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날숨으로
인도철학의 붸단따(vedanta)는 우리의 몸과 마음의 배후에 불변하는 부동의 실체, 우주의 근본적 실재를 의미하는 브라만(Brahman)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이 영원한 자아, 아뜨만(Ātman)이라고 부르는 브라만 앞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이 움직임의 반영물이 자아 위에 드리워지면, 마음과 인상들의 소용돌이가 자아를 뒤덮어 속박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속박된 자아를 지봐(jīva), 개체적 영혼으로 부른다. 이 영혼은 그것이 유래한 원천, 브라만으로 회귀할 때까지 끊임없는 윤회(saṃsāra) 즉 탄생과 죽음을 거듭한다.
브라만 그 자신이 하늘, 바람, 별, 꽃, 강, 산, 바다, 식물, 동물의 다양한 형상들로 드러나는 하나의 비인격적 원리가 존재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무의 상태에서 하나가 다수의 형상들을 취하면서 우주가 생겨났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야(maya)의 힘에 의하여 브라만으로부터 현현되어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힘이 없었다면 형상은 결코 드러날 수 없다. 바다와 파도의 관계처럼 우주에 존재하는 이 모든 다양한 변화들은 하나의 자기 안에 나타난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
컴퓨터 속 가상세계와 같은 시뮬레이션인 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자연이 실재하지 않는 환영이라면, 메타버스와 같은 우주적 환영에 탑승한 이 영혼들은 왜 고통을 느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실재를 가리는 무지(avidyā)로 인해서 고통스럽다고 설명한다. ‘모든 것은 하나‘라는 주제 하에서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지구와 태양, 달과 별 사이에 분리가 존재한다는 관념이 무지이다. 우리가 무지를 제거할 수 있다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본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 더 이상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빛으로 영원히 빛나게 된다.
사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은 무지라기보다는 욕망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괴로워진다. 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살면서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모든 경험 하나하나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들은 마음 위에 인상(vāsanā)을 남긴다. 그 인상이란 자신 속에 새겨진 무한한 과거들의 정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 인상들의 총체가 삼스까라(saṃskāra), 잠재성향을 형성한다. 이 성향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창조하는 것으로서 살면서 행한 정신적, 신체적, 언어적 행위들의 최종 결과물이다.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삶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경험을 통한 기억으로 획득된 인상들의 총체, 그 최종 결과에 의하여 마음이 이 새로운 몸을 취한다는 것이 윤회이론이다. 중생이 해탈을 얻을 때까지 그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업(業)에 의하여 다른 생을 받아 끊임없이 생사를 반복한다. 행위로써의 결과인 과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에 대한 애착 즉 삶을 밀어붙이는 힘으로서의 업력이 작동되는 것을 말한다.
윤회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다양성 그중에서도 특히 이해력의 다양성을 근거로 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이유는 경험을 토대로 하여 획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몸은 분해되어 요소들로 되돌아가지만 마음에 새겨진 삼스까라는 죽음을 맞이한 인간의 영혼에게 방향성을 부여한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자신의 내면에 그대로 저장된다는 사실은 자기 삶의 창조자는 바로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