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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J Sep 19. 2015

Balaclava의 마티니

알코올이 살짝 당기는 날에


알코올이라는 물질 자체가 발화성을 지닌 액체지만 그것이 정신에 일으키는 영향도 물의 평정과 불의 격동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어령의 '읽고 싶은 이어령' 중에서 - 


금요일 저녁이. 알코올에게서 오는 평정과 격동을 동시에 하고 싶은 저녁이다. 해는 뉘였 뉘였 세인트 킬다 바닷가   저물 하늘은 수줍게 분홍색을  구름과 함께    없을 것만 같은 노을을 선사한다. 지금  그런 저녁이. 


한두  달쯤    친구를 만나는 저녁이기 . 우리는 같은 일을  하면 친구 되었.  승진을 한 친구는 나의 매니저, 나는 그의 교육생으 시작했다.  우리는 동급이. 그래 만나면 하는 얘기 거의  얘기. 그러 않으려 하지, 주제를 다른 쪽으 돌려봐 잠깐 삼천포 빠졌다 돌아오면  우린  얘기를 하고 있다.


에스프레소 마티니다. 커피 빈으로 마무리를 지은 멋찐 작품같은 마티니다. 

 친구 얘기를 조금 하자면, 맛집이 괜찮은 장소들을 너무  알고 있는 친구. 그래 그를 만날 때면  안내하  어디든 군말 않고 따라간다. 오늘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 았다. 마티니 당기는 , 끝내주는 노을이 지는 그런 저녁에 너무나  어울리는 레스토랑  바 겸 카페.


멜번 시내에 있는 플린더스 역에서 센드링햄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삘 나는 기차를 타고 10분 정도 걸렸나? 다섯 정거장을 가면 나오는 곳이 발라클라바 역이다. 바로 내 친구 녀석이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발라클라바 역에서 서쪽을 향해 걷다 보면 멜번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세인트 킬다 바닷가를 만날 수 있다. (해 질 녘 세인트 킬다 바닷가의 풍경은 누구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해가 질 때를 딱 맞춰서 가면 슬슬 모습을 드러내는 펭귄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 남극에 있는 큰 펭귄이 아닌, 웅크리면 배구공 보다 작은 아주 귀여운 아이들이다.)


에스프레소 마티니 두 잔과 에스프레소 헤이즐넛 마티니 한 잔, 헤이즐넛 맛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 나의 마티니다.

마티니를 한 잔, 두 잔 걸치며  함께할 수 있는 기가 막히게 괜찮은 음식들도 많았다.  그중 나는 두 가지 요리를 선정했다. 


그릭 요거트로 만든 요상하게 자꾸만 손이 가는 소스에 찍어먹는, 메이플 시럽을 마무리로 뿌려 달달한 맛까지 가미한, 가지로 만든 칩(맥도널드 감자칩 같이 생긴, 맥도널드 감자칩보다 3~4배 두꺼운 칩). 


타르트 소스에 찍어 먹으면 끝내주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살짝 옷을 입혀 튀겨낸 부드러운 오징어 튀김. 


(사실 저 음식들을  만나자마자 정신없이 먹어 치우느라 사진 찍을 찰나를 놓쳐버렸다. 다음 번에 가면 멋있게 찍어 올리겠노라 다짐한다.)


하얀 초코렛 가루가 환상적으로 잘 뭍혀있는 삼각 글라스에 담아 마시는 은근히 달짝지근함을 맛 볼 수 있는 무화과 마티니다.

에스프레소 헤이즐넛 마티니를 너무도 맛있게 마신 후, 커피가 들어간 마티니를 한 잔 더 하기란 괜히 있지도 않은 불면증을 사서 걱정하며, 다음 잔은 어떤 마티니로 할까 고민 고민하나 고른 녀석이 달달한 무화과 마티니다. 뭐 사실 내가 직접 골랐다기 보다는 내 친구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에 길게 고민하지 않고 결정할 수 있었다. (다음 번에 나와 함께 누군가가 온다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녀석이다.)


마티니 잔 가에 멋들어지게 붙어있는 하얀 초콜릿 가루들을 먹어주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만든 이의 마음이  서운해질까 봐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살짝 살짝 잔을 돌려가면서 다 먹었다. 먹고 난 후에 나도 뭔가 모를 만족감에 든든했다.


그렇게 잔을 기울이고 비우며 우리의 밤은 점점 깊어갔다.



- Epilogue -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자신의 폰을 내 카메라 앞에 장난스레 가져다 놓는다. 내가 장난기 넘치는 말투로 버럭 버럭 거리니 내 친구는 맛이 들어 더 짓꿋게 달려든다. 이러면서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시간이 괜찮은 추억이 되고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By Minnie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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