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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Apr 30. 2020

종목명 : 기회

LG화학 051910

4월 29일은 대청소의 날이었다. 한국증시는 4월 30일 부처님 오신날부터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거쳐 5월 5일 어린이날까지 연휴 휴장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4월 29일 수요일장에서 포트폴리오를 정리정돈할 때구나 싶었다.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입문한지도 한 달 남짓 되는 시점이었다. 글로벌 증시 흐름도 코로나 대응에서 포스트 코로나로 옮겨가는 분위기였다. 코로나로 인한 폭락장 속에서 저가매수했던 기업 가운데 어느 정도 수익이 났다 싶은 종목은 이 참에 미련없이 정리해보자 싶었다. LG화학이었다. 

LG화학을 1차 매수한건 지난 3월 16일 월요일이었다. 3월 13일 금요일에 미국증시에 이어 한국증시까지 대폭락한 직후였다. 3월 13일의 코스피 지수 종가는 1771.44. 솔직히 여기서 더 떨어질 줄은 몰랐다. 역시나 초보에 하수였다. 주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걸 그땐 몰랐다. 그래서 과감하게 LG화학을 주당 341000원에 2주 매수할 수 있었다. LG화학이 40만원대까지 올라가는걸 봤다. 관련해서 유튜브도 만들어봤었다. 34만원대면 매수타이밍이라고 오판했다. 20만원대까지 굴러떨어지는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LG화학을 2차 매수한건 지난 3월 20일 금요일이었다. 코스피 지수가 3월 19일 1400대 바닥을 찍고 1500대로 겨우 반등했을 때였다. 물론 당시엔 누구도 그때가 바닥이었다는걸 몰랐다. “지나고봐야 그때가 바닥이었다는걸 알죠.”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투자의 법칙>을 쓴 월가 출신의 프로페셔널 트레이더 닐슨영주 교수가 해준 말이다. 닐슨영주 교수는 이런 말도 했다. “그래서 월가에서 오래 일한 트레이더도 대부분 바닥에서는 못사요. 꼭지에서는 못 팔고. 그걸 욕심내면 안돼요.” 이제 막 시장에서 트레이딩을 배우기 시작한 인턴개미지만 몇 번의 거래만 해보고도 대번에 그 말 뜻을 알 수 있었다. 가끔 그날의 상투에서 팔거나 그날의 바닥에서 사는 경우가 있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코스피가 약간이라도 반등기미를 보이자 그만 지켜보고 사볼까 싶어졌다. LG화학 정도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시야가 여전히 좁지만 그땐 더 좁아서 보이는 종목이 몇 개 없었다. 축구에서도 박지성처럼 넓은 시야를 가지려면 오랜 경기 경험이 필수다. 어느 분야에서나 시야의 폭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서만 확장될 수 있다. LG화학 주식 2주를 260000원에 매수했다. 동일한 주식을 거의 10만원 차이로 매수한건 처음이었다. 하긴 뭐든 처음일 수밖에 없는 인턴개미지만 말이다. 그때부터 일주일 동안 여러 종목을 꾸준히 사들였다. 코스피 지수가 1500대에서 17000대까지 회복돼가던 구간이었다. LG화학이 거래재개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셈이다. 

그런데 매일매일 거래를 기록해놓은 구글문서를 보면 4월 1일 이후부터 일주일 정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주식 거래가 없다. 소강상태. 그랬었다. 살 돈이 없었다. 신한금융투자 CMA통장에 넣어둔 주식예탁금으로 전부 국내외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이 돈으론 주식투자를 한다고 미리 딱 정해놓은 금액이었다. 어느새 그걸 다 써버렸다. 돌이켜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당시 미국 증시와 한국 증시는 모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이미 바닥은 쳤으니깐 앞으로 더 오르기전에 가능한 빨리 최대한 많이 사들여야만 했다. 솔직히 CMA통장에 현금을 더 넣을까도 고민했다. 절제했다. 투자의 세계에선 원칙이 중요하다는걸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처음 읽었을땐 솔직히 공자왈 맹자왈이구나 싶었다. 잔소리처럼 들렸단 말이다. 요즘 다시 읽으면서 이런 부처님 말씀이 따로 없구나 싶다. 복음서처럼 읽힌단 말이다.  

부처님 오신날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일부를 정돈하려고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4월 초에 기회가 좀 더 있었는데도 현금이 없어서 놓친 경험 때문이었다.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하면 3분의 1 정도는 현금화시켜놓을 작정이었다. “현금은 기회거든요.” 주식관련 팟캐스트 <대주주>의 진행자 동소영님이 개인적으로 해줬던 조언이다. 현금이 기회라는 말의 참뜻을 이제야 깨달았다. “시장에 기회는 늘 있다.” 피터 린치가 한 말이다.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현금은 꼭 예비해둬야만 한다. 그것까지가 포트폴리오의 일부인 것이다. 종목명은 기회다. 

그렇지만 LG화학을 매도하는건 고민이 좀 필요했다. LG화학의 1분기 실적은 희비가 교차했다. 매출 7조1157억원. 영업이익 2365억원. 매출은 7.5% 증가. 영업이익은 15.9% 감소.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2.9% 감소한 363억원. 여의도에선 컨센서스를 상회했다며 예상 밖 호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가 싶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모두 큰 폭으로 감소했는데 무엇이 호실적이란걸까. LG화학은 석유화학과 2차 전지라는 두 가지 주요 수익원이 있다. 원래는 석유화학제품 하나에만 의존하는 기업이었는데 전기차 산업이 성장하면서 훨씬 건실해졌다. 올해 초만 해도 2차 전지 사업 부문의 규모가 커지면서 LG배터리로 분사하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1분기에 2차 전지 사업 부문은 518억 원 적자였다. 주요 수요처인 테슬라와 GM 등의 공장이 코로나로 가동 중단됐기 때문이다. 2분기에도 전기차의 공급과 수요에는 적잖은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근의 저유가 흐름은 LG화학의 석유화학부문한텐 유리한 국면이었다. 그만큼 원유를 싸게 사서 비싸게 재가공해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엔 시차의 착시가 있다. 지금 판매하는 석유화학 제품은 지금 사들인 원유로 만든 것이 아니다. 예전에 비싸게 사들인 원유를 재가공해서 생산한 것이다. 덕분에 현재 원유값은 싼데 지금 재가공품은 비싼 가격차가 만들어진다. 몇 달 뒤엔 어떨까. 지금 싸게 사들인 원유가가 LG화학이 생산하는 재가공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일단 여기까지 추리해봤지만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었다. LG 화학의 사업보고서를 찾아 읽어봐야겠다 싶었다. 웃픈 일이다. LG화학으로 몇 푼의 이익을 남기게 생겼다. 막상 LG화학에 관해 매도할 때까지도 사업보고서 하나 읽어보질 못했다. 기업내용을 100%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4주 정도 매수매도할 때는 그럴 수도 있다. 만약 400주씩 매수매도하려면 이 정도 공부로는 어림도 없다. 하면 안 된다.

그래도 매도는 하기로 했다. 연휴 전에 현금화를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정비할 필요는 확실히 있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준비해야만 했다. 물론 테슬라 주가가 뉴욕 시장에서 더 오를 수도 있었다. 테슬라의 어닝콜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테슬라 주가와 LG화학 주가는 연동돼 있다. 테슬라 역시 1분기에 실적이 어닝 서프라이즈일수는 없을거라고 봤다. 코로나 탓에 생산과 수요가 모두 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테슬라 주식은 주당 800달러대는 깨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아니라면 1.5주 정도 남겨놓은 주식의 오버슈팅을 즐기면 될 것이다. 물론 테슬라 주가가 혹시나 어닝콜 이후에 올라도 연휴 휴장 탓에 그것이 당장 LG화학 주가에 반영되긴 어렵다는 점까지 계산했다. 테슬라답게 그 사이에도 몇 번이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할 공산이 크다. 

LG화학을 매도한건 라디오 방송 하나를 녹음하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매도가는 주당 369000원. 매도량은 4주. 수익률은 22.7%. LG화학과 함께 한 두 종목 정도를 익절했다. 지난 며칠 동안 미국 주식을 익절해서 불러들인 현금까지 더하자 포트폴리오상에서 기회 항목의 비중이 꽤 늘어나게 됐다. 이걸로 연휴 이후 5월 이후의 포스트 코로나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들을 추리해나갈 작정이었다. 4월 29일 LG화학의 종가는 376500원. 매도 이후에도 7500원이 더 올랐다. 단순 계산상으론 3만 정도 손해를 본 셈이었다. 물론 37만6500원에 매도하는데 성공했다는 가정 하에서의 얘기지만 말이다. 지금의 트레이딩 실력을 놓고 볼 땐 그렇게 당일 최고가 매도에 성공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게 연휴 맞이 국내 주식 프로폴리오 재정비를 끝냈다. 기회를, 얻었다. 

P.S. 2020년 4월 29일 수요일 미국장에서 테슬라의 종가는 800.51이었다. 시간 외 거래에선 874.23까지 상승했다. 마침내 800달러 선까지 깼다. 지난 4월 23일 테슬라 주식 2주를 매도했을 때 주가는 720달러. 솔직히 실적선방을 하더라도 800달러선을 깨기는 어려울 거라고 봤다. 시장은 적자일거라고 예측했던 테슬라 주가가 소폭이지만 흑자라는걸 확인하자마자 투자할 근거를 줘서 고맙다는 듯 800달러선 돌파를 허락해버렸다. 이젠 900달러 돌파도 시간 문제다. 1.5주라도 남겨둬서 다행이다. 반면에 LG화학 주식은 4주를 전량 매도해버린게 아깝다.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남겨둔걸 후회하고 팔아버린걸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시장 안에 홀로 서 있는 인간의 솔직한 심리란 이런 것이다. 과연, 현금화한 돈으로 더 나은 주식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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