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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16. 2020

진보적 보수

21대 총선 

규제개혁당을 찍고 싶었다. 규제개혁당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규제개혁당은 정당법의 규제를 당했다. 규제개혁당의 이름은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투표지에 없었다. 현행 정당법은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할 때 발기인이 서명하고 날인한 동의서를 첨부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만 한다. 정당법엔 동의서가 꼭 원본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규제개혁당은 벤처기업가들이 주축이 된 정당답게 온라인 정당을 지향했다. 발기인 동의서를 이메일로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메일 출력본은 사본이라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했다. 지금은 줌의 시대다. 이메일조차 구닥다리가 된지 오래란 말이다. 요즘은 은행에 가서 금융거래를 할 때도 아이패드에 전자서명을 한다. 한국의 정당법은 그만큼 시대착오적이다. 심지어 포지티브 규제였다. 원본이어야 한다는 법이 없으니 사본이어어도 되는게 네거티브 규제다. 안 된다는 것만 빼곤 다 된다는 말이다. 사본도 된다는 법이 없으니 원본이어야 한다는게 포지티브 규제다. 된다는 것이 아니면 다 안 된다는 말이다. 규제개혁당의 핵심 공약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포지티브 규제 철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포지티브 규제 정당법에 막혀서 창당조차 하지 못했다. 

21대 총선의 시대 정신은, 큰 정부였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과 사법권력에 지방 권력까지 모두 장악한 거대 정부 말이다. 갑자기 엄습한 코로나가 그렇게 만들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종언이었다. 절대신처럼 여겨졌던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의심 받게 됐다. 2020년 코로나 위기로 큰 정부 시대의 만개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시장은 죽었다. 연준의 양적완화라는 거품에 취해 흥청거리는 환자가 됐다. 2020년 코로나 창궐로 이젠 정부라는 보이는 손이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잡아줘야 하는 응급 상황까지 벌어졌다. 각국 정부는 경쟁적으로 국민들한테 재정을 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은행들의 최종대부자를 넘어서 기업들의 최종투자자가 돼가고 있다. 유권자들은 그런 정부에 더 힘을 몰아줘서 코로나 사태가 유발한 보건위기와 경제위기가 해결해달라고 주문했다. 그것이 이번 표심으로 드러난 유권자의 진심이다. 

시장은 언제나 옳듯이 국민도 언제나 맞다. 그런데도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은 이번 참패를 이념적 당파적으로 해석하느라 바쁘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른바 대깨문이 결집해서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을 주도하고 있는 586 운동권들은 뿌리가 주사파다. 코로나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 모두 가려졌으니 운이 좋았다. 전부 남탓들이다. 보수 참패의 진짜 원인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내 탓이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해서 권력을 잃었을 때 아주 잠시 동안 국정 총책임자였다. 황교안 대표가 가진 정치적 자산이라고 해봐야 이게 전부다. 황교안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박근혜 정부는 무능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적 국난 앞에서 정말 가만히 있기만 했다. 진보 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도 지지자들한테도 황교안은 그랬던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죽어갈 때도 우왕좌왕만 했던 정부의 총리가 코로나 위기라는 복합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도 믿어줄 유권자는 별로 없다. 황교안 전 총리가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이낙연 전 총리한테 더블스코어로 참패를 당한건 솔직히 놀라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미래통합당이 그걸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또 다른 얼굴이었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경제민주화의 아버지다. 87년 개헌 당시에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종인 위원장은 제119조 2항을 추가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사실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집권세력들은 예외 없이 경제민주화를 이상적 목표로 내걸었다. 김종인 위원장의 정치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다. 2011년 김종인 위원장을 처음 정치 무대로 소환한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그 전엔 대선 잠룡으로 거론되고 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멘토로 알려졌었다. 대통령 박근혜한테서 팽당한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한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김종인 위원장의 경제민주화 이미지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은 유능한 경제 정당으로 리브랜딩을 할 수 있었다. 정작 20대 총선이 끝나고선 친문과의 갈등으로 친박한테 밀려났던 것처럼 다시 토사구팽 당하고 말았다. 김종인 위원장이 여야를 막론하고 킹메이커 역할을 해왔다는건 일개 유권자 입장에서 보자면 한 가지를 시사한다. 더불어민주당이고 새누리당이고 미래통합당이고간에 따지고 보면 국정운영의 철학은 결국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다. 진심이든 시늉이든간에 김종인 위원장이 이론적 실질적 초석을 닦은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큰 정부 말이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모두 큰 정부를 지향한다. 사람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지만 국정운영철학은 솔직히 별다르지 않다. 정부가 직접 시장의 오류를 바로잡고 경제적 난제들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박근혜 정부는 무능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기업의 팔목을 비틀면 시장을 통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대로된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보단 천만배쯤 유능하다. 아직 국민의 기대에 미치는 수준의 성과를 보여주진 못했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집권 초반부터 신념을 갖고 밀어붙였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대표적이다. 경제 이론과 경제 현실은 확실히 달랐다. 게다가 코로나 경제 위기 상황에선 폐기될 수 밖에 없는 정책이다. 개인의 소득을 보장해줘야할 기업들이 먼저 죽게 생겼다. 문재인 정부는 소주성 정책으로 상징되는 포용 성장 대신 혁신 성장을 초점으로 옮겼다. 정작 시장의 혁신을 유도하려면 정부의 간섭부터 줄여야 했다. 혁신을 가로 막는 법규제부터 철폐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전반적인 규제를 줄인다는건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전봇대를 뽑거나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푸드트럭을 세워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규제를 줄인다는건, 정부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작은 정부가 된다는 뜻이다. 시장의 자유를 확대해준다는 말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그 어떤 정부도 진정 작은 정부를 지향한 적이 없었다. 국가 예산은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상관 없이 매년 확대일로였다. 2010년 292조원이었던 국가 예산은 2019년엔 469조원을 넘어섰다. 2020년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9%넘게 늘어난 513조원. 2021년 예산은 코로나까지 감안하면 560조원도 넘어설 수 있다. 2020년 예산은 슈퍼예산이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2021년 예산은 슈퍼 울트라 예산이다. 예산의 크기가 결국 정부의 크기다.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은 정부가 돈을 써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정답이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돈을 푸는 수밖에 없다. 다들 한국의 국가채무는 OECD 기준으로 보면 낮은 수준이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OECD 평균치는 110%다. 한국은 44.8%다. 일본은 230%고 미국은 113%다. 

문제는 추세다. 경제에서 중요한건 추세다. 한국은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국가채무비율이 가장 빠르게 증가해온 OECD 국가 중 하나였다. 게다가 이번 정부 들어선 과거 정부들과 달리 재정건전성을 회복을 위한 뚜렷한 지출 통제 정책을 펼치고 있지도 않다. 국가 재정이 한도 없는 카드처럼 긁혀지고 있단 얘기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 대신 이후엔 총지출 증가율을 3%대 아래로 낮추면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지금은 향후 5년 동안 국가채무비율이 10%포인트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때문에 증가폭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예산이 커지면 정부도 자란다. 재정의 힘이 곧 행정력이다. 안 그래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 공무원 숫자도 증가일로였다. 이래저래 정부의 크기는 앞으로 시장을 압도할만큼 비대해질 일만 남았다. 

바로 이 지점이 앞으로 보수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는 작은 정부라는 국정 철학을 이젠 온전히 받아들어야만 한다. 거대 정부와 여당이 확대 재정을 펼칠 때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견제하는 야당이 돼야만 한다. 정부의 코로나 재난기본소득의 본질이 포퓰리즘으로 왜곡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정당이 돼야만 한다. 곧바로 임시국회가 열린다. 2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의가 있다. 한시가 바쁜 코로나 대책의 발목을 잡지 않으면서 확장 재정에 대한 생산적인 우려를 일으킬 전략을 찾아야만 한다. 재정만 풀고 경제를 못 살리면 그게 최악이다. 경제를 제대로 못 살리면 경제위기로 세수가 줄면서 국가채무만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풀거면 효과적으로 풀어야 한다. 쇼크엔 스마트한 서프라이즈로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프라이즈는 규모지만 스마트는 디테일이다. 가뜩이나 비대해진 정부를 더 스마트하게 만들려면 보수 야당의 견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젠 경제민주화 이후를 고민해야만 한다. 이번 총선의 압승으로 문재인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달성한 정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 사태가 촉매제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다면 그건 현명한 유권자의 행운이다. 그렇다면 야당은 경제민주화 이후를 준비해야만 한다. 큰 정부의 시대가 유발할 필연적인 모순과 실책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시장의 혁신을 가로 막는 지긋지긋한 규제들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시장에서 과거에 선취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가 아니라 시장의 미래를 창출하는 자유와 혁신을 옹호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돼야만 한다. 이것이야 말로, 보수가 진보보다 더 진보적이 되는 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애정했고 선거 때마다 진보에 표를 줬던 중도층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총선에선 비례대표에서만큼은 규제개혁당을 뽑고 싶었던 이유다. 규제개혁당은 규제변혁이 절실한 한국에서 유일하게 기대했던 정당이었다. 타다의 소멸을 보면 한국에서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기술혁신보단 시장혁신에서 더 큰 기회를 찾아야 하는 경제다. 아이폰처럼 세상에 없던 기술혁신을 만드는 건 멋지지만 그건 솔직히 한국의 몫이 아니다. 기존 시장을 혁신해서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야만 한다. 모빌리티 시장이 대표적이다. 타다처럼 규제와 충돌해서 아예 도로에서 탈선하게 만들면 시장혁신은 불가능하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해야 규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큰 정부는 복지를 달성할 순 있지만 혁신을 유발할 순 없다. 비록 규제개혁당은 규제에 막혀서 투표 용지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참패한 야권한테 요구되는 시대 정신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가르쳐줬다. “가장 작게 다스리는 정부가 가장 잘 다스리는 정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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