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핵보컬 Mar 29. 2024

'고전'과 '경전' 그 사이, 듄: 파트 2 리뷰

Sainkho Namtchylak - Stepmother City

성경, 코란 등의 종교경전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을 영화화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실제로 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양이나 에피소드 자체가 짧기에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요하는 경우가 많으며 충분한 길이를 갖추고 있더라도 기승전결을 완벽히 갖춘 스토리도 아니고,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 대다수의 경우 일반적인 인간보다는 선인에 가깝지만 그 흠결 때문에 다시 몰락하는 경우가 꽤나 많기에 어디까지 다루어야 보는 관객이 만족감을 느끼고 즐거운 기분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만들지 애매해지는 구석이 있다. 게다가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종교 경전은 단순한 흥미 위주의 스토리가 아니기에 어쭙잖은 상상력이나 각색을 곁들였다가는 신성모독의 혐의를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위험성까지 있다. 실제로 모세를 다룬 대다수의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에서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야기까지만을 다루며 희망에 가득 찬 해피엔딩으로 작품이 마무리되지만, 그 이후에 함께 탈출한 백성들이 타락하고 그를 원망하는 모습이나 그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실제로 그와 함께 탈출한 이들도 가나안에 도달하기 전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려내지 않는다. 타락한 세상의 유일한 선인인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세계의 멸망으로부터 인류와 생명체를 지켜내는 것에 대해서는 화려하게 묘사하지만, 그가 이후에 주정뱅이가 되어 추태를 부리고 가족을 저주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설령 이를 다룬다 하더라도 여기에 자의적인 해석과 상상력을 더해 버리거나 어두운 면모를 너무 적나라하게 다룰 경우 작품성과는 별개로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노아' 같이 신성한 경전을 왜곡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디스 이즈 스파르타'가 아니라 '아이앰노아'

영화화시키기에 어려운 건 고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전은 앞서 말한 경전과는 반대로 기승전결이 너무 완벽하고 창작물이라는 매체 속에서 다루기가 너무 좋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기에 오히려 역으로 건드리기가 힘들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만과 편견', '노트르담의 꼽추', '삼총사' 등의 작품은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명작으로 일컬어지지만 그것들이 이미 후대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에 역으로 그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들과 스토리 자체가 이제 와서는 클리셰처럼 느껴진다는 함정이 있다. 즉, 이러이러한 류의 캐릭터의 시초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데 그걸 모르고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뻔하고 지루한 인물로 느껴질 수도 있으며, 명장면이 되어야 할 부분에서 '이거 이미 수 차례 본 건데?'라는 식상함을 안겨줄 수도 있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80, 90년대의 명작 일본 애니나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영화화 작품 중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들이 극히 드물다는 점만 보아도 이러한 명작을 스크린에 새로이 다시 옮겨내기가 얼마나 어렵고 까다로운 일인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의 뛰어난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액션씬을 스크린에 온전히 담아내도 "이거, 매트릭스에 이미 나온 거 아니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스타워즈 시리즈와 신세기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팬들은 "이건 스타워즈가 아니야!" "나의 아스카는 그러지 않아!"를 외치며 불만을 쏟아낸다.

이런 거 이제 너무 많이 봤다...

프랭크 허버트의 대표작인 '듄'은 앞서 말한 고전과 경전의 사이쯤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SF소설인 동시에 대하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스타워즈' 등의 스페이스 오페라와 SF 고전 작품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역시 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왕좌의 게임' 같이 권력자의 암투를 다룬 작품들에도 그 영향력이 상당하다. 게다가 단순한 SF 소설의 서사구조와 인물구도에서 벗어나 있는 이 독특한 작품의 주인공은 프로도나 루크 스카이워커보다는 종교 경전의 선지자에 가까운 캐릭터이며, 작품 자체가 영웅의 탄생과 승리를 그리기보다는 신화와 종교와 영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가졌기에 종교 경전과 비슷한 면모도 지닌다. 그리고 장르 팬들 역시 '듄'에 대한 충성도가 높으며 SF의 역사 속에서 거의 꼭대기에 위치한 작품이기에 이를 영화화한다는 것은 그 어떤 고전이나 경전을 스크린에 옮기는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러한 것이 1984년에 나온 데이빗 린치 감독의 '듄' 영화화는 비주얼적으로는 흥미로웠으나 그 외의 모든 분야에서 처참했고, 무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스크린에 다시 옮겨진 드니 빌뇌브의 '듄' 첫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지나치게 느린 흐름, 기승전결이 거의 없다시피 한 미완의 스토리 때문에 연출과 비주얼 면에서 굉장히 훌륭하긴 하나 서사적으로 완벽하진 않은 작품으로 여겨졌다.

84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훌륭한 비주얼, 완성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처참한 스토리

제작 초반의 우려와는 다르게 속편이 만들어질 수 있을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드니 빌뇌브의 '듄' 시리즈가 제2의 '반지의 제왕'으로 등극할 것인지, 혹은 스티븐 킹 원작의 호러영화 '그것'처럼 1편에서는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2편은 평작에 머무는 그저 그런 작품이 될 것인지는 이번에 나온 '듄: 파트 2'에 걸려있었기에, 감독의 부담은 매우 컸을 것이고, 관객의 이에 대한 기대와 우려는 동시에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었다. 일단 앞서 이야기했듯이 '듄: 파트 1'은 연출과 비주얼 면에서는 압도적인 영화이고 어떤 면에서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 명작이었지만, 서사의 측면에서는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맥이 뚝 끊겨버린 미완의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다. 즉, 이번 2편의 숙제는 이전 작품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연출의 퀄리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1편에서 완성되지 못한 서사 및 스토리텔링까지 완성시켜야 하는 거대한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둘이 만났더니 영화가 끝나버렸어

개인적 일상의 바쁨으로 인해 이제야 극장에서 보고 온 '듄: 파트 2'는 시청각적으로는 이전 파트 1을 능가할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었다. 초중반 사막에서의 전투 씬과 스토리 흐름은 딱 1편만큼의 재미와 즐거움을 안겨주는 정도였기에 다소 '좋긴 한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지난번만큼 충격적이진 않다'라는 생각이었으나, 중반부터 잠시 다른 행성으로 무대를 옮긴 영화는 본격적으로 또다시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비주얼로 나를 압도했다. 후반부 역시 다소 급박한 느낌은 있었으나 전투의 스케일이 장대했고 1편을 본 사람이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만한 통쾌함이 있었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가 빠지는 곳 하나 없이 모두가 훌륭했고 연출에는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이어 자신이 SF 장르에서 거장 자리에 오를 만한 명감독이라는 걸 어필하는 드니 빌뇌브의 내공이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후반부부터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부분들도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전작에 이어 시청각적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훌륭한 연기와 연출력을 어필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서사적으로는 명작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모자람이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1편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범접할 수 없는 듯한 위엄을 떨친 캐릭터들 중 일부는 이번 작품에서 급작스럽게 허술함을 노출하는데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입장을 일일이 세세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기에 몇몇 인물들에서는 '캐릭터 붕괴'가 느껴질 정도의 괴리감이 보이며, 그 외 다른 인물 몇 명도 이해와 납득이 쉽게 가지 않는 멍청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뭔가 보여줄 듯이 폼은 잔뜩 잡아놓고 되짚어보면 '뭐야, 별거 아닌 애였잖아?' 싶게 느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원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관객이라면 어떤 캐릭터들이 갑작스럽게 돌발 행동을 하거나 적대적인 인물로 돌아선 것인가 싶은 기행을 보이는 듯 느껴질 것이고 원작에 대한 애정이 풍부한 관객이라면 역으로 엄청난 축약과 비약으로 점철된 서사에서 고전 명작이 훼손되었다는 불쾌감이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멋지게 폼잡고 있으나 모두가 멋지게 그려지진 않는다

안 좋은 점도 꽤나 이야기했으나 전체적으로 즐겁게 보았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서사적으로도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뿐이지 그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내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느낀다. 단, 서사의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과제를 이번 편에서도 완수하지 못하고 어물쩍 다음 3편으로 넘기는 듯하기에 이 시리즈에 대한 최종 평가 역시 3편이 얼마나 잘 나오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듄'이라는 작품은 고전과 경전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기에 이를 영화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까지 완성도를 끌어올린 것만 해도 기립박수를 보내도 모자라지 않을까 생각된다.


'듄'의 이번 영화화 버전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고 잠시 밈화되었던 것이 바로 1, 2편 모두에서 시작 부분에 잠시 들리고 1편의 사다우카 병사들의 결집 장면에서 들렸던 독특한 목소리인데, 기괴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노래는 바로 흐미, tuvan throat singing이라 불리는 몽골 쪽의 배음 창법이라고 한다. 시트콤 '빅뱅 이론'에서 셸든이 레너드를 열받게 하기 위해 이 창법을 연습하는 장면도 나오고 국내에서는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의 무대에서 이를 살짝 선보인 적도 있다. 이러한 창법을 일렉트로닉 음악과 여러 장르에 결합시킨 대표적인 음반 중 하나가 바로 Sainkho Namtchylak의 'Stepmother City'이다. 첫 트랙 'Introduction'에서는 비장하고 기괴하게, 'Dance of Eagle'에서는 다소 흥겹게, 'Like Transparent Shadow'에서는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에 이러한 독특한 창법이 어우러지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듄'의 여운을 이어 색다른 음악을 접하고 싶다면 강력히 추천하는 앨범이다.


이전 05화 블록버스터 음악의 아버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