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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23. 2020

아트 오브 딜

테슬라 TSLA

오를 것 같았다. 다우존스와 S&P와 나스닥 선물이 모두 높았다. 마이너스 유가가 유발한 하루전 4월 21일 화요일장의 하락을 만회할 것도 같았다. 뉴욕에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상승세 그득한 시장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뉴욕증시의 오후장을 직접 보고 싶었다. 한국 시각으로 뉴욕 시장 개장 시간은 밤 10시 반부터 새벽 5시까지다. 늘 뉴욕의 오전장만 봤다. 자정 무렵은 코코낸내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엔 일찍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뉴욕 시간으론 오후 2시. 호재든 악재든 시장에 충분히 반영됐을 시각이었다. 

오를 것 같았던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이너스 유가라는 악재가 시장에 충분히 반영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한달 정도 시장을 봤다. 아직은 주린이다. 다만 지난 한달은 지난 1년보다도 더 시장의 변동성이 컸다. 시장의 센티멘트는 하루 하루가 달랐다. 어제는 코로나 악재 때문에 떨어졌다가 오늘은 부양책 호재로 오르고 내일은 오일 악재로 떨어지는 식이다. 이런게 바로 투자 시장의 쏠림 현상 Herd Behavior 이구나 싶었다. 악재가 호재를 덮고 호재가 악재를 덮으면서 다들 매일매일 일희일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이너스 유가 역시 다음날이면 다른 재료로 덮일거라고 봤다. 

“알려진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다.” 요즘 시장은 정말 정말 그렇다. 언론이 항상 시장보다 한발씩 늦는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도 체감하게 됐다. 시장 분위기는 마이너스 유가라는 재료에서 그 다음 재료로 넘어갔는데도 언론은 여전히 어제의 재료를 재탕삼탕하고 있었다. 마이너스 유가 때문에 WTI 인버스 레버리지 ETN의 실질 가치가 사실상 제로가 됐다는 기사를 읽다가 그런 생각을 다시 했다. 흥미로웠다. 솔직히 내일 시장을 전망하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였다. 그럴 때마다 워렌 버핏의 말이 떠올랐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선 백미러가 앞유리보다 선명하다.” 

자고 일어나보니 역시나 올라 있었다. 트럼프가 뉴욕 증시 개장 1시간 전인 오전 8시 8분에 날린 트윗 하나가 증시의 분위기를 확 바꿔버렸다. “I have instructed the United States Navy to shoot down and destroy any and all Iranian gunboats if they harass our ships at sea.” 역시나 유가 조정엔 전쟁이 정답이다. 미사일 몇 발로 호르무즈 해협만 틀어막을 수 있다면 오펙 플러스의 감산 합의 따위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하루에만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중동에서 세계로 수출되는 원유량이 2000만 배럴에 달한다. 오펙 플러스가 5월부터 줄이겠다고 합의한 하루 감산량 1000만 배럴의 두 배다. 뉴욕 증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승 무드였다. 그럴거라 짐작해서 일찍 자고 일어났지만 막상 보니깐 헛웃음이 났다. 마이너스 유가는 겨우 잡혔다지만 코로나로 인한 수요 감소는 피할 수가 없다. 저유가 상황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그런데도 뉴욕 증시는 하루만에 신이 나 있었다.  

무엇보다 나스닥이 폭등세였다. 코로나 장세에선 내내 기술주가 산업주보다 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준 덕분에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이 사실상 괴리됐다. 실물경제가 이제 4월이라면 주식시장은 이미 2분기고 3분기다. 주식시장의 작동 원리는 분명하다. 미래 가치를 현재 가격으로 반영한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수록 더 먼 미래 가치까지 앞당겨서 반영할 여지가 생긴다. 다우존스나 코스피보다 더 먼 미래의 미실현 이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라고 조성한 시장이 나스닥이고 코스닥이다. 최근 며칠 동안 나스닥 시장의 주가 흐름을 보면 오전장보단 오후장이 더 강했다. 악재일 땐 지지부진 횡보하다 오후에 낙폭을 약간 만회했다. 호재만 터졌다 하면 오후까지 계속 밀고 올라갔다. 역시나 이날도 그랬다. 

그런데 뜻밖인 기업이 있었다. 넷플릭스였다. 모두가 오르느라 바빴는데 넷플릭스만 빠지고 있었다. 모두가 추락하느라 바쁠 땐 나홀로 올랐던 종목이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의 1분기 실적이 공개된 상황이었다. 그것도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숫자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매출은 57억6769만 달러. 영업이익은 9억5825만 달러. 순이익은 7억900만 달러. 무엇보다 1분기만에 전세계에서 유료 회원수가 1577만명이나 늘었다. 전분기 대비 증가율은 9%. 1년 전 동기대비 증가율은 23%. 코로나가 처음 창궐하기 시작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선 360만명. 이어서 확산된 북미에선 231만명. 유럽과 중동과 아프리카를 합산하면 696만명. 넷플릭스의 글로벌 유료 가입자수는 총 1억8300만명. 그런데도 넷플릭스 주가는 자꾸 떨어지고 있었다.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오늘의 호재 중 하나는 넷플릭스 어닝 서프라이즈일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주당 순이익이 월가 전망치를 하회했기 때문인가 싶었다. 주당 순이익은 1.57달러. 월가의 컨센서스는 1.65달러였다. 과연 이것 때문일까. 

아직 팔고 남은 넷플릭스 주식이 약 1주 남짓 남아 있었다. 어닝콜 이후에 주가가 훨씬 더 오를거라고 예상해서 남겨뒀었다. 궁리해봤다. 넷플릭스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하나였다. 시장은 넷플릭스의 2분기와 3분기는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는 것. 1분기의 유료 가입자 증가는 일화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때문에 넷플릭스의 제작 환경이 악화됐다. 극장가에 이어 안방극장가도 곧 볼거리가 고갈될거란 말이다. 

게다가 조만간 지역별 국가별로 넷플릭스 망사용료 분쟁이 예견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는 초고화질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유무선 네트워크 사용량이 엄청나다. 이렇게 가입자가 폭증해버리면 국가별 네트워크 사업자들도 넷플릭스한테 수익을 나눠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건설된지 50년이나 지난 경부고속도로도 아직까지 운전자들한테 통행료를 징수한다. 정보고속도로에 넷플릭스만 무임 승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즈니스 세계에 공짜는 없다. 시장은 배울수록 무서울만큼 똑똑하다. 시장은 내가 아는건 이미 다 알고 있다. 시장은 내가 모르는 것도 먼저 다 알고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새벽 시장에 나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테슬라였다. 테슬라 주가는 뉴욕증시의 일희일비의 거의 동기화돼 있었다. 바닥일 때는 4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가 오를 땐 700달러까지 올랐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코로나 장세 이전에도 테슬라는 늘상 그랬다. 이 세상 주식이었다가 저 세상 주식이었다가를 거듭했다. 테슬라는 재무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다. 매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9년까진 여전히 영업적자였다. PER이 안 나오는 이유다. 현재의 주가를 설명해주는 숫자적 근거가 없다시피 하단 말이다. 넷플릭스와는 다르다. 테슬라가 월가의 카지노라고 불리는 이유다. 

마이너스 유가로 테슬라 주가는 700달러대에서 60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쳐버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스닥이 다시 한번 일희일비해준다면 오늘밤엔 다시 700달러선을 회복할 공산이 컸다. 이때가 1차 매도 타이밍이겠다 싶었다. 테슬라에도 넷플릭스와 같은 원칙을 적용해볼 작정이었다. 한달 정도 주식투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원칙이었다. 주가수익률이 25% 이상이 넘어가면 매도 타이밍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30%를 넘어가면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고 매도해서 현금화한다. 결국 25%에서 35% 수익률 사이에서 매도 타이밍을 잡는다는 얘기였다. 넷플릭스도 딱 30%에서 일부 매도했다. 솔직히 그 뒤로도 더 올라서 배가 아팠지만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테슬라도 매도할 시기였다. 쏠림 현상으로 나스닥이 반등만 해준다면 말이다. 당연히 테슬라로 쏠릴거고 그러면 수익률이 30%를 넘길 터였다. 

테슬라도 4월 29일에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서 솔직히 갑갑했다. 이딴  식이었다. “월가는 테슬라의 1분기 실적이 좋게 나올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니라면 떨어질 것이다.” 사실 테슬라의 2020년 1분기 실적이 기대 이상이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1분기엔 상하이 기가팩토리가 가동을 제대로 못했겠고 2분기엔 북미 기가팩토리가 개점휴업을 했을터였다. 게다가 글로벌 부품 공급망도 코로나로 꼬여버렸다. GM과 현대차가 겪는 문제를 테슬라라고 피해갈 수 있었을까. 아무리 미래형 전기차라고 해도 생산측면에선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 엮여 있는 현재형 자동차 회사다. 

수요도 감소하면 감소했지 증가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코로나 시대는 아무래도 자동차가 잘 팔릴 시즌은 아니다. 테슬라 모델3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특수 장치라도 달려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이렇게 상식적 추리를 해본들 테슬라는 본질적으로 상식 밖의 예외적인 기업이다. 이제까지의 주가 역시 상식적이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론 테슬라 주가는 7000달러까지도 갈 수 있다고 본다. 장기적 상승을 점치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 자동차 산업의 간판은 GM과 포드에서 테슬라로 교체될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다. 마법사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조언했다. “결과적으로 큰 수익을 남겼던 종목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매수 포지션이었던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장기적인 우상향 추세에서 매수와 매도를 기간별로 거듭하며 상승세를 따라갔던 경우였죠.” 처음 읽었을 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막상 직접 투자를 해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이해가 됐다. 시장이 매일 일희일비하기 때문이다. 그걸 잘 보여주는게 주가 그래프다. 음봉양봉으로 매일 같이 오르락내리락이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장기적인 추세가 있다. 지나고봐야 안다는게 문제지만 말이다. 

결국 큰 국면적 흐름을 타면서도 사건적 변화에 따라 매수 매도를 적절하게 반복해줘야 한다. 수익을 내고 투자를 하며 파도와 파도를 넘고 넘어 큰 해류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 종목에서 번 돈을 저 종목에 넣고 저 종목에서 번 돈을 이 종목에 넣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단일 종목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뜻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는게 맞을 것 같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해석은 전부 다르듯 똑같은 조언을 들어도 적용은 각자의 몫이다. 그게 주식 투자의 세계 같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아트 오브 딜로 나스닥 반등이라는 사건을 일으켜줬으니깐 이 틈을 타서 단기적 수익 실현을 해보자 싶었다. 그러겠다고 꼭두새벽에 일어났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테슬라 주식 2주를 주당 720달러에 매도했다. 원칙에 따라 수익률은 31%. 나름 지키고 있는 또 하나의 원칙인 주가가 상승하고 있을 때만 해당 주식을 팔자는 룰도 지켰다. 이번에도 1.5주 정도는 남겨뒀다. 큰 흐름은 계속 따라가고 싶으니깐 말이다. 혹시나 어닝콜을 전후해서 테슬라 주가가 또 조정을 받는다면 그땐 추가 매수 포지션을 취하면 되고 말이다. 팔고 나니깐 테슬라 주가는 732달러까지 상승했다. 피터 린치가 <월가의 영웅>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떤 주식이 비록 10배나 주가가 오른 종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당신이 잃은 것은 없다.(아까와 하지 말라)” 

P.S. 4월 23일 목요일장 개장을 3시간여 앞둔 현재 테슬라 주가는 프리 마켓에서 딱 720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어제의 딜이 옳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시장은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고 오늘의 오답이 내일의 정답이 되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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