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드는 고민 중 하나는 방학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방학의 기억이라면, 집에서 뒹굴거리며 엄마가 해주는 간식을 먹거나 곤충채집을 하러 뛰어다니거나 방학 마지막날 일기를 몰아서 썼던 기억들이다. 거기에 하이라이트는 가족여행이었다.
우리네 시절 아빠들이 그렇듯 아빠는 늘 바빴다. 주말부부 셨기에 평일엔 얼굴도 못 봤지만, 주말이라고 요즘 아빠들처럼 우리와 놀아준다거나 책을 읽어준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그런 아빠가 철칙처럼 지켰던 단 한 가지는 여행이다. 지금의 내가 이렇듯 여행이 좋을 좋아하고, 살아가면서 여행으로 힘을 얻는 건 아마 어렸을 적 가족들과의 여행이 나에게 행복한 기억을 남겨주었기 때문일 거다. 산이며 바다며 작은 텐트에 4 가족이 몸을 구겨가며 잤던 기억과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언니와 발을 동동 거리며 놀았던 기억들.
정확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그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 방학이라니! 여름방학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서 양쪽할머니집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겨울방학은 무려 2 달이다. 예전 우리 때와 달리 봄방학을 없애고 1월 초부터 학기 시작 전까지 쭉 쉬는 학교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아이의 학교인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겨울방학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1학년 첫겨울방학이고 추워서 외부활동은 못할 테고, 나는 방학 동안 다음 학년의 공부를 선행시키는 부지런한 엄마는 아니기에, 우리는 떠나야만 했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주었던 것처럼 아이에게 여행의 기쁨과 설렘 두려움 등을 몸에 쌓이게 하고 싶었다.
아이와 해외여행은 코로나 바로 직전인 3년 전 세부가 마지막이었다. 5살이었던 아이는 8살이 되었고 여행을 갈 시점에는 9살이다. 그렇다면 장거리 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구글맵을 켜고 세계지도를 훑어봤다. 동남아를 지나 호주도 살펴봤다가 중앙아시아도 보고, 그러다 어느덧 나타난 유럽. 사실 유럽에는 내 치트키가 있다. 사촌동생이 스위스 남자와 결혼해 그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 그곳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촌동생의 존재가 8할이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녀의 존재보다 더 커졌다.
겨울의 유럽 춥다고요? 한국보다 추운 곳 많이 없더라고요.
비행기 값 비싸다고요? 마일리지 열심히 모았죠.
한 달 동안 체류비는요? 방학되기 전 열심히 아르바이트했죠.
엄마의 욕심은 아닌가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얘기하는 아이를 보니, 욕심만은 아니었던 거죠.
9살 아이와 37살 엄마 큰 배낭에 캐리어 하나 들고 그렇게 스위스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