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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14. 2020

나는 바보다

셀트리온제약 068760

실수했다. 셀트리온제약을 상투에서 잡아버렸다. 매수가는 주당 77100원. 매수량은 2주. 어제 4월 13일 월요일 미국장도 한국장처럼 혼조세였다. 자본시장은 이만큼 회복됐다. 실물경제는 여전히 아수라장이다. 실물경제의 충격이 주식시장에 얼만큼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론 나쁘진 않았다. 해외주식 포트폴리오는 대부분 빨간불이었다. 기대도 안 했던 우버까지 올랐다. 그래서 까불었다. 한국장이 열리자마자 셀트리온제약을 상투가에 덥석 사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셀트리온제약의 주가는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마치 어느 바보가 상투를 잡아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74000원대까지 떨어지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MTS의 주가 현황판이 고장난 줄 알았다. 77000원대에서 75000원로 수직낙하했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셀트리온이 아니라 셀트리온제약이었다. 코스피가 아니라 코스닥이었다. 가뜩이나 변동성이 큰 코스닥에서 가뜩이나 변동성이 큰 바이오대장주였다. 사자마자 떨어지는걸 처음 겪어본건 아니지만 사자마자 폭락하는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셀트리온제약의 주가는 다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74000원대에서 76000원대로 퀀텀점프하는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런게 현기증이 난다는 거구나 싶었다. 나름 3월의 롤러코스터 폭락장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안전벨트를 매고 탄 거였다. 셀트리온제약에 투자한다는건 안전벨트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았다. 아찔한 하락과 상승. 무엇보다 상투를 잡은 바보 투자자여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셀트리온제약을 매수한건 솔직히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셀트리온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피터 린치는 말했다. “시장예측에 있어서 중요한 기술은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졸 수 있는 자세다.” 이번 매수의 문제는 경청하면서 졸았다는 것이었다. 우연히 내려받은 증권 관련한 앱이 하나 있었다. 느닷없이 전화가 왔다. 자기네 증권앱을 설치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종목추천을 해주는 단체카톡방에 가입을 권유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들어가봤다. 스튜디오드래곤을 열심히 추천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잘 모르는 코스닥 종목들 이야기들이 오갔다. 주포가 어떻고 테마주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눈팅만 했다. 새로운 기업들의 이름들을 접할 수 있는건 좋았다. 

4월 14일 오전 9시였다. 한국장이 개장했다. 전날 미국장 때문에 졸렸다. 그때 단체카톡방을 주도하는 전문가라는 분이 이런 글을 올렸다. “셀트리온제약의 목표주가는 79000원입니다.” 갸우뚱했다. 무슨 근거로 79000원까지 오른다는거지? 셀트리온제약은 3월 폭락장에선 3만원대였다. 하루전 바이오주 폭등 때 셀트리온제약 주가가 많이 오른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코로나19 치료제를 직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건 셀트리온이지 셀트리온제약이 아니다. 전문가분이 또 글을 올렸다. “매수하신 분은 손 들어주세요.” “네. 네. 네. 네. 네. 네.” 졸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가는 76000원대에서 77000원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순간 FOMO가 느껴졌다. Fear of Missing out. 이 단체카톡방에서 나만 빼고 다들 돈을 벌어버리는건 아닐까. 그래서 샀다. 77100원이었다. 3월에 3만원대일때도 사지 않았던 주식이었다. 그리곤 하락. 

장중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74000원대까지 떨어졌던 셀트리온제약의 주가는 다시 76400원까지 올라섰다. 손실 규모는 줄었지만 하나도 즐겁진 않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바보짓이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제약의 PER은 316.25배. PER이 투자의 절대 기준은 아니다. 이제까지 투자했던 국내 주식 가운데 가장 PER이 높았던 주식도 100배를 넘진 않았다. 셀트리온제약은 평소 투자 성향에서 벗어난 도박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월요일장에서 하루만에 9700원이나 올랐던 주식이라면 다음날엔 차익실현매물 탓에 조정이 올거라는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예상해볼 수 있었다. 완패였다. 

잭 슈웨거는 알고보니 월스트리트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저널리스트였다. 월가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분께 “잭 슈웨거를 아느냐”고 물었다가 놀림을 당했다. 이제야 안걸 부끄러워해야만 했다. 이렇게 무식하면 용감하다. <주식시장의 마법사들>에서 잭 슈웨거가 인터뷰한 트레이더들한텐 공통점이 있었다. 초기 트레이딩에서 타인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이었다. 흥미롭게도 상당수 마법사들이 철저하게 혼자서 일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었다. 주식 투자는 확실히 고독을 즐기는 개인주의자에게 적합한 직업이다. 

무슨 컬트 모임 같았던 주식 투자 단체 카톡방에서 조용히 탈퇴했다. 셀트리온제약은 손절하지 않고 보유하기로 했다. 오늘의 교훈을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남의 말만 듣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주식을 샀다가 손실을 본 바보 같은 경험 말이다. 시장의 마법사들도 모두가 스스로 바보라고 느꼈던 그 때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 시장에선 내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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