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친근한 록밴드 청년들
나의 직업은 치과의사이다. 그리고 부업과 취미의 사이 어딘가쯤의 위치에서 자칭 인디 록밴드의 보컬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홍대에 공연하러 가면 이따금 "오~치과 선생님 오셨네." 하면서 나를 맞이하는 일이 있고, 역으로 치과의사 모임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취미로 치과 하는 연예인 오셨다." 하면서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악의가 없는 것을 알기에 이런 말을 들을 때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지만 양쪽에서 보기에 내가 좀 독특한 사람으로 보일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요즘엔 다른 나라에서도 밴드를 한다는 것이 부자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이기에 어느 정도의 지명도를 가진 밴드더라도 따로 본업이나 부업을 가지는 경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생활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한쪽에서는 K-Pop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밴드를 하는 이들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음악으로 먹고사는' 일이 불가능한 수준일 정도로 그 격차가 심한 건 좀 특이한 상황인 것 같긴 하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인이 본래부터 락을 싫어하는 민족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복면가왕' 같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관객에게 가장 큰 호응도와 흥을 이끌어내는 것은 록밴드의 무대 혹은 평범한 가요를 락으로 편곡한 경우일 때가 많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밴드부에는 입부를 희망하는 이들이 매해 끊이지를 않고,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및 게임의 OST에서 가장 절정에 다다르는 부분에서는 여전히 상당수의 경우 락 스타일의 곡이 활용된다. 또한 뭐든지 기본 이상은 하는 한민족답게 밴드부에 입단한 친구들은 약 한 달 만에 엄청난 실력의 향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속한 곳이라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조그마한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팀이라도 이따금 내가 기가 죽을 정도로 월드 클래스의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는 밴드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거의 매해 그린플러그드, 펜타포트 등의 록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한국에 이렇게 장르 팬들이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객석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앞에 선 밴드가 유명 밴드든 아니든 간에 분위기는 항상 뜨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티벌이 아닌 락의 무대는 과반수 이상의 경우 객석이 한산하고, 행사를 뛰더라도 밴드가 받는 돈은 크지 않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한국의 록밴드는 버는 돈과 운영에 드는 돈이 비슷하기라도 하면 다행일 정도로 흑자를 내기가 힘들다. 대학교에서 밴드부를 할 때 드림씨어터나 카시오페아의 연주까지 소화해 내고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선후배와 친구들은 이제 나만 빼고 다 음악에서 손을 뗀 지 오래이며, 상당수의 경우 아예 록음악에 대한 희미한 관심조차 사라진 상태이다. TV의 경연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를 만들며 화려하게 주목받는 밴드 혹은 보컬 역시 그 관심의 강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냥 합주실에서 오가며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돌아와 버리고 만다. 오히려 TV 출연이 독이 되어 애매하게 공연 활동에 각종 계약으로 인한 제약이 걸려 무대에 서지도 못하며 시간을 허비하다가 밴드가 와해되는 경우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세계 다른 국가에서도 현시점에 록밴드의 운영과 유지가 타 음악 장르에 비해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만국 공통으로 존재하는 보편적인 문제점도 있고 대한민국에 국한된 특수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문제점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타 장르에 비해 밴드의 무대는 설치 자체가 훨씬 까다롭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은 연주가 완성되어 있는 음원 파일을 틀고 노래할 가수만 무대에 서도 공연이 가능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밴드의 무대는 기본적으로 드럼, 기타와 베이스 앰프가 세팅되어 있어야 하고 소리를 맞추는 리허설도 상대적으로 더 까다로운 점이 존재하기에 방송이나 행사 무대를 주최하는 측에서 꺼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밴드 무대의 기본 세팅에 드는 비용으로 다른 가수나 팀을 하나 더 섭외할 수 있을 수도 있고, 이동과 인력에 더 많은 수고가 들기 때문에 가성비가 떨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비용 때문에 밴드는 섭외가 결렬되거나 그만큼의 추가 비용이 밴드에 대한 페이에서 고스란히 빠지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테크니컬 한 문제나 경제적인 비효율성 등이 존재하지만 지금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밴드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다. 과거에 한국에도 멋진 록밴드들이 존재했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들국화와 산울림은 대표적인 한국의 록밴드였고 90년대에 들어서도 솔로 가수이긴 하지만 신성우와 같은 미남 록보컬이 인기를 끌었으며 서태지와 신해철은 커리어 내내 록을 살짝 곁들인 힙합과 팝부터 뉴메탈과 심포닉 락, 인더스트리얼, 이모코어까지 소화하며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냈다. 세기말 풍조와 세계적인 뉴메탈과 인더스트리얼 붐(당시에는 이를 뭉뚱그려 언론에서 '하드코어'라 칭하기도 했다)으로 인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메인스트림 수준의 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홍대에 다양한 밴드들이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많은 관객들이 클럽 공연을 보러 다니며 인디밴드만의 리그가 형성되고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는 대중적으로 안 좋은 선입견이 상당히 따라붙었는데 70, 80년대부터 '밴드 하는 놈들은 죄다 마약이나 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녀석들이다'라는 인식이 생겨남으로 인해 단순한 선입견만이 아닌 실질적인 탄압까지 받는 밴드들이 있었고, 90년대에는 서태지의 음악을 거꾸로 재생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소리가 난다든지, 긴 시대에 걸쳐 생겨난 다양한 선입견과 루머들은 록밴드를 골칫거리와 사탄숭배자들로 매도했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 밴드라 하더라도 방송에는 출연이 항상 힘들었고, 팬들은 록밴드를 사랑해도 일반 대중은 이들을 혐오하는 희한한 구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 2005년 7월 30일 모 밴드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알몸노출 사건을 일으키며 한 동안 밴드는 사회악이라는 인식에 거대한 방점을 찍게 되었다.
이후 밴드맨들에게 가장 급한 과제는 이러한 안 좋은 선입견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대중에게 박힌 록밴드에 대한 나쁜 인식을 뿌리 뽑기 위해 이미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록커 형님들은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옆집 아저씨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등장하여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고 싱거운 농담을 하며 "우리는 그냥 평범한 동네의 아저씨입니다. 하하하, 무서운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친근함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젊은 록커들은 방송에서 록밴드의 운영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호소하며 "우리에게는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메인스트림 방송에 등장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모든 이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하며 록커들이 정말 소소한 관심과 사랑만 받아도 얼마나 감사해하는 이들인지, 얼마나 예의가 바른지를 어필하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단기적으로 이는 필요한 과정이었고 이러한 것들로 인해 적지 않은 밴드와 뮤지션들이 바뀐 시선으로 인해 메인스트림으로 받아들여지고 대중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단, 이것은 일시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으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장기적으로는 록밴드들에게 독이 되었다고 느낄 만큼 크나큰 부작용을 동반하고 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