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와
일요일 밤에는 잠이 잘 안 온다.
이런저런 생각 하느라 걱정하느라 새벽 세시가 돼서 잔다.
일요일이라 잠을 많이 못잔 탓도 있다.
아무튼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난 그게 좀 걱정이 되지만 그냥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누우면 떠오르고 그런다.
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클파가 끝나는 날 생각을 해보니, 내가 자꾸 떠올리는 기억들은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에 집중되어 있어다.
어떤앨 떠올리면 나는 대학교 몇학년었지 나는 몇학년때 뭐했지 하면 또 어떤애가 떠오르고한다.
예를 들면 대가리에 피도 안 말랐을 나의 스물한 살 때 지하철에서 걔 옆에 앉아있다가 내려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에 어버버버 하고 등신처럼 내린다음 내가 내릴 곳이 여기가 아닌데 하면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고,
몇년뒤 또 지하철에서 이번에는 다른 애의 얼굴을 아주아주 빠져들어서 보기도 하고 멋부린답시고 입은 한 십 년은 입었을법한 회색스웨터를 입고 스벅에서 커피하고 케이크를 사고
이번에는 사범대, 나의 그 망할 학교 사범대건물 앞 벤치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 모습을 역시 또 다른 애가 놀린답시고 찍어서 나한테 보내고
그런 기억들을 아아아아직까지도 떠올리면서 나는 좀 센치해지고 뭐 그렇다. 만약 내가 술을 마셨으면 입에서 술냄새나 풍기면서 전화나 걸겠고 카톡이나 보냈겠지.
나는 이딴 얘기를 침대에 누워서 망할 손주들에게 할아비도 이런 기억이 있었어요~ 요귀염둥이들! 하면서 냄새나는 입으로 뽀뽀를 하려고 하면 그 싸가지 없는 손주 놈들은 망할 할아버지 언제 집에 가나 뭐 이런생각이나 하겠지. 그럴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여튼 뭐 그렇다. 나는 변변치도 않은 기억들을 가지고 한 오십년은 우려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그 애들도 나처럼 주름이 생기고 성질도 고약해지고 어디 마트에서 세일한다고 하면 세시간은 줄서고 뭐 그러겠지. 유튜브에서 멍청한 정치영상이나 보고. 그래서 멍청한 늙은 사람들이 과거회상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절대 늙을리 없는 사람이랑 소꼽놀이나 했던 때를 짱구만 굴리면 떠올릴수 있으니까. 그건 돈도 안든다.
신기한건 그때의 벤치며 지하철역이며 다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걔네들 얼굴만 기억이 안난다. 웃긴일이다.
기억이란 정말 믿을게 못된다.
아직도 잠이 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