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를 파괴하고 보는 이의 멘탈까지 무너뜨린 괴작, '에이리언 3'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 및 몇 작품들에 대한 스포일러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SBS에서 매주 방영하던 '영화특급'에서 영화 '에이리언 2(이 당시에는 에일리언이 아니라 에이리언이 공식표기였다)'를 처음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SBS에서도 이와 같은 포맷으로 매주 영화를 하나씩 틀어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매주 이 프로그램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즐겼던 것 같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에이리언 2'라는 제목의 영화가 방영되었고, 이 영화는 한순간에 나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TV 방영용이었기 때문에 아마 여러 장면들이 대거 잘려나갔겠지만, 어린 마음에는 충분히 공포스럽고 무섭고 끔찍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 이 영화가 뚜렷하게 남았던 이유는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재미있어서였다. (좋은 의미로)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는 여주인공 리플리에게 빠져들었고, 스페이스 마린(우주 해병대)들이 휘두르는 멋진 무기들, 크리쳐의 무시무시한 디자인과 클라이맥스 파트에서의 파워로더와 퀸 에일리언의 대결은 마치 로봇 만화의 전투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기에 시종일관 무언가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다시 봤을 때에도 '에이리언 2'는 속편으로서도, 그냥 하나의 독립된 영화 자체로서도 굉장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편을 압도하는 스케일, 호러에서의 액션 SF물로서의 성공적인 장르 변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세계관의 확장 면에서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인 엘렌 리플리의 서사 면에서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1편에서의 리플리는 호러 영화 최후의 생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연약한 여성이지만 순발력과 기지를 발휘했고, 어느 정도의 운도 따라주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었고, 그녀와 관련한 깊은 사연이나 캐릭터 서사는 딱히 없었다. 외형적으로도 2편과는 다르게 굉장히 여성적이었고, 심지어는 당시 호러 영화의 클리셰와 같은 (나름의) 노출 서비스씬까지 있었으니 지금의 여전사 이미지와는 다르게 초창기의 리플리는 잘 만들어진 호러 영화의 평범한 히로인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그가 2편에서는 캐릭터의 내적, 외적인 변화로 인하여 더 깊이가 있는 서사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했다.
1편에서 겨우 생존하였으나 다시 현실로 복귀한 그녀에게 남은 것은 깊은 트라우마뿐이었고, 운명과 시간의 장난으로 인하여 돌아온 그녀에게는 남은 가족이 다 사라져 있는 상태였다. 그의 동료를 몰살한 괴생명체에 대한 그의 진술을 불신하고 부정하던 회사는 뻔뻔하게도 일이 터지니 그녀를 다시 지옥의 현장으로 파견하고, 거기에서 리플리는 같은 형태의 괴생명체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녀인 뉴트와 마주하게 된다. 비슷하게 가족을 잃은 처지인 그들은 시련을 함께 극복하며 서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되고, 결국 1편에서는 도망만 다니기 바빴던 리플리는 2편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뉴트를 지키기 위해 직접 적진에 뛰어들고, 막판에는 심지어 가장 큰 개체인 퀸 에일리언에 정면승부로 맞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평범하게 공포를 느끼는 여성이었던 리플리가 더 중요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종의 여전사의 탄생 서사에 감명받는다. 게다가 모든 것을 잃었던 두 여주인공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막판에는 리플리가 해병대의 단원 중 하나인 힉스 상병과 일종의 동료애와 이성 간의 애정 사이의 무언가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로 생존자들이 나름의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것에 감명을 받게 된다. 징그러운 크리처들이 등장하고 정신없는 액션이 펼쳐지는 SF 활극이지만 그 안에 있는 진정한 서사가 있기에 공포감과 재미도 느끼지만 일종의 따뜻한 감동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의도적으로 '에이리언 2'를 틀어서 다시 관람할 정도로 나는 이 영화를 나의 인생영화 Top 10 안에 넣을 만큼 좋아한다.
한 동안 나는 속편인 '에이리언 3'를 의도적으로 피해 다녔다. 어디에서 스포당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주인공인 리플리가 막판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들었고, 전체적으로 포스터 비주얼이나 모든 면에서 뭔가 싸한 느낌이 있었기에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이 정확하다면) 대략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던 어느 심심했던 금요일 밤에, 운명의 장난처럼 또다시 SBS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는 것을 보았고, '에이, 결말도 대충 아는데 뭐 어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TV 앞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시작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멘탈이 붕괴되는 것을 경험했다.
'에이리언 3'가 시작함과 동시에 2편에서 생존했던 주인공들 전원은 리플리 한 명을 제외하고서 모두 죽어버린다. 괴생명체와 싸움을 벌이다가 죽는 것도 아니고,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도망 다니다가 죽음을 마주하거나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영웅적으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주선이 추락해서, 쉽게 말해 그냥 자다가 교통사고로 죽는다. 이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어이가 없지만 영화는 그보다 한 발을 더 내디뎌 보는 이의 짜증과 불쾌감을 극으로 끌어올리는 선택을 한다. 몸속에 에일리언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2편에서 살아남았던 그 어린 소녀 뉴트를 해부 테이블에 올리고, (비록 작중에서는 그의 요청에 의한 것이긴 하나) 리플리가 보는 앞에서 부검을 하게 만든 것이다. 2편에서 주인공 리플리가 공포를 마주하고 극복하여 겨우 지켜낸, 최종 목적이자 해피엔딩의 핵심 그 자체였던 어린 소녀를, 그 주인공과 2편을 즐겼던 관객의 앞에서 시작과 동시에 허무하게 죽여버린 것도 모자라서, 불쾌한 소리 효과와 온갖 연출을 총동원하여 천천히 조금씩 박살을 내고 깨부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라스트 오브 어스 2'에서 조엘의 머리가 골프채에 의해서 박살이 날 때 플레이어들이 느꼈을 그 더러운 기분을 나는 '에이리언 3'라는 강력한 불주사를 통해 어느 정도 미리 맛봤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정도로 불쾌감을 선사한 작품에서, 이렇게 방향성을 택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거나 작품의 만듦새가 부정할 수 없이 좋았다면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작비화를 들어보면 '에이리언 3'가 이런 극단적인 내용과 방향성을 택한 이유는 그냥 시간에 맞춰서 제대로 된 대본이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표면적인 이유는 2편에서 뉴트 역을 맡았던 배우가 너무 커버려서라는 어이없는 것이었다. 속편이라는 것이 꼭 전편이 끝난 시점에 바로 이어서 나와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었던가? 그냥 일정 시점이 지난 후의 이야기로 짰어도 될 것이었고, 리플리의 서사는 2편에서 마무리 짓고 3편은 다른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도 충분했을 텐데 제작진의 안일함과 욕심이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게다가 명색이 3편인데 2편보다 특수효과도 조악하고, 재미 면에서도 떨어지는 이 영화에 굳이 어떠한 장점을 억지로 갖다 붙여서 옹호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감독 데이빗 핀처가 당시에 거대 스튜디오를 상대로 본인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고 힘을 쓸 수 없는 신인 감독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를 변호하고, 새로이 편집한 '어셈블리 컷'을 재관람한 이들에 의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영화를 구리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건 그들의 사정일 뿐이고 이 작품을 통해 전작의 감동마저 바사삭이 된 우리가 굳이 관용을 베풀고 이해를 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편의 주인공들을 죽였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이 작품을 만든 이들이 제작 과정에서 느낀 곤혹감과 답답함, 그로 인해 축적된 짜증에 의한 화풀이로 전작을 깨부수고 부정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명작인 '에이리언 2'보다 나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 크리에이터들이 이에 대한 열폭으로 새로이 졸작을 만들어내는 정도를 넘어서 이전에 만들어진 명작을 부숴버리고 이를 즐겼던 관객의 등에 칼을 꽂고 만 것이다. 단순히 못 만든 작품에 지나지 않는 졸작, 좋게 봐주려고 해도 괴작에 지나지 않는 작품에 "이 영화에는 종교적, 구도적인 심오한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아 봤자 더욱 꼴 보기 싫을 뿐이다. '에이리언 3'는 내 인생 마주한 최악의 속편 중 Top 2 안에 든다. 물론 이보다 못 만든 속편, 조악한 영화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못 만든 쓰레기는 피해 가면 되는 반면, 잘 만든 음식인 척하는 똥을 모르고 먹어버린 나의 이미 버린 입맛은 누가 씻어준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