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재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신앙생활을 해보려고 불교에 관심을 가졌을 때 들은 질문이다. 불교에는 많은 공안이 있지만 이 질문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런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사는 듯하다.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이 대답에 대한 답은 들어봤을 것이다. 윤회에 의해 생명이 순환한다. '나'는 이번 생 전에 다른 존재였고 선악의 업에 따라 다시 다른 존재로 태어나고 이번 생이 끝나면 또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불교와 뿌리가 같고 더 오래된 힌두교에도 윤회가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힌두교에는 삼신이 존재한다. 브라흐마가 우주를 창조하고, 비슈누는 우주를 유지하고, 시바는 우주를 파괴한다. 어떤 인도 신화에서는 비슈누가 낮잠을 잘 때 배꼽에서 연꽃이 피어나고 그 연꽃이 우리가 사는 우주이다. 우주는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며 그 주기는 약 43억 년이다.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공유하고 창세기에 우주 창조에 대한 신화가 있다. 하나님이 1일에 빛과 어둠을 만들고 6일에 인간과 동물을 창조하고 7일은 안식일로 정했다. 성경에 따르면 우주가 창조된 것은 약 6,000전 전이다. 이 점에서 나는 힌두교의 우주창조 신화가 더 그럴법하다고 느낀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과학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며, 양자 물리학에 따르면 다중우주가 존재한다고 믿는 물리학자들도 많은 듯하다.
진화해 왔다
종교가 아닌 대표적인 접근법은 찰스 다윈이 창시한 진화론이다. 모든 생명은 진화적이며 자연선택에 의해 적합도가 높은 종이 존속한다. 진화론은 유일신 종교와 대조적이다. 성경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따로 만들었다고 하며 인간을 다른 모든 동물과 구분한다. 그러나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조상은 하나이다.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며 약 37억 년 전에 최초의 원핵생물이 출현했다고 추정한다. 원핵생물은 다양한 동물로 진화하고 1억 년 전에는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20만 년 전에 출현했다. 유발하라리는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전부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교미하였고 현재 유럽인의 DNA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1~4%가 정도 남아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인간과 침팬지의 DNA 차이는 4% 이내라고 한다.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나이를 138억 년으로 추정한다. 물리학자들은 빅뱅이 발생하며 우주가 생겼다고 한다. 빅뱅의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배경복사이다. 빅뱅이 발생할 때는 빛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다가 우주가 식으며 빛이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주 배경복사는 빅뱅의 부산물로 현재에 관측할 수 있다. 또한 우주는 정지한 것이 아니라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반대로 밀어내는 이 힘을 우주상수로 정의했다가 스스로 철회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다른 물리학자들이 다시 받아들였고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이 우주를 팽창시키는 원인으로 본다. 이것을 발견한 세명의 물리학자는 2011년 노벨물리학 상을 받았다.
빅뱅이 실제로 있었고 빅뱅으로 시공간이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그러나 빅뱅이 아니면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가늠조차 안되기 때문에 물리학자 대부분은 빅뱅을 사실로 인정한다고 한다.(숀 캐럴)
진화한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전에 '일어난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하였다. 빅뱅으로 우주가 생긴것이고 팽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언젠가 소멸해야 하는 것이 이치 아닐까? 초기 우주는 매우 뜨겁고 밀도가 높았지만 차츰 식어가고 있다. 태양은 50억 년쯤 후에 식는다고 예측된다. 물론 나는 내일 태양이 안뜰까봐 걱정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태양의 수명이 아니라 내게 남은 시간이다. 존재에 대한 불안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지구 위에 존재하는 시간은 정말 찰나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버그는 '우주를 점점 이해하면 할수록, 우주는 무의미해 보인다'라고 하였다. 내가 부처님처럼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나의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목적은 번식과 번영이다. 생명체는 자신의 DNA를 남기려는 본능이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복제하는 것이 목적이며, 우리가 성욕을 갖고 짝짓기를 하는 것이 유전자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고 하였다. 자식을 낳는 것은 영원불멸하는 방법이다. '나'가 소멸하더라도 적어도 내 유전자는 계속 존속한다.
진화의 경쟁 속에서 퇴화하지 않고 존속하는 또 다른 방법은 문화적 유산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군주가 거대한 피라미드를 남김으로써 수 천년이 지나도 그 건물의 주인은 몇 천년이 지나도 후대에 기억되 수 있었다. 예술가는 또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다. 두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자식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수백년이 지난 현재 까지 기억되고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사는데 있지 않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여러 명의 자녀를 남겼지만 사람들은 그의 자녀보다 그의 작품들에서 감동을 찾고 도스토옙스키에게 존경을 보낸다.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면 존속하는 것이 아닌가? 죽은이와 관계를 발전시킬 수는 없지만 기억은 할 수 있다. 문화적 유산(예컨대 그림, 사상, 건축물)은 나의 흔적을 남기고 죽어서도 세상에 존속하는 방법이다.
예측 불가능한 진화
기나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지구의 지배종이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능 덕분이었다. 예를 들어 코끼리는 지능이 높은 동물이며 근력은 인간보다 최소 10배 이상이다. 그러나 코끼리는 멸종위기이고 인간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코끼리를 동물원에 가두고 보호하고 있다. 문어는 척추동물이 아닌데에도 지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문어는 TV를 보기도 하고, 도구를 이용하기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연구원의 얼굴을 기억해서 물을 쏘기도 한다. 유럽연합(EU)은 '실험동물 보호 지침'을 통해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 연구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문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마취없이 실험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능이 높다고 여겨지면 그 생명체의 위상을 높게 본다.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인간을 어떻게 볼까? 인간이 보유한 지식과 기술로는 외계인이 있는 곳까지 가기 어렵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은 아직 태양계도 벗어나지 못했다. 지구에 도달한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의 지능과 기술은 인간과는 다르게 매우 높을 것이다. 지능의 차이가 크면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어렵다. 예컨대 코끼리는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소통하는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외계인은 인간과 친구가 되기보다는 동물원에 코끼리처럼 관찰만 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우주가 생긴지 138억 년이고 우주에는 셀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외계인은 지구에 도착하지 않았고 아마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외계인보다 더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는 인공지능이다. 현재의 특정 목적을 달성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 인공지능 연구가 가장 앞서 있는 미국과 중국은 범용인공지능(Ari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AGI는 특정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과 달리, 언어이해, 추론, 문제해결, 학습을 인간과 같은 수준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AGI는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을 떠올리면 된다. 예를 들어 아이 로봇이나 그녀(Her)에 나오는 인공지능은 인간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맥스 테그마크는 '지능폭발'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인간이 AGI를 개발한다면, AGI는 초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 AGI는 스스로를 개선하는 능력이 있고 그 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게 되리라는 예측이다. 초지능은 과학, 기술, 사회 모든 분야에 발전을 가져올 것이지만 인류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초지능이 인간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지식(예: 다중우주의 존재)을 소유한다면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초지능에 대한 위험은 악의가 아니라 그 능력에 있다. 어쩌면 초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지구 위에 지배종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맥스 테그마크는 지능폭발로 인한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미래에 대한 밝은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한다(life 3.0 max tegmark)
종교, 우주, 진화라는 거대한 이야기들은 '나'를 더 알기 위한 지식 토대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 과정속에서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단순히 존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 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나, 우리, 인류의 존재 의미와 실존적 불안을 가중 시킬 가능성이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유망한 전공으로 철학을 추천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갖춘 인공지능과 공존하려면 가치 판단 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시대이지만, 나는 더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Tegmark, Max. Life 3.0, 동아시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