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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27. 2020

투심과 농심

농심 003470

농심을 매도한게 지난 금요일이었다. 매도일은 4월 24일. 매도 주가는 30만4000원. 수익률은 16%. 원래는 훨씬 더 오래 보유할까도 했었다. 농심 주가가 장중 32만4000원까지 올랐던 지난 4월 6일에도 움켜쥐고 있었던 이유다. 그땐 몰랐다. 32만4000원의 의미를 말이다. 과거 시세를 찬찬히 스터디해보다가 알았다. 농심의 52주 최고가였다. 그땐 지금보다도 더 초보여서 그랬다. 매수 타이밍만 알았지 매도 타이밍은 몰랐다. 물론 주가란 얼마든지 기존 최고가를 뚫고 신고가를 기록할 수도 있다. 과거가 미래를 전부 설명해주진 못한다. 농심은 다르다. 농심을 매수한게 3월 16일이었다. 코로나가 글로벌 증시를 난타하던 시기였다. 기술주들의 낙폭이 훨씬 컸다. 기술주들은 장기적으로 저가 매수를 한다고 해도 중단기적으론 먹거리 기업에 투자하는게 맞다고 봤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자기 격리를 당해도 사람은 먹고 마셔야 산다. 한국은 전세계 라면 소비량 1위다.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4.6개. 53.9개인 베트남보다 20.7개나 더 먹는다. 세계라면협회의 통계다. 스터디를 하다가 세계라면협회라는 곳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라면은 신라면이다. 압도적인 인기다. 갤럽이 라면 정기적으로 인기도를 조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인기도면에선 2위 진라면의 3배쯤 된다.

농심에 투자한 이유는 코로나 위기 말고도 또 있었다. 한국 라면의 해외 수출이 증가 일로였기 때문이다. 특히 농심은 2019년에 거의 8억 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2018년에 비해 18%나 늘어난 수치였다. 무엇보다 농심은 미국과 일본과 중국에서의 판매가 모두 두 자릿 수 이상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과 중국은 모두 지금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버린 시장이다. 모두 공격적인 소비부양책을 쓰고 있다. 코로나여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농심은 미중일에 걸맞는 유통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손이 큰 미국에선 월마트에, 손이 작은 일본에선 편의점에, 전자손을 좋아하는 중국에선 이커머스에 집중했다. 이건, 코로나 위기에서도 주가가 선방하거나 오르지 않을까 짐작했던 미중일 유통기업의 리스트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러니까 월마트 주가가 오른다면 농심 주가도 올라야한다. 테슬라 주가가 오르면 LG화학 주가가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농심에 투자를 했다. 매수가는 26만원.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에 농심을 전량 매도한건 농심의 실적을 나쁘게 봐서는 결코 아니었단 뜻이다. 개인적으로 농심의 주가 목표를 30만원으로 잡아뒀기 때문이었다. 주식 투자를 하다보니 비록 소액이지만 트레이딩을 오래하면 익혀지겠구나 싶은 가격 감각 같은게 있었다. 개별 종목별 주가 흐름을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 말이다. 실물시장의 상인들도 이런 가격 감각을 갖고 있다. 두부 한 모에 얼마, 고등어 두 마리에 얼마, 쇠고기 한근에 얼마인지 오래 따져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직관력 말이다. 직관은 전망이나 통찰만큼이나 시장에서의 성패를 가르는 승부처다. 다만 예리한 직관은 분석이나 계산 뿐만 아니라 후천적 경험과 선천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성취하기가 좀 더 어렵다. <시장의 마법사들>에서 한 마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트레이딩에 입문한 뒤로 단 하루도 시장을 거른 적이 없습니다. 휴가를 가서도 하루에 한 두 시간씩은 꼭 트레이딩을 했죠. 휴가로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가 직관을 설명하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했다. 초보지만 직관적으로 농심은 30만원대가 매도 타이밍이었다. 아니라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4월 27일 월요일자 <조선경제>를 보다가 아차 싶었다. 농심과 오리온을 다루고 있었다. 농심과 오리온이 코로나 불황의 최대 수혜 기업이라는 기사였다. 둘 다 집콕 소비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고 분석했다. 맞다. 그래서 농심을 샀었다. 솔직히 그때 오리온은 놓쳤다. 같은 시장 맥락에서 농심과 오리온 둘 다 사긴 그랬다. 다른 시장 맥락을 읽어서 다른 기업들을 더 사보고 싶었다. 이제 오리온을 사긴 늦었다. 코로나 이전엔 10만원대 아래였던 주가는 12만원대까지 뛰었다. 이런 종목은 지금은 보내줘야 한다. 남보다 늦은걸 인정해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기사가 나왔다는건 이미 오를만큼 올랐단 의미였다. 기사는 이젠 사실이 된 과거의 팩트들을 다룬다. 기자의 소명은 과거의 기록이지 미래의 전망이 아니다. 저널리스트의 통찰은 보통 과거를 해석하지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기자의 한계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걸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농심도 마찬가지였다. 오리온 투자가 한발 늦었듯이 이제 기사를 보고 농심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있다면 그들도 한발 늦었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 농심 주가가 떨어지거나 적어도 많이 오르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투심은 변덕스럽다.

역시나였다. 지금 농심의 주가는 4월 27일 월요일장에서 30만5000원에서 30만4000원을 하루 종일 오가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오전장부터 1900선을 회복해서 1950선을 향해 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솔직히 농심이 다시 30만원대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매수를 해볼까도 싶다. 농심은 여전히 매력적인 기업이니깐 말이다. 국내 시장 점유율 1등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라면 브랜드니깐 말이다. 이런 우량 기업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다만 우량 종목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사도 이익이 되는건 확실히 아니다. 적어도 모두가 우량 기업이 우량 종목이라는걸 알아버렸을땐 결코 투자하기에 좋은 때는 아니다. 예를 들어서, 아침 조간 신문에 농심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을 때처럼 말이다. 투심이 몰릴 때는 농심을 살 때가 아니다. 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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