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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마귀할멈

전시장에서

by 열인

늙은 마귀할멈이

우리 집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인의 얼굴을 하고

웃고 있었다.


주방에는

모든 기구들이 치워져,

박스 안에

차곡히 쌓여 있었다.

입을 벌린 채,


울먹이며 기억했다.

방금 전


상체보다 하체가 기이하게 더 긴,

걷지 못하는 여자의

밋밋한 가슴을

등 뒤에서 두 팔로 감싸

일으켜 세웠던 일.


그녀를 물에서 건너주려 했지만

어느새 내 팔에서

스르르 빠져나가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죽었을지도 모를 그녀를

찾기 위해

울면서

물을 헤치며 찾고 있었다.


문득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의 주름진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놀라 기겁하고,


주방의 모든 도구들이

칼도, 냄비도, 숟가락도

사라진 자리

상실의 아픔 속에

소리 내어 울었다.


휑하니 비워진 우리 집 싱크대를 보며

꿈에서 깨어났다.


여전히

내 마음의 거실에서

그 빈 주방과 함께

소파 위의 마귀할멈은

웃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 울면서 알았다.


이제,

비워 있는 주방 옆,

소파 위에 있는

그녀 곁으로 다가가

함께 앉아야 한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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