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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Jul 09. 2020

밥을 물에 말아먹었다

관계는 '맛'이다



타인들의 기억 속에 중심으로 자리하려는 질투로 가득 찬  마음의 쓰레기들.

이것이 문제다

질투를 했던 건 그들이 아니라 나였
입으로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면서 쌓아두었던 관계의 흔적과 기억들이 굳어서 삶의 응어리를 만들고 있었

관계의 변비.

바로 그거였다

해결책은 없

배출이 유일한 답이다

배출을 하기 위해서 나는 딱딱하게 굳은 내 안의 돌덩이들을 녹여야 한다

관계의 중립을 위해선 한쪽이 아닌 양쪽의 말을 들어야 한다

양쪽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한쪽에만 치우쳐 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에 무게가 실려 가끔은 또 다른 한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그럴 땐 시간이 답이다 

흐르는 시간은 관계를 수평으로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다

시간이 흐르고 딱딱했던 돌덩이들이 몰랑해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몰랑해진 기억과 흔적들이 물렁해지고 물컹해져서 질척거리는 것 같은 느낌.

이러다가 나도 모르게 아무 데나 배설해버릴 것 같은 위기감.

이건 아니다

모름지기 관계란 너무 굳어도 너무 질척거려도 안된다

경계의 모호함.

때론 묘한 매력까지 뿜어내는 관계의 경계가 가지고 있는 이 애매함 때문에 사람들은 관계라는 단어를 평생 짊어지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 돌이었다가 물이었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관계의 배설물을 재활용하기 위해 나는 그동안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끔 입맛이 없을 때나 입안이 깔깔할 때 고추 간장 하나 놓고 밥을 물에 말아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입 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든다

조선 시대  임금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속이 시끄러울 때 물에다 밥을 말아 수라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걸 보면 이 개운함이 나만의 느낌은 아닌가 보다

오늘.

밥을 물에 말아먹었다

며칠 전 사 둔 명란을 쪄서 반찬으로.

깨소금 약간, 청양 고추 송송, 참기름 한 방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아무것도 넣지 않고.

짭조름한 알의 식감과 물에 만 밥은 의외로 참 잘 어울렸다

비릴 줄 알았는데..

선입견이었다

밥 한 끼 먹는 데도 선입견을 가졌었다니...

막상 먹어 보면, 가 보면, 해 보면 될 일들을 생각만으로 접어두고 그동안 내 안에 돌을 만들었던 거였구나

맛이란  입 안에 뭔가를 넣고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보기만 하거나 듣기만 해서는 그 맛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맛'이다

밥 한 숟가락을 떠서 그 위에 명란을 올렸다

뭔가 질척 거렸던 마음이 보송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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