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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러리 May 08. 2020

무간도

버진 갤럭틱 SPCE

팔았다. 아침 9시에 한국장이 열리자마자 15개 종목을 한주씩 한주씩 분할매도했다. 오늘 시장이 열리자마 코스피가 상승 출발할거라고 대충 짐작했다. 일단 전날 미국 시장이 좋았기 때문이다. 인턴개미지만 지난 한달 여의 증시 패턴을 보면 그럴 것도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부터 강세였다. 그래서 팔았다. 폭락장도 아닌데 1시간 동안 팔기만 했다. 오히려 1시간 동안 코스피 지수는 1950선까지 깨고 계속 상승을 거듭했다. 팔겠다 작정한건 가격만 맞으면 싹 다 팔았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렇게 팔고나자 매도총액이 500만원 정도 됐다. 

전날 미국장에서도 팔았다. 미국장도 열리자마자 상승세였다. 불과 1주일 전만 해도 뉴욕증시를 흔들었던 실업률 관련 통계도 이번엔 관심 밖이었다. 연휴 직후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던 미중무역갈등 가능성이 그나마 악재라면 악재였다. 그마저도 1차 미중무역합의를 이행하는 수준으로 끝날거라는 추측이 나오면서 희석됐다. 경제활동재개에 대한 기대감까지 반영되면서 다우존스와 스탠다드앤푸어스와 나스닥이 일제히 상승세였다. 특히 오늘도 나스닥이 막강했다. 그래서 팔았다. 몇 가지 종목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싹 다 정리했다. 다 팔고나니 매도총액이 2500달러 정도 됐다.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내고 남들이 욕심 낼 때 두려워하라.” 워렌 버핏이 한 말이다. 본격적으로 주식 직접 투자를 시작한 지난 3월 10일 이후 한 번도 잊어본적이 없는 격언이다. 3월 10일은 아이의 생일이라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기준일이다. 이날 하루 동안에만 1300만원 어치의 국내외 주식을 사들였다. 3월 10일 투자 기준일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이튿날인 3월 11일에 WHO가 코로나 펜데믹 선언을 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라고 썼지만 솔직히 도저히 읽히지는 않는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이 감염병 위험 최고 수준인 6단계 경보를 발령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솔직히 뒷북이구나 싶었다. 중국에선 이미 1월부터 난리였다. 한국에서도 2월부터 난리였다. 이미 코로나는 세계 대유행 상태였다. 막상 뉴스를 보면서도 WHO의 뒷북에 시장이 북새통이 될 줄은 몰랐다. 시장이 이런 악재에 얼마나 예민한지 그땐 미처 몰랐다. 생초보였다. 시장은 돈이라는 인생을 건 투자자들의 욕망과 불안이 빈틈 없이 들어차서 서로 밀치고 당기며 무수하게 응어리지고 메아리치는 무간지옥이다. 시장은 무간도여서 아주 작은 악재나 호재에도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다. 

3월 12일부터 미국 증시의 대폭락이 시작됐다. 마이너스 9.9%. 3월 13일엔 한국 증시가 대폭락했다. 하루 아침에 손실액이 마이너스 500만원이 됐다. 시장에 돈을 넣자마자 절반 가까이를 난린 꼴이었다. 그런데도 3월 16일 월요일에 돈을 더 넣었다. 700만원. 떨어지는 칼날을 잡아보려는 도전이었다. 피터 린치는 떨어지는 칼날은 바닥에 꽂혀서 흔들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돌이켜보면 피터 린치의 말이 딱 맞았다. 실제로 코스피는 3월 19일 목요일과 20일 금요일과 23일 월요일에 바닥에 꽂혀서 흔들리다가 3월 24일 화요일부터 본격 반등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3월 19일에는 못 샀다. 3월 20일에는 LG화학을 샀고 3월 23일에는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 그리고 삼성전자를 샀다. 한국중앙은행보다 더 믿음직한 미국 연준이 버티고 있는 미국시장에선 좀 더 적극적으로 매수했다. 넷플릭스와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사들였다. 그렇게 사들이다보니까 어느새 투자금이 바닥이 났다. 그래서 3월 30일에 500만원을 더 넣었다. 미국장에선 월마트와 우버와 타겟과 존은앤존스와 엔비디아를 샀다. 한국장에선 케이엠더블유와 스튜디오드래곤과 덱스터를 샀다.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진 두렵지가 않았다. 시장이 바닥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얼마나 어떻게 올라갈 것이냐가 관건일 뿐이라고 믿었다.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내고 남들이 욕심 낼 때 두려워하라”는 워렌 버핏의 말을 되새겼다. 

4월 중순부터 시장의 센티멘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포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욕망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악재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원래가 매일 매일 악재에 휘둘리는게 시장인가보다 싶었다. 신규 실업자 신청건수, 유가하락, 글로벌 코로나 확산 같은 악재가 나올 때마다 시장은 계속 나부꼈다. 반대로 경제활동재개, 렘데시비르 치료제, 유가회복 그리고 어닝서프라이즈 같은 호재가 나오면 시장은 또 반색했다. 그렇게 4월 내내 시장과 함께 호재에 웃고 악재에 울었다. 원래 개미투자란 이런건가보다 싶었다. 악재와 호재 속에서 기회를 찾는게 투자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단 말이다. 4월 말 주요 기업들의 어닝 서프라이즈가 이어지면서 미국 시장이 크게 올랐을 땐 드디어 증시가 코로나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려나 싶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 증시는 연준의 금리인하로 실물과 완전히 괴리된 상태다. 지금도 코로나로 인하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피할수도 없다. 중앙은행의 돈풀기는 시장의 시계만 코로나 이후로 돌려놓았다. 미국과 한국의 나스닥과 코스닥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도 그래서다. S&P500과 코스피에 비해 나스닥과 코스닥은 더 먼 미래 수익을 현재의 가격으로 평가하는 시장이다. 테슬라가 900달러까지도 갈 수 있는 시장이란 말이다. 

시장도 이걸 모르지 않는다. 지금의 주가가 실물 펀더멘털이 뒷받침이 없는 사상누각이란걸 말이다. 그래서 시장은 작은 악재와 호재에도 울고 웃는 조울증 환자처럼 변해버렸다. 5월 초 연휴가 지나고 나서도 시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악재는 미중무역갈등이었다. 다음 호재는 한국판 뉴딜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중국 책임론을 들이밀자 증시는 이걸 미중무역갈등 재개 조짐으로 예민하게 해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이런 빌미를 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갑자기 폼페이오 장관이 진화에 나섰다. 특히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과 관련한 1차 무역협정을 이행하면 미중냉전까지는 안 갈 것도 같았다. 물론 트럼프가 또 다시 중국 때리기에 나설 가능성은 있다. 코로나 대응 실패의 책임을 중국한테 돌리는건 트럼프 캠프의 중요한 대선 전략일 수밖에 없다. 한국 증시에선 한국판 뉴딜이 호재였다. 5월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한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할 때 개인투자자로서 냉정을 되찾게 해주는 경험을 했다. 이미 4월 말부터 홍부총리는 원격 의료 등의 규제를 풀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비트컴퓨터나 인성정보 같은 원격 의료 관련주가 잔뜩 올랐다. 정작 한국판 뉴딜에 원격 의료는 없었다. 홍부총리는 또 한국판 뉴딜은 토건사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이미 올라있던 건설주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래도 경기부양을 위해선 SOC사업을 할 수 밖에 없을거라는 기대감과 디지털 뉴딜인데 토건과는 무관한게 아니냐는 실망감이 교차했다. 관련 주식들의 주가도 정부의 정책 속내를 독해하느라 오르락내리락이었다. 2월에만 해도 5000원대였던 비트컴퓨터 주가는 1만원대까지 올랐다가 다시 9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시장의 조울증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주가의 울렁증이었다. 

무간도에서 일희일비하는건 투자가 아니다. 투지일 뿐이다. 시장에서의 투지는 도박판에서의 투기보다 어쩌면 더 나쁘다. 투기는 낭비적이라면 투지는 소모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시장과 싸우면 안 되기 이유다. 지수와 가격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욕망이 시장과 맞서려는 투지를 일으킨다. 악재와 호재에 시시각각 반응하면서 시장의 일상적 울렁임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분투하게 된다. 문제는 폭우가 내리면 우산을 써도 빗방울이 튀는걸 모두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하루 종일 시장의 이곳 저곳으로 자금이 몰려다는게 눈에 보일 정도다. 그렇게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간다. 폭락장보다 더 어려운게 상승장이란걸 처음 배웠다. 공포에선 희망을 찾으면 된다. 욕망 속엔 미망만이 가득하다. 지나놓고보면 제자리 걸음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팔았다.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오전에 이렇게 팔아도 오후엔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그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걸 말이다. 정말 그랬다. 오전에 내다 판 15개 종목 가운데 2개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주가는 모두 하락한 상태였다. 코스피 지수가 1950선을 넘었다가 다시 1950선 아래에서 끝난 것과 똑같았다. 미국장에서 내다판 종목들도 별다르지 않았다. 지금 증시는 무간지옥인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코로나로 고통 받는 실물로부터 박리된 시장의 숙명인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성격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다 팔아버린건 아니다. 미국시장에선 비중은 약간 줄였어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넷플릭스, 테슬라 같은 기술주들은 남겨뒀다. 델타항공처럼 너무 주가가 반토막이 나서 그냥 버틸 수 밖에 없는 종목도 남겨뒀다. 델타항공은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도 없는 주식이 됐다. 버핏도 포기했다. 테크대장주들은 코로나에서든 포스트 코로나에서든 상승할 여지가 충분하다. 진작에 사뒀던 월마트나 스타벅스 같은 소비유통주도 남겨뒀다. 소비가 회복되면 가장 먼저 오를 주식이기 때문이다. 대신 버진 갤럭틱 홀딩스 같은 주식은 원금이 회복되자마자 팔아치웠다. 투자를 시작하던 초반에 항공주에 이어 우주항공주까지 손을 댔었다. 버핏처럼 부자도 아니면서 항공주 사랑만 똑같다. 이건 전형적인 버블 투자였다. 포트폴리오에서도 이딴 거품을 걷어낼 때가 됐다. 

한국시장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기술주들이 우선이었다. CJ CGV처럼 경기가 회복되면 2배는 갈 거라고 믿고 장기보유할 생각인 주식들도 남겨뒀다. 비록 1분기 실적이 반토막이 났어도 말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도 원금 회복이 되자마자 팔아버렸다. 항공주 주가가 다시 오르려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게다가 HDC현대산업개발이 제정신이라면 아시아나 항공 인수는 포기하는게 맞다. 진작에 손을 못 뗀건 항공산업이 기간 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한테 미움 받고 언론의 지탄을 받지만 시장만 환영해주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신 회사의 실체를 기사나 보고서를 통해서만 읽은 소부장 기업들은 대부분 정리했다. 아무리 언론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유망하다고 칭찬한들 과연 그 기업들의 본질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포트폴리오가 아주 간결해졌다. 수학자 리차드 벅민스터 퓰러는 말했다. “문제를 풀고 나서 풀이가 아름답지 않다면 나는 그 답이 틀렸다는 걸 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들 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미니멀하기를 원했다.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미니멀하게 만드는 것도 투자의 새로운 원칙이 될 수 있겠다 싶다.  

다만 아마존은 팔았다. 주당 250만원 짜리 주식이라 소수점 매수를 했었기 때문이다. 소수점 매수를 하면 직접 트레이딩이 불가능하다는걸 나중에야 알았다. 전날밤 9시까지 매수 의사를 전달하면 증권사 트레이더가 대신 팔아주는 방식이었다. 아마존은 적당한 매수 타이밍에 1주 이상을 매수할 작정이다. 소수점 매수했을 때보다 훨씬 많이 올랐지만 말이다. 황금주 매수를 주저하는건 초보의 전형적인 실수인 듯하다. 물건이든 주식이든 비싼건 그만큼 값어치를 하는데 말이다. 한국시장에선 그래서 LG생활건강을 못 샀다. 뻔히 우량기업이란걸 알았으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마침 3월 10일 기준일로부터 초보 투자를 시작한지 2달째가 되는 시점이었다. 오늘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하기엔 적절한 날이었다. 5월 10일은 일요일이라 증시가 휴장이다. 여기까지의 수익은 플러스 500만원. 마이너스 500만원을 만회한 것까지 고려하면 인턴개미로선 제대로 롤러코스터를 타본 셈이다. 겨우 이익을 남겼지만 제 실력이 아니란 것도 안다. 그저 낮은 가격에 사서 높은 가격에 팔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두렵다. 모두가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욕심을 이길 실력이 없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내고 남들이 욕심 낼 때 두려워하라.”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 블란도가 했던 마지막 대사가 떠올랐다. “호러, 호러,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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