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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래 Sep 25. 2019

새삼이

매일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어여쁜 아이

새삼이에 대한 이야기를 글에 담는 것을

매번 미뤄 왔다. 나의 부족한 말주변으로 이 아이를 형용하기란, 이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을 적어내기가 담스러웠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아이가 떠나고 나면, 새삼이에 대한 기억만이 남을 것이고 그걸 글로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어쩌면 나는 희미한 기억 속에서 새삼이를 두 번, 어쩌면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그런 겁이 문득 들었다. 그 겁이 나를 글 앞으로 데려왔다.


4년 전, 가만히 있어도 명치 언저리에 땀이 맺히는 8월이었다


페이스 북을 보다가 당시에 같은 극단에 계시던 선배님이  올린 게시글에 엄지 손가락이 멈췄다.

게시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

한 달가량 고양이가 주차장에서 울고 있어 구조함

버리고 간 주인을 기다리며 배회하는 듯

너무 마름/페르시안 추정/성별 모름

양 가능하신 분 카톡 부탁

-

어느새 내 넓은 오지랖은  검지 손가락을 타고  선배님께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고양이는 버려진 게 확실해 보이시는지, 입양자는 찾으셨는지, 제가 큰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어서 걱정되지만( 너한테 입양 보낸다고 아직 안 했는데?) 한번 만나볼 수 있을지 등등을 물었다.

그러자 선배님께서 고양이 사진을 몇 장 연달아 내게 보내셨다.


 손에 붙들려 있는 하얀 고양이의 두 동공은

겁을 먹은 듯 까맣게 확장되어 그 큰 눈을 다 덮고 있었고 눈동자에 비해 반도 안되리만큼 작은 세모난 분홍색 코와 그 아래로 동그랗게 앙다문 주둥이.

 '세상에 이렇게 이쁘게 생긴 아이를 버리고 갈 수 있나?' 의문이 들었다.

'고양이가 가출한 건 아닐까..?'

가끔 나비를 쫄래쫄래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린다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4년 전, 24살의 나는

'사랑받아야 할 법해 보이는 외모'라는 편협한

기준으로 그런 판단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아이를 실제로  만났을 때,

심장에 말 못 할 따듯한 것이 밀려오며,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구나, 이쁘다는 말은 새삼스러운 말에 불과해...(심쿵)"


내 눈 앞에 보이는 그 작은 고양이의 신비한 움직임에는 사랑이라는 모든 형태와 의미를 한 번에 담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 안는 법을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이를 선배님께 건네받았다.

털이 복슬복슬하고 따듯하고 물컹한 몸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내게 안기기를 거부하는 듯 아등바등 몸을 비틀며 크게 울었다.

"내려 놓으라옹 안 그럼 죽여버리겠다옹"

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고양이를 선배님께 다시 드리곤

아이게서 멀리 떨어졌다.

나중에서야 날 처음 만났을 때 새삼이가 느꼈을 공포감, 즉 덩치 큰 존재 둘이 자신의 몸을 허락도 없이 (작은 동물을 대뜸 만져선 안되고 손 냄새를 맡게 해 주는 것이 먼저다.)

공중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공포, 불안, 스트레스를 알게 되곤 너무나 새삼이에게 미안했었다.


또 한 가지.

반려동물행동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친구에게 들은 사실인데, 처음 강아지나 고양이를 입양해 올 때 아이들을 직접 내 몸에 안은 채로 데려와선 안된다고 한다.

동물은 자기가 원래 있던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이동하는 순간 공간에 대한 인식을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새 공간으로 이동되는 과정 중 인간의 몸에 먼저 닿음으로써 인간, 곧 주인의 몸을 집(안전한 영역)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히  주인과 잠시만 떨어져도, 자신의 안전한 영역을 잃었다는 것에 분리 불안증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꼭 아가들을 케이지에 넣어서 입양을 하고,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을 키울 준비와, 마음, 최소한의 배려도 몰랐던  못난 나는 그렇게 새삼이를 덜컥 데려 오게 되었다.


선배님에게 다시 고양이를 안겨주고

먼발치에서 그 아이를 바라보았을 때

아이 은빛 섞인 하얀 털이 햇빛에 비춰 새하야리 만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 겁에 질린 아이를 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눈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 안녕, 새삼아.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잘 부탁해"



짧은 그 사이에,  나는 그 아이를 새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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