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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20. 2020

무식의 신세계

신세계인터내셔날 031430

일주일전 쯤에 신세계 파주 아울렛을 다녀왔을 때 깜짝 놀랐다. 아울렛은 온통 마스크 오브 조로였다. 마스크를 쓴 쇼핑객으로 가득했단 말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해지는 풍경이었다. 간접적으로 듣고는 있었다. 직접적으로 목격하긴 처음이었다. 당초 우려했던 것보단 내수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코로나 타격이 적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케어링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어느 럭셔리 브랜드 매장에 들어섰다. 절반의 절반 가격 이하로 할인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알고는 왔다. 보고나니 더 놀라왔다. 습관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싼거죠?” “유럽에선 아예 매장 오픈 자체를 못하고 있거든요. 파리 본사에서 물량을 한국으로 몰아주고 있어요. 그래도 한국은 매장 문은 열 수 있으니깐요.”

한달 전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서 케어링 주식을 사고 싶어서 백방으로 알아봤던 기억이 났다. 알고보니 케어링이나 LVMH 주식은 한국에선 매수하기가 간단한 주식이 아니었다. 그때 잠시 신세계 인터내셔날도 살펴봤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은 셀린, 아르마니, 클로에, 아크네, 마르니, 메종 마르지엘라, 폴 스미스를 수입한다. 그때 생각났다. 신세계 파주 아울렛도 신세계 인터내셔널과 사이먼 프로퍼티그룹이 합작한 회사다. 코로나 불황이라는데 아울렛은 이렇게나 호황이라면 신세계 인터내셔널 주식을 사면 어떨까. 피터 린치적 아이디어였다. 피터 린치는 주식 투자의 아이디어를 종종 쇼핑몰에서 얻었다고 고백했다. 실물시장에서 자본시장을 발견한 셈이다. 과연 전설다운 통찰이다. 자본시장은 결국 실물시장의 반영이다. 왜곡과 시차는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숫자였다. 막상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숫자를 놓고 보니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유명 패션 브랜드들의 수입하고 있었지만 정작 돈은 패션이 아니라 뷰티에서 벌고 있었다. 뷰티의 매출 비중은 30% 정도. 그런데 영업이익 비중은 80%가 넘었다. 그 중에서도 비디비치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컸다. 비디비치는 신세계 인터내셔널이 2012년에 인수한 브랜드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이 보유한 패션 브랜드는 45개에 이른다. 하도 많아서 홈페이지에서 헤어려봤다. 뷰티 브랜드는 딱 7개다. 산타마리아 노벨라나 바이레도나 딥티크 같은 유명 해외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다. 그런데 정작 돈은 패션도 아닌 뷰티에서, 그것도 수입 브랜드도 아닌 자체 브랜드 비디비치로 벌고 있었다. 원유 ETN도 아닌 것이,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과 숫자가 말해주는 것의 괴리율이 컸다.

무엇보다 면세점 의존도가 너무 컸다. 이미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넘어선진 오래였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에서 비디비치를 싹쓸이해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 면세점은 코로나 사태로 개점휴업 상태다. 인천공항 이용객이 김포공항 이용객 수준으로 떨어진 지경이다. 솔직히 소비자 입장에서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뷰티 브랜드 가운데 가장 애용하는 뷰티 브랜드는 산타마리아 노벨라다. 정작 신세계 인터내셔널이 가장 애정할 수 밖에 없는 브랜드는 비디비치와 연작이다. 많이 남기는 자사 브랜드와 남는게 별로 없는 수입 브랜드의 차이다. 이런 풍요 속 빈곤은 패션 쪽에 가면 더한 듯 했다. 2010년대엔 신세계 인터내셔널과 한섬이 서로 해외 브랜드를 더 많이 수입해오려고 경쟁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어진 미국의 10년 호황과 연준의 돈풀기가 만들어낸 유동성 장세의 결과였다. 비쌀수록 더 잘 팔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실속이 없어졌나 싶었다. 코로나 상황이 신세계 인터내셔널에선 뷰티 부분보단 패션 부분 쪽에 더 부담이 될 것 같았다. 뷰티와 달리 패션은 이커머스로 팔 수 있는 가격대의 상품들도 아니니깐 말이다.

이때부터 고민이 싶어졌다. 아울렛에서 관찰한건 호황이었다. 숫자를 분석한건 불황이었다. 도대체 어느 쪽을 믿어야만 할까. 지난주 4월 13일 월요일 종가 기준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주가는 19만4500원이었다. 이때도 안 샀다. 1분기 실적 발표를 기다려볼 요량이었다. 기술기업도 아니고 유통기업은 결국 시장에서 거둔 실적을 기준으로 투자 하는게 정답이지 싶었다. 4월 16일 즈음이 되자 몇몇 증권사에서 신세계 인터내셔널에 대한 실적 전망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나빴다. 패션부분은 적자전환했다. 뷰티부문은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35%였다. 전망치여서 달라질 순 있다. 분명한건 1분기가 바닥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2분기도 쉬울 리가 없었다. 이러면 주가가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주가 흐름은 달랐다. 지난주 후반에 코스피가 1900선을 돌파하면서 신세계 인터내셔널 주가도 덩달아 20만원대를 넘어버렸다. 아직 초보투자자지만 이럴 때가 가장 어렵다는건 이미 알아버렸다. 주식은 일단 사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때 욕망을 억누르는게 가장 고통스럽다. 솔직히 주초에 샀으면 벌써 주당 1만원을 벌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란 보통 어려운게 아니다. 피터 린치도 이렇게 말했다. “주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놓쳐버린 종목들이 더 많았음을 인식하게 되고 순식간에 당신은 수십억 또는 수조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처럼 자신을 비난하게 된다.” 덧붙였다. “이런 식의 사고 방식에 있어 최악의 경우는 더 이상의 손해를 보지 말자는 강박 관념에서 사서는 안 될 주식을 사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체로 실질적인 손실로 끝나고 만다.”

4월 20일 월요일장은 말 그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혼조세였다. 지난 주에만 해도 돌아오는 듯 했던 외국인 매수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큰 장세가 아니라 개별 종목별로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을 거듭했다. 미국 시장을 달궜던 렘데시비르 관련 바이오주만 상승하는 분위기였다. 코스피 지수는 1900대가 무너졌다가 다시 1900를 회복했다가 다시 1900대가 무너지면서 끝났다. 신세계 인터내셔널도 마찬가지였다. 지수를 따라서 올랐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했다. 결국 지난주 종가에서 끝났다. 사실 이미 사려고 마음 먹은 상태였다. 피터 린치의 조언이고 뭐고 사고 싶었던 것이다. 숫자을 통한 분석보단 관찰을 통한 직감을 따르고 싶었다. 맞다. 이성이 마비됐던 것이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을 사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지난주 종가보다 내려와야 매수한다. 빨간불에 팔고 파란불에 산다는 나름의 원칙 말이다. 그래서 지난 4월 17일 종가였던 20만6000원보다 500원 낮은 20만5500원에 매수 주문을 넣었다. 그리곤 기다렸다. 마냥 기다리자니 지루했다. 그래서 신세계 인터내셔널을 더 스터디했다. 그러고보니 신세계 인터내셔널은 파주 아울렛의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었더라. 신세계 파주 아울렛은 신세계 사이먼이라는 신세계와 사이먼의 합작사가 운영한다. 그런데 스터디를 하다보니 모르던 것들이 많았다. 신세계 사이먼의 업태는 유통사가 아니라 부동산 운영사였다. 주요 매출은 아울렛의 매장 임대 수입이었다. 개별 매장이 아무리 호황이어도 신세계 사이먼의 매출이 극적으로 증가하긴 어려운 구조였다. 무엇보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이 신세계 사이먼의 최대 주주가 아니었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지분은 25%. 나머지 25%는 신세계. 그리고 50%는 사이먼. 아뿔사. 신세계 아울렛이 호황이라도 해도 신세계 인터내셔널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직결되는 연결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조차도 잘 모르고 피 같은 돈을 투자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이쯤되면, 무식의 신세계였다.

오히려 연관이 깊다면 신세계 인터내셔널보단 신세계였다. 연결재무재표상으로 계열사인 신세계 사이먼의 매출까지 잡힐테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니 신세계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주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었다. 물론 신세계 주가 상승은 아울렛 때문은 아니다. 쓱닷컴으로 이커머스에서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는데다 이마트 등의 사업구조개편이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헛다리를 짚은 셈이었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이 아니라 신세계를 봤어야 했다. 이제야 숫자와 관찰의 괴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백화점과 아울렛이 잘 되면 그건 신세계의 복이다. 피터 린치라도 된 양 시장에서 시장을 읽었다. 정작 피터 린치가 아마도 실패하는 투자자의 전형으로 삼았을법한 실책을 저질렀다. 기업에 대한 공부를 덜 한 것이다. 신세계라는 기업 집단을 제법 잘 안다고 과신했던게 문제였다. 신세계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고 신세계를 아는게 아니었다. 시장이 마감될 즈음인 3시 30분에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주가는 20만6000원을 가르키고 있었다. 불과 500원 차이였다.

알고 있다고 믿을 때가 어쩌면 가장 위험하다. 새삼 신세계에 관해 몰입해서 스터디 하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신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기업 집단이었다. 완전 신세계였다. 신세계 인터내셔널 대표였던 차정호 대표와 신세계의 대표였던 장재영 대표가 서로 자리 바꿈을 한 이유도 알 필요가 있었다. 신세계 인터내셔널에 국내 패션 부분을 신설한 이유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뷰티부문에서 비디비치로 이룬 성공을 패션부문에서도 재현하고 싶은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신세계 인터내셔널의 미래 투자 가치는 여기에 있는건 아닐까. 아울렛이 아니고 말이다. 덕분에 신세계의 2019년 연말 인사 발표 내용부터 증권사 리포트까지 샅샅이 살펴봤다. 잠시나마 신세계를 안다고 믿었던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결국 시장에서 아무것도 안 산 하루였다. 그럴만한 날이었다. 시장은 개별종목별로 각개전투를 벌였다. 코스피는 아직 2000선 돌파는 커녕 1900선 사수도 힘겨워했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엔터주와 바이어주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기관과 외국인은 팔고 개인들만 샀다. 이럴땐 아무것도 안 사는게 맞았다. 잠자코 지켜보는게 맞았다. 마법사들 중 한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때로는 시장에 빠져있기보단 시장에서 멀어져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시장 전체를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세계 덕분에 하루 종일 시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신세계에 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게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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