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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황금기는 늘 기술이 조용해졌을 때 온다.

기술경제학자 "칼로타 페레스"의 관점으로.

by Maven

오늘날 기술 혁명을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인물이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 출신의 기술경제학자 "칼로타 페레스(Carlota Perez)"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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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책 『기술 혁명과 금융 자본』을 통해

지난 250여 년간 반복되어 온 산업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꽤 강력한 패턴을 읽어냈다.

(국내에서는 절판되었다. 아쉽게도..)


그에 따르면 기술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나 서비스가 등장하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 혁명은
- 막대한 기대와 자본이 먼저 몰려드는 ‘설치기(Installation)’와,
- 그 기술이 제도와 산업에 안착하며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배포기(Deployment)’라는 두 개의 큰 파도로 전개된다.


즉, 기술은 발명되는 순간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 돈이 먼저 움직이고,
- 그다음 혼란이 오고,
- 그 혼란을 사회가 제도적으로 흡수해낼 때
- 비로소 하나의 시대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AI 열풍은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과연 어디쯤에 놓여 있을까.




칼로타 페레스(Carlota Perez)의 이론이 흥미로운 이유는,

기술을 단순히 “새로운 발명품” 정도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 혁신이 등장하면 산업만 바뀌는 게 아니라,

돈이 움직이는 방식과 사회 제도, 그리고 경제 전체의 리듬까지 함께 바뀐다고 봤다.


쉽게 말하면, 기술은 그냥 “좋은 기술이 나왔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기대와 투자, 거품과 붕괴, 그리고 제도 정비를 거치면서

하나의 거대한 경제 사이클을 만든다는 얘기다.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어떤 기술을 볼 때 자꾸 “이 기술이 대단한가?”만 묻는데,
실제로 더 중요한 질문은

“이 기술이 세상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① 기술 혁명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페레스에 따르면 하나의 거대한 기술 혁명은

보통 50~60년 정도의 긴 흐름을 가진다.
그리고 이 흐름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 하나는 설치기(Installation)이고,
- 다른 하나는 배포기(Deploymen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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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기는 말 그대로 새로운 기술이 세상에 “깔리는” 시기다.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산업 구조와 인프라를 만드는 구간이다.
이때는 대체로 금융 자본이 앞장선다.
즉, “이거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돈을 먼저 끌고 들어온다.


반면 배포기는,
그 기술이 진짜로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생산성을 만들어 내는 시기다.
이때부터는 기술이 뉴스가 아니라 "일상"이 된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는 생산 자본, 즉 실제 산업과 기업 운영의 논리가 더 중요해진다.




② 설치기에는 늘 기대와 과열이 함께 온다


설치기의 초반은 ‘돌입(Irruption)’ 단계다.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가 등장하고, 초기 혁신가들이 시장에 등장한다.
아직은 낯설지만 “뭔가 큰 변화가 시작됐다”는 신호가 보이는 시기다.


그다음은 ‘광란(Frenzy)’ 단계다.
이때부터는 기술 자체보다 기대감이 더 빨리 커진다.
사람들은 미래를 먼저 사고, 자본은 가능성에 베팅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가치보다 훨씬 큰 돈이 몰리고, 결국 투기적 거품이 생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거품은 언젠가 반드시 터진다.




③ 진짜 중요한 건, 버블 이후다


페레스 이론에서 핵심은 “버블이 생긴다”가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건, 버블이 무너진 뒤 사회가 무엇을 하느냐이다.


광란기가 끝나면 전환점(Turning Point)이 온다.
버블 붕괴, 경기 침체, 혼란, 불신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같은 사건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시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때 비로소 사회가 새로운 기술에 맞는 규칙을 만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 인프라, 규범, 산업 질서가 다시 정비되어야
그 기술이 “투기 대상”이 아니라 “생산성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즉,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건 발명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발명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과정까지 포함해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④ 황금기는 기술이 조용해졌을 때 온다


이후에는 배포기(Deployment)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 시기의 초반이 바로 ‘시너지(Synergy)’ 단계다.

기술이 표준화되고, 인프라가 갖춰지고, 산업 전반에서 수익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이 기술이 혁신적이다”라는 말보다
“이 기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진짜 황금기는 보통 이 시점에 온다.
기술이 화려해서가 아니라,
기술이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성숙(Maturity)’ 단계다.
이때는 기술이 완전히 일상이 된다.
시장도 어느 정도 포화되고, 성장률은 둔화된다.
혁신의 동력은 점점 약해지고, 사람들은 다시 다음 파도를 기다리게 된다.


즉, 어떤 기술 혁명의 끝은
“기술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기술이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는 것”에 가깝다.




⑤ 역사는 기술의 연속이 아니라, 기술 파도의 반복이다


페레스는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 역사를
서로 다른 기술 혁명의 파도들로 구분했다.


대략적으로 보면 이런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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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업혁명 — 면직물, 기계화, 수로
(2) 증기와 철도의 시대 — 증기기관, 철도
(3) 강철과 중공업의 시대 — 강철, 전기, 화학 공학
(4) 석유와 자동차의 시대 — 내연기관, 석유, 대량생산
(5) 정보와 통신의 시대 —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터넷, ICT


이렇게 보면 기술 발전은 단순히 발명품이 쌓여 가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이 등장 - 돈이 몰림 - 거품 형성 - 붕괴 - 제도 정비 - 사회 전반 확산”이라는

패턴이 반복되어 온 셈이다.

그래서 페레스의 이론은 기술사(史)라기보다
기술과 자본, 제도, 사회 변화가 얽히는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에 가깝다.




⑥ 그래서 지금 AI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


요즘 이 이론이 다시 자주 언급되는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AI를 보면서
“우리가 5차 정보통신 혁명의 끝자락에 있는가,
아니면 AI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기술 혁명의 초입에 들어선 것인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의 AI 시장을 보면 페레스가 말한 설치기,

그중에서도 광란(Frenzy) 단계와 닮은 부분이 꽤 많다.


막대한 자본이 몰리고,
기대가 실제 성과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기업들은 앞다퉈 AI를 붙이고,
시장에서는 “이번엔 진짜다”와 “이것도 버블이다”가 동시에 나온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이 기술이 금융 자본의 기대를 넘어
실제 산업 구조와 노동, 교육, 규제, 생산성 체계까지 바꾸는 수준으로 갈 수 있느냐이다.


즉, AI를 평가할 때도 “모델 성능”만 볼 게 아니라
“사회가 이 기술을 받아들일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


정리하면, 칼로타 페레스의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기술은 발명되는 순간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돈이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 혼란이 오고,
그 혼란을 견딜 수 있는 제도와 질서가 정비될 때
비로소 기술은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진다.


결국 기술 혁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자본과 제도, 그리고 사회의 적응 속도를 함께 보는 문제다.


그래서 어떤 기술이 등장했을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기술이 얼마나 새롭지?”가 아니라,
“이 기술이 앞으로 어떤 경제 질서와 사회 구조를 만들 수 있지?”


이 질문까지 가야
비로소 기술을 ‘제품’이 아니라 ‘시대 변화’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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