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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몽골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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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Jan 10. 2021

100년은 긴 시간인가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시그널

   1920년경에는 세계인구가 19억 명, 1970년대 40억 명, 2011년은 70억 명, 2030년에는 90억 명, 2050년에는 100억 명 이상이 될 것으로 위키백과는 전망하고 있다. 1900년대까지 인구증가는 10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산업혁명 이후이고, 인구증가와 함께 인류사도 급격하게 변화했다. ‘인류사의 급격한 변화가 인구를 증가시켰다’가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인류사의 서사에 잘 어울리는 인간이다. 1970년대에 태어나 버스가 하루에 세 번 다니는 시골에서 토끼랑 발맞추며 풍요롭진 않았지만 말랑말랑하게 살았다. 14살이 되던 해에 군산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도시로 나왔다. 공장의 굴뚝 매연과 탁한 물이 흐르는 도시의 하수구는 콜타르처럼 끈적끈적했다. 도시에서 기가 죽은 열 몇 살의 나는 고독한 황야의 이리처럼 도시를 어슬렁거렸다. 경성고무 뒷골목을 돌아 버스 종점으로 가는 길 끝에는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었다. 음악이 크게 울리고 ‘런던 보이즈’의 팝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롤러스케이트장 담벼락에서 팝송을 알게 됐다. 

    자본에 조금씩 눈을 뜬 어린 나는 버스비를 아껴야 했다. 중동(군산의 법정동 이름, 피난민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곳으로 매우 복잡한 골목길이 많은 곳)의 어느 골목길에서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어느 허름한 골목에서 이모부와 마주쳤다. 이모부는 화투를 치고 나오는 자세였다. 그 시대의 어른들은 농한기가 되면 모여서 화투를 쳤다. 월남전에 참전했고 사우디에서 외화를 벌어들였던 이모부는 삶이 좀 농한기 같으신 분이셨다. 나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 어느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입에 문 개처럼 돌아다니다 겨우 길을 찾았다.

    컴퓨터는 전산실 안에서 소중하게 다뤄지던 시절이 있었다. 16bit 컴퓨터는 예민한 녀석이라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줘야 했다.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선배는 매우 근사해 보였다. 컴퓨터에 제공되는 적정 온도와 습도는 전산실 밖 사람들에게 묘한 박탈감을 줬다. 나는 토지대장이나 지적도를 발급해주는 일을 했는데 그 당시는 전산화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 일제 강점기에 작성된 구대장과 카드로 만든 신대장, 전산으로 출력된 토지대장을 모두 확인 후 스템플러로 찍고 인증기로 천공을 해서 발급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불과 여러 해 전의 이야기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급격하게 이동했다. 니콘 FM4로 사진에 입문한 나는 조리개와 속도계로 빛을 조절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현상되기를 기다리던 긴 설렘의 시간도 아날로그처럼 흘러갔다. 나는 여기서 좀 버벅거렸다.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에 누군가 중고로 내놓은 니콘 필름카메라 F100을 샀다. 중고로 내놓으며 그 사람은 이렇게 광고했다. “필름이 돌아가면서 나는 ‘차르르 탁’하는 소리와 찍히는 순간에 나는 ‘차알~칵’ 소리는 니콘만의 감성입니다.” 그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곧 사라지리라는 사실도 잊고 나는 덜컥 내 통장을 헐었다. 나도 그 ‘차르르 탁’하는 소리를 매우 사랑했던 탓이다. 

     디지털시대에 적응은 감성적으로 쉽지 않았다. 내가 어렵게 수집했던 멋스러운 것들은 다 구식이 되는 느낌에 혼란이 왔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날로그 제품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창고로 갔다. 그것들은 끝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조금씩 세월에 삭아갔다. 사라진 뒤에야 아날로그는 디지털 속에서 다시 감성으로 소환되었다. 아마도 끄때부터 나는 손놀림도 느리고 마음도 느리게 흘러갔다. 퍼덕거리며 뒤뚱뒤뚱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숨이 가빴다.    


     여기서 묻고 싶다. 100년은 긴 시간인가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인류가 보낸 100년은 지구에 어떤 의미였을까? 100년은 아주 긴 시간 같지만, 지금의 추세로 간다면 지구는 인류에게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알 수 없다. 이미 과학전문가들은 그 두려움을 예측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2020년 한 해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며 보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가는 인수공통 감염병으로 예측됐다. 이런 바이러스가 증가하는 주된 원인은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인간이 동물을 밀렵함으로 멸종 지역에서 살아남은 바이러스 혹은 밀렵한 동물의 몸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염된 것으로 본다. 인류가 지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동물의 자연 서식지는 감소할 것이고 동물에게 서식해야 할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감열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20세기 전체 기간보다 지난 10년간의 변화가 더 크다고 한다. 10년을 몇 번 더 산 나는 그 변화의 한 복판에 있었다.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따라가기 바빴고 승진도 해야 했고 뒤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책잡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 한쪽에 그리움 같은 것들이 쌓여갔다. 어린 시절 모깃불을 피우고 평상에 누워서 보았던 밤하늘의 은하수와 대숲에서 날아왔던 반딧불이, 장마철이면 양동이를 받치고 잡았던 미꾸라지 떼, 한겨울에도 얼음장 밑에서 노닐던 샛강의 물고기들을 바라보던 유년의 내가 그리웠다. 몽골이라면 소중한 줄 모르고 보내버린 유년의 시간을 타임머신 타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몽골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아직도’라는 말을 붙인다. ‘아직도’ 유목생활을 하는 나라, ‘아직도’ 마지막 오랑캐 쪽이 사는 나라. 지금도 독수리로 사냥을 하고 시력이 5.0까지 나오는 사람들. 그들은 문병의 시간을 아주 느리게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마음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이제야 몽골에 발을 딛게 됐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 몽골.

    나를 좌절하게 했던 디지털시대. 이제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디지털 노마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가 몽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직도’ 추구하고 있는 유목민의 삶. 인류의 욕망에 훼손되지 않은 그들의 세계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남아 있다. 

     자연을 누구보다도 경외했던 내 어머니의 삶이 옆에 있어서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봉’은 자본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외’였으면 좋겠다. 그러므로 나와 몽골의 조우는 나의 대지였던 어머니와의 재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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