생각했던 어린 시절 속에 내가 이런 심술궂은 면도 있었다니, 나는 생각 의외로 맹랑하고 강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꼬맹이는 자라나고 있었다.
가지지 못해도 괜찮음을 배우며
막연히 부러워해하며 나를 작게 만들지 않아도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며.
나는 어떤 환경이든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며.
지금도 이따금 부러운 것들이 불쑥불쑥 나타나지만 어릴 적 꼬맹이가 바라보던 별과, 풀들과 닮은 약한 생명들을 바라보고 돌볼 수 있길. 따듯한 누군가의 품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늘 감사할 수 있는 나로 성장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