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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22. 2020

사과 나무

코로나는 과연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리고 탈세계화의 기폭제가 될까? 

2011년 3월 10일 금요일 오후 12시 46분. 동일본 태평양 앞바다에서 지진 규모 9.1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에 파멸적 피해를 입혔다. 1만6천명이 사망했다. 23만명이 난민이 됐다. 1만3천채의 건물이 붕괴됐다. 2만8천재가 반파됐다. 75만채가 파손됐다. 월드뱅크는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금액이 최소 24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최악은 따로 있었다. 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됐다. 체르노빌에 이은 두 번째 7등급 원전 사고였다. 도쿄전력이 해수 투입을 망설이고 일본 정부가 은폐축소에 몰두하면서 일본 열도는 끝내 상시적인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고 이후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의 노심에선 여전히 방사능이 새어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동일본 대지진 전후로 가장 크게 극적으로 변화한 기업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도요타의 일본 내 공장은 보름 가까이 셧다운됐다. 그 해 가을이 다 돼서야 대지진 이전의 생산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대지진은 도요타의 일본 내 서플라이 체인을 한꺼번에 붕괴시켜버렸다. 2010년엔 도요타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등이었다. 2011년엔 폭스바겐과 GM한테 역전당했다. 현다기아차한테도 거의 따라잡혔던 것도 이때였다. 동일본 대지진은 분명 블랙스완이었다. 재발 확률이 매우 낮았다. 그런데도 도요타는 부품 공급망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이때부터 현지 생산 현지 소비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복잡한 부품 공급망 대신에 완성차 생산 공장 중심으로 부품 업체들을 밀집시키는 방식이다. 하나의 완성차 조립 공장이 수많은 부품 업체들을 거느린 항공모함 함대처럼 재편됐다. 설사 하나의 함대가 침몰해도 다른 함대는 전쟁을 그러니까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였다. 동시에 부품 표준화에 몰두했다. 이 회사가 사정상 부품 공급을 못하면 저 회사한테 부품 공급을 받는게 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해외 공장을 늘리고 해외 부품 공급처도 다변화했다. 이때 도요타는 본격적으로 한국 부품 업체들한테도 납품을 받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생산 거점을 독립시켰다. 동시에 부품 공급망을 다양화했다. 그러면서 제품과 부품은 단순화시켰다. 

포스트 코로나로 세계는 탈세계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산업적 측면에서 탈세계화는 결국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다. 인텔의 마이크로칩 하나를 만들려면 일본 도시바가 생산한 실리콘 웨이퍼가 미국 아리조나에서 직접회로화되면 베트남에서 테스트를 거쳐서 다시 아리나조 공장에서 포장돼야만 한다. 앞으론 이런 복잡하지만 생산비는 저렴했던 생산망은 생산비는 비싸도 훨씬 단순한 구조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인텔 아리조나 공장 근처에 웨이퍼 공장과 테스트 공장이 함께 묶여 있는 형태로 바뀌게 된단 말이다. 자연히 태평양을 오가던 글로벌 물류 흐름은 줄어든다. 덕분에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도 확대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는 글로벌이라고 쓰고 불확실성이라고 읽고 리스크라고 느끼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탈세계화가 맞다. 동일본 대지진이란 블랙스완을 만난 뒤 도요타가 추진했던 현지 생산 현지 소비와도 들어맞는다. 그런데 도요타는 그렇게 생산 거점을 집적화하고 독립화하시기만 했던게 아니었다. 부품을 단순화시키면서 부품 공급망은 다양화시켰다. 특정 생산 거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동시에 특정 부품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도도 낮추기 위해서였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글로벌 제조업체들도 도요타처럼 변화할 공산이 크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한편으론 기업들의 탈세계화가 진행되면서도 동시에 기업들의 세계화가 더 촘촘하고 복잡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단 말이다. 기업들한텐 세계화냐 탈세계화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모두가 자본에 의한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위험에 의한 리스크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선택들일 뿐이다. 세계화나 탈세계화는 그런 선택들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도요타한테 변화의 기로였다면 코로나 사태로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은 이른바 FAANG 중에서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기업이다. 애플은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만 해도 주가가 300달러를 넘어서면서 시총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로 시총이 500억 달러 넘게 증발하면서 1조 클럽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원인은 중국에 집중된 생산 거점이었다. 아이폰의 90%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의 제조 공장 대부분이 중국의 선전과 청두와 장저우에 있다. 모두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지역이다. 애플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팀 쿡의 작품이다. 팀 쿡은 IBM과 컴팩 시절부터 조립생산라인 구축과 재고관리의 천재였다. 아이폰은 스티브 잡스의 작품이었지만 아이폰의 높은 마진율은 팀 쿡의 작품이었다. 아이폰을 폭스콘에 위탁해서 중국에서 생산한 덕분이었다. 코로나로 팀 쿡의 완벽해보였던 성공전략에 흠집이 생겼다. 

사실 애플 내부에서도 진작부터 생산 거점을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묵살됐다. 폭스콘이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인력만 200만명에 달한다. 중국 생산 거점을 포기하면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난다. 결국 매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도 포기해야할 수도 있었다. 생산을 포기하면 시장도 포기하는 셈이었다.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을 검토했지만 백지화한 진짜 이유다. 2019년 미중 무역 갈등이 극심했을 때조차도 팀 쿡이 “중국 이외 지역으로의 공장 이전은 없다”고 공약했던 까닭이다. 심지어 폭스콘조차 애플이 요구한다면 언제든지 생산 시설을 중국 이외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는 입장이었는데도 말이다.   

코로나 사태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애플 주가는 코로나 이전 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팀 쿡은 사실상 1분기 실적이 가이던스를 맞추지 못할 거라고 시인한 상태다. 시장은 4월 30일 발표될 애플의 2020년 1분기 실적이 애플이 제시한 최하 전망치인 630억 달러조차 맞추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인 40% 가량 줄었기 때문이지만 애플의 경우엔 생산 차질에 의한 손실이 더 컸다. 이제 애플 역시 중국 이외 지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할 합리적 이유가 생겼단 말이다. 중국 상황은 빠르게 호전되고 있다. 중국의 생산이 회복된다고 해도 상관 없다. 애플의 중국 올인이 리스크라는걸 시장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팀 쿡조차 더 이상은 거부하기 어렵다. 애플은 이미 한사코 고집해왔던 프리미엄 전략을 누그러뜨리고 중저가형 아이폰을 선보인 상황이다. 돈 앞에선 장사가 없다. 

포스트 코로나의 애플이 포스트 대지진의 도요타와 같은 길을 걷는다면 그건 탈세계화가 아니라 재세계화에 가깝다. 애플은 생산 기지를 베트남이나 인도로 옮길 것이고 동시에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역시 더 확대재편될 수 밖에 없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조직되는 것이다. 글로벌화의 리스크를 헷징하기 위해서 더 많은 글로벌화에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 돈은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는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글로벌화는 그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은 복잡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도요타가 그랬고 애플이 그럴 것처럼 말이다. 

한 가지 변수는 있다. 코로나를 틈타서 거대해진 각국 정부다. 정부의 코로나 부양책과 중앙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는 결국 재정을 시장에 이전시킨 것이나 다름 없다. 코로나 위기가 끝나면 정부는 기업과 가계한테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요구받고 가계는 세금을 징수당하게 된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 위기 이후 재정건전성 회복에 경쟁적으로 몰두할 수밖에 없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어진 유럽발 재정 위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을 유지하려고 해도 정부가 팔목을 잡을끌 공산이 크다. 기업들이 탈세계화로 접어들게 된다면 그건 바이러스라는 코로나 리스트 때문이 아니라 큰 정부라는 포스트 코로나 탓일 수 있단 얘기다. 세계화는 기업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탈세계화는 정부들의 결정이 만들어내는 부자연스러운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애플은 2010년대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였다. 미중 무역 갈등에서 G2 사이에서 세계화의 길을 유지했다. 애플이라는 기업이야말로 세계화의 상징이란 말이다. 포스트 코로나, 과연 애플은 내일 세계가 망해도 지구촌 이곳 저곳에 사과 나무를 계속 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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