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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27. 2020

2020 로스트 메모리즈

SK하이닉스 000660

“포지션이 잘못되었는지 여부는 어떻게 아시죠?” “주가가 하락합니다. 그것만 알면 됩니다.” 잭 슈웨거의 <주식 시장의 마법사들>에 나오는 인상 깊은 문답이다. 성공한 투자가들에 관해 스터디를 해나가다보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들의 언어는 간결하다. 진리는 언제나 미니멀한 법이다. 잘못된 투자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주가만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는 대체로 잘못이었다. 2020년 2월 18일의 1차 매수 때도, 3월 23일의 2차 매수 때도, 4월 23일의 3차 매수 때도 말이다. 매번 살 때마다 거의 곧바로 주가가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첫 번째로 SK하이닉스를 매수한 이유는 포트폴리오의 비중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의 비중에 비해 SK하이닉스의 비중이 너무 낮았다. SK하이닉스 주식 4주를 주당 10만2000원에 샀던게 지난 2월 18일 화요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는 황해 건너 중국 얘기일 뿐이었다. 그날의 코스피 종가는 2208.88. 과연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싶은 그리운 지수다. 그땐 호시절인줄 몰랐다. 평생의 주식 거래 회수를 통틀어봐도 열 손가락 아래였던 때였으니깐 말이다. 아름다웠던 시절은 늘 짧고 그리움이 더 길기 마련이다. SK하이닉스를 처음 샀던 그 날에도 코스피는 한 웅큼이나 빠졌다. SK하이닉스 주가 역시 사자마자 떨어져버렸다. 

두 번째로 SK하이닉스를 매수한건 3월 23일 월요일이었다. 코로나로 주식 시장이 붕괴된 직후였다. 3월 23일의 코스피 지수 종가는 1483.46. 직전주의 1500대가 무너진 날이었다. 이땐 그래도 주식 트레이딩을 조금 공부했다고 나름 분할매수를 했다. 70500원에 2주. 70000원에 2주. 도합 4주 매수. 짐작했겠지만 이때도 실패였다. SK하이닉스 주가는 그 뒤로도 60000원대 바닥권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막상 그걸 보면서도 SK하이닉스를 추가 매수하지 않았다. 10만원대에 샀던 주식을 7만원대로 물타기를 한 정도로 대략 만족하기로 했다. 그때가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 물타기였다. 

세 번째로 SK하이닉스를 매수한건 4월 23일 목요일이었다. 매수가는 83500원. 매수량은 5주. 그것도 분할매수도 아니고 한번에 질렀다. 이번에도 삼성전자에 비해 비중이 너무 적나 싶어서였다. 무엇보다 23일 발표된 SK하이닉스의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에 고무됐기 때문이었다. SK하이닉스의 2020년 1분기 매출은 7조1989억원. 영업이익은 8003억원. 순이익은 6491억원. 여의도의 예측을 훌쩍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서버용 SSD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란게 SK하이닉스의 설명이었다. 

이건 이미 시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코로나로 다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넷플릭스 보고 유튜브 보고 줌하고 행아웃하고 아마존 사고 알리바바 산다. 자연히 서버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뉴욕증시가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넷플릭스 오르고 구글 오르고 아마존 오르고 알리바바 오르고. 게다가 클라우드 서버 업체들의 주가는 더 막강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르고 아마존 오르고. 또 있었다. 엔비디아도 오르고 AMD도 오르고. 두 회사는 서버용 GPU의 양대 산맥이다. 대부분 한두 숟가락 정도씩은 투자를 한 기업들이었다. 주가 흐름을 잘 알 수 밖에 없었단 말이다. 그래서 SK하이닉스의 어닝 서프라이즈 소식을 듣고 회사 IR팀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이렇게 중얼거릴 수 있었다. “서버 수요 덕분이군”이라고 말이다. 

SK하이닉스의 어닝 서프라이즈 소식을 듣고 바야흐로 한국 증시의 대장주들이 복귀할 때가 됐겠다고 짐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말이다. 코로나 상황에선 물론이고 포스트 코로나 상황에서도 서버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코로나가 잠재 수요를 자극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휴대폰 시장 전망도 낙관했다. 2분기 이후의 수요 감소폭이 그렇게 최악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나 샤오미나 화웨이는 물론이고 애플조차 중저가폰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중저가폰이란건 결국 백화점 할인 세일 같은 상황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다. 휴대폰은 교체 주기 수요라는게 있다. 때가 되면 바꿔주고 싶은게 소비자 심리다. 게다가 스마트폰 기업들은 여러 가지 업데이트를 통해 신상 휴대폰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사용자 환경을 조성하는데는 선수다. 과연 소비자들이 2분기 이상 휴대폰을 안 바꾸고 버틸 수 있을까. 정말 보복적 소비가 일어난다면 휴대폰 시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서버 수요에 이어 스마트폰 수요까지 살아나면서 쌍끌이로 SK하이닉스의 주가를 좋았던 시절로 회복시켜준다라는, 순진한 시나리오였다. 

“가장 확신이 들 때야말로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가장 두려움이 들 때가 가장 움직여야 할 때다.” 오래 알고 지낸 트레이더 김동조 이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말이다. 김동조 이사는 거의 모든 것에서 거의 틀리는 법이 없다. 월가의 투자가들처럼 김이사도 언어가 간결하다. SK하이닉스의 주식 5주를 확신에 차서 추가 매수할 때 김동조 이사의 조언을 떠올렸어야 했다. 매수를 하자마자 주가는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포지션이 잘못된건 이렇게 금방 알 수 있다. 주가가 떨어지니깐 말이다. 그것만 알면 된다.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전날밤 인텔의 주가가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인텔은 지난 4월 23일 목요일 미국장이 끝난 직후에 실적을 공개했다. SK하이닉스처럼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매출은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가 늘었다. 순이익은 42%가 증가했다. 그런데도 인텔 주가는 시간 외로 6%나 하락했다. 인텔 주가 하락의 직격탄을 한국장이 열리자마자 SK하이닉스가 맞은 셈이었다. 인텔의 밥 스완 CEO는 2분기 이후 반도체 시장을 생각보다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요약하자면 기대조차 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이후 전망도 인텔과 똑같았다. “향후 실적 전망은 무의미합니다.” 나빠질건 분명한데 얼마나 나빠질지를 모르겠다는 뉘앙스였다. 시장은 바로 여기에서 공포를 느꼈다. 시장은 가장 싫어하는건 언제나 불확실성이다. 

그때 깨달았다. 미국 시장에서도 보고 싶은 것만 봤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같은 반도체 수요 사이드만 봤지 인텔이나 마이크론처럼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공급 사이드는 잘 보지 않았다. 심지어 마이크론 주식은 한두 스푼쯤 갖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마이크론 주가에서 SK하이닉스를 읽어내지 못했다. 두 회사가 경쟁사라는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이래서 지식과 지혜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과 시장에 대한 공부가 너무 부족하다 싶었다. 그저 삼성전자고 SK하이닉스면 떨어지지는 않겠지 생각하는 막연한 낙관에 젖어 있었다. 따지고보면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해 여름 내내 6만원대에서 7만원대를 맴돌았었다. 코로나 변수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공급과 수요가 만들어내는 가격이다. 코로나가 있든 없든 그것만 보면 된다. 2019년은 반도체 D램 가격이 40% 넘게 하락했었다. D램이 주력 제품인 SK하이닉스 주가가 높을 수가 없었다. 반면에 2020년엔 D램 가격 상승이 예고되는 상황이라 연초에 주가가 높았다. 바로 그때 첫 번째로 SK하이닉스 주식을 매수했던 것이다. 그래서 SK하이닉스 주가는 막연하게 10만원대 언저리라는 근거 없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사실 반도체 업황에 따라 6만원대일수도 7만원대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반도체 시장에 대해 이토록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SK하이닉스에 돈을 넣었다. 코스피 시총 2위니깐 오를거라는 피상적인 기대만 갖고 말이다. 이러니, 살 때마다 떨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주가는 투자자의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시장의 엄밀한 평가로 결정된다. 주가가 하락하면 당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다. 너무 성급했거나 너무 몰랐거나 둘 중 하나거나 둘 다였거나다.

SK하이닉스 주가는 4월 27일 월요일장에선 8만2000원대를 회복했다. 그렇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지난주에 SK하이닉스를 바라봤던 근거 없는 낙관론은 잊은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대해 스터디할수록 지난주의 낙관적 투자가 얼마나 무지몽매한 짓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오른건 코스피 지수가 1900대를 회복한게 주효했다. 시장에 물이 들어오면서 SK하이닉스도 같이 떠오른 셈이었다. SK하이닉스의 향후 실적 전망이 개선된건 아니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분기 기준 순부채 규모가 7조7000억원 가까이 늘어난 상태다. 지난해까지 설비투자에만 40조원 이상을 썼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2019년엔 매출 대비 47%나 설비투자에 쏟아부었다. 중저가 D램 반도체를 쏟아내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20년 반도체 수요 확대와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딱 터져버렸다. 결국 SK하이닉스는 2020년엔 대규모 설비 투자는 보류했다. 대신 공정 전환으로 원가는 낮추고 가격은 높여서 순익률을 높이는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비용은 줄이고 가격은 높이겠다는 이 말이다. 

문제는 공급 과잉이다.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여럿이다. 아무리 코로나 이후 반도체 수요가 회복된다고 해도 타격은 이미 입을데로 입은 것이다. 당초 기대했던 2020년 반도체 호황을 기대하긴 어렵다. 설비 투자를 확대했던 반도체 기업들이 서로 먼저 살겠다고 다투면 수요 회복보다 공급 과잉이 먼저 올 수 있다. 서버용 낸드 플래시 매출이 SK하이닉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안팎이다. 70% 이상을 차지하는 D램 매출과 가격이 나와줘야 SK하이닉스 주가도 상승한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이미 2020년 반도체 업계 매출이 2019년 대비 최대 12%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IDC도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것이다. 

3차례의 매수로 SK하이닉스 주식 보유량은 15주가 됐다. 15주를 평균한 매수 주가는 8만3100원. 4월 27일 월요일 현재 SK하이닉스의 종가는 8만2600원이다. 그래도 시총 2위 대한민국 반도체 대표 기업 SK하이닉스니깐 일단 믿고 장기 보유할 것인가, 아니면 손절하지 않는 선에서 일단 정리할 것인가. SK하이닉스 주식은 포트폴리오에서 D램처럼 휘발성 메모리인가, 낸드 플래시처럼 비휘발성 메모리인가. 2020 메모리 시장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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