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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May 01. 2020

진통제와 치료제

5월에도 증시와 실물의 괴리는 계속될 것인가?

메이데이에 메이데이. 지난 4월 30일 목요일 미국증시를 한국의 시각에서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랬다. 미국의 노동절은 한국과 달라서 9월 첫째 월요일이지만 말이다. 지난밤 뉴욕증시는 코로나 충격으로 미국의 누적 실업자 숫자가 3000만명을 넘어섰다는 뉴스에 와르르 무너졌다. 5월 1일 한국의 노동절엔 꽤나 어울리는 소식이었다. 실물경제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조난신호에 주식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May Day에 Mayday-Mayday-Mayday다.  

그런데 좀 새삼스럽긴 하다. 지난 4월 한달 동안만 놓고 봐도 주식 시장이 실물 시장 위기에 눈길 한 번 준적이나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에 발표되는 신규 실업수당 신청건수는 증시에 별다른 영향을 못 준지 오래됐다. 이미 알려진 악재에 불과했단 말이다. 3월 셋째주에 328만3천건으로 3월 둘째주의 28만여건에 비해 12배나 폭증했을땐 확실히 악재였다. 코로나 충격이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이 정도라는걸 처음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4월 셋째주에도 신규 실업수당 신청건수는 442만7천건이었지만 이때 시장은 유가와 렘데시비르에 집중하느라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S&P지수는 4월 한 달 동안 34%나 급등했다. 월간 상승폭으로는 33년만의 최고 기록이다. 4월 한 달 동안 시장은 실물과 괴리돼 있었다.

그러니까 매주 목요일 공개돼온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에 시장이 이번엔 이렇게나 화들짝 놀라다니 신선한 일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시장은 하루 전인 4월 29일 수요일에 미국 1분기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 4.8%로 발표됐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무려 6년만의 역성장이었는데도 말이다. 반면에 지난밤 뉴욕증시는 개장하자마자 내림세였다. 결국 S&P500은 0.92% 하락. 다우존스도 1.17% 하락. 나스닥도 0.28% 하락. 게다가 전주보다 청구건수 자체는 줄었는데도 말이다. 추세만 보면 감소세다. 시장은 이보단 누적수치에 더 집중했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6주 동안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3030만명에 달한다는 규모에 반응한 셈이다. 미국 전체 생산연령인구의 18.4%에 달한다. 대공황 시절의 실업률이 25%였다. 미국 노동부는 5월 8일에 4월 실업률을 발표한다. CNBC는 19%를 전망하고 있다. 3월 실업률은 4.4%였다.

이제부터 관건은 시장과 실물의 괴리가 이대로 좁혀질 것이냐다. 4월 한달 동안 연준은 주식시장한텐 진통제를 투여했다. 정부는 실물경제한텐 응급처지를 했다. 덕분에 시장은 코로나의 고통을 잊었다. 실물은 코로나로 테이블데쓰되진 않았다. 문제는 경제봉쇄가 코로나로 사람이 죽는건 막아도 경제가 죽는건 못 막는다는 현실이다. 3천만명이라는 실업자수 통계는 시장이 실물의 고통을 느끼고 마취에서 깨어나게 할만큼 아팠던 셈이다. 넷플릭스부터 테슬라에 이어 애플과 아마존까지 이어졌던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쇼도 시장이 느끼는 고통을 완전히 완화시키지 못했다.

이대로 시장이 계속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때가 최악이다. 실물경제에 이어 주식시장까지 무너지면 그게 대공황이다. 코로나로 직장을 잃었는데 경제붕괴로 자산까지 털려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걸 경제계층적으로 이해하면 실직으로 서민 경제가 붕괴되고 폭락으로 중상층 경제까지 폭망하면서 경제시스템 전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대공황이 그랬다.

솔직히 이런 시나리오에 배팅해볼까 싶은 유혹도 들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을 싹 정리하고 지수를 추정하는 인버스ETF나 VIX지수만 골라서 투자하는 식이다. <빅숏>의 주인공 스티브 아이스먼처럼 대박이 나진 않을까. 마이클 루이스의 <빅숏>을 읽어보면 스티브 아이스먼은 태생적으로 숏을 칠 수 밖에 없는 투자자다. 매사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오류라는 재료도 있었지만 아이스먼의 천성이 빅숏의 숨겨진 재료였던 셈이다. 스스로의 투자성향을 분석해보면 빅숏보단 빅롱을 더 어울린다. 혹시나 5월은 4월과는 다르지 않을까. 실제로 여기에 배팅한 투자자가 있었다. 신채권왕이라고 불리는 제프리 군드라흐 더블라인캐피털 수석투자책임자다. 군드하르는 4월 1일에 “4월 증시도 3월과 비슷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며 “시장이 3월에 찍은 저점을 뚫고 보다 단단한 지지선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단단한 지지선이라고 쓰고 더블딥이라고 읽는다. 결과적으로 완전 틀렸다. 채권왕이 계산하지 못했던 변수는 무엇이었을까.

연준이었다. “연준에 맞서지 말라.” 월가의 투자 격언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조언이다. 4월 한달 동안 연준은 코로나 위기로부터 증시를 거의 완벽하게 보호했다. 시장이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진통제와 치료제를 번갈아 처방했다. 위기돌파엔 리더쉽이 필요하다. 한국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있다면 미국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있다. 그래서 한국은 방역처방에선 최고였다. 미국은 경제처방에선 최고다. 그 결과가 4월 미국 증시 호황이었다. 5월에도 연준의 시장에 대한 치료와 처방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지난 4월 29일 수요일에 있었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들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4월 29일 시장은 FOMC 발언에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연 0.00에서 0.25%의 제로 금리를 유지할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시장은 다른 변수들에 주목했다. 또 다시 렘데시비르에 주목했고 테크 대장주들의 어닝 서프라이즈들에 호응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9일 FOMC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빚을 걱정하며 행동할 때가 아니다. 미국 경제의 장기적인 생산능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를 이겨내도록 하기 위해 미합중국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재정적 역량을 활용할 때”라고 발언했다. 놀라운 발언이다. 파월 의장은 오랜 동안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만 해도 금리 인하를 거부해서 트럼프와 정면 충돌했다. 트럼프는 파월을 해임해버리겠다고 으르렁거렸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파월이 앞장서서 오히려 트럼프한테 연방정부가 돈을 더 풀어야 한다고 거꾸로 요구했다는 얘기다.

제롬 파월과 연준은 5월 증시에서도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실물지표들이 증시를 위협할 때마다 연준이 공격적으로 대응해나갈 공산이 크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도덕적 논란에 발목잡힐 일도 없다. 코로나 경제위기는 내부의 탐욕이 아니라 외부의 불운이 빚어낸 자연재해니깐 말이다. 2008년 밴 버냉키 연준 의장과 달리 제롬 파월은 아무린 거리낌 없이 연준이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카드를 총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후유증은 나중에 생각하고 시장부터 사수하겠다"는 제롬 파월의 임전무퇴 의지는 5월 증시를 지탱해줄 가장 큰 바텀 라인이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사고뭉치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증시의 저지선이다. 솔직히 4월 15일 총선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한 한국이 코로나 국면에선 미국보다 훨씬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방역위기에 대응하기엔 유리했다. 총선 때까지 경제 대신 방역에 빠르게 올인했기 때문이다. 정작 총선 이후 경제회생이라는 다음 숙제 앞에선 너무 느리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속도도 너무 느리고 산업별 기업별 회생안이 도출되는 과정도 너무 너무 느리다. 한국에서 아직 미국 같은 실업대란이 일어나지 않은건 경제가 멀쩡해서가 아니다. 인력구조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감원하지 않는 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줬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은 코로나 사태가 현재진행형인데 이미 경제재개도 현재형으로 바뀌었다. 사실상 코로나 진화와 경제 회생을 동시에 진행하는 모양새다. 11월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이 동기다. 지금이야 경기침체보다 코로나가 더 큰 이슈다. 11월쯤 되면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그때가 되면 코로나를 막은 것보다 경제를 망친 것 때문에 재선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걸 안다. 그래서 “Make America reopen again”이라고 외치면서 경제회생 이슈를 재빠르게 선점한 것이다. 맨 먼저 경제재개를 앞장서 주장한 정치인으로 유권자들한테 기억되지 위해서다. 그래서 선거가 끝난 한국은 경제정책의 속도가 오히려 느려졌지만 선거를 앞둔 미국은 경제정책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이미 미국 32개 주가 부분적으로 경제 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성패 여부에 초미의 관심사다. 어쩌면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더라도 상관 없을 수 있다. 해당 주 정부들은 어떤 식으로든 경제 활동 재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경제재개가 다급하기 때문이다. 이미 어느 정도 데미지는 각오하고 나선 길이다. 실업자 숫자가 3000만명에 달했다는 것부터가 더 이상 경제활동 재개를 늦출 수 없다는 조난신호다. 실업수당의 재원이 되는 주정부들의 실업기금 역시 서서히 고갈 상태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시장이 그러길 요구하고 있다. 4월 30일의 베어 마켓이 말해주고 있다. 증시가 지금은 연준의 진통제에 취해있는 듯 보여도, 실물이 지금처럼 계속 망가지면 언제까지나 지금 같을 순 없을거라는 분명한 신호다. 이제 시장은 경제에 관해서도 진통제가 아니라 치료제를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치료제는 램데시비르일진 몰라도, 경제의 치료제는 경제활동재개다. 시종일관 여타 코로나 치료제에 관해선 과학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던 앤서니 파우치가 렘데시비르에 관해선 직접 나서서 매우 정치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도 마찬가지다. 임시방편 치료제라도 있다면 미국은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는 명분이 된다. 바보야, 진짜 문제는 이제부턴 코로나가 아니라 경제야. 아무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속내를 시장이 주가로 적나라하게 말해준 셈이다. 미국 증시가 4월 내내 모른척 해왔던 실업자 숫자에 새삼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다. 5월의 시장은 그렇게 메이데이에 메이데이-메이데이-메이데이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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