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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J Sep 09. 2015

의미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그 어떤 무언가의 의미가 되어진다는 것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by 김춘수 - '꽃'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 마지막 문구가 머릿속을 떠돈다.

싱글인 나는 생활비를 아끼고자 한 커플(J와 M)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살고 있다. 우린 지구의 남반구에 크게 떠있는 섬(같지 않은, 대륙 크기의 냄새를 풍기는 섬) 나라 호주, 멜버른에서 말이다. 나는 이곳에 연고도 없고 가족도 없는 터라 이들은 나에게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늘  함께한다. 그 말로만 듣던 '모던 패밀리' 것이다. 모던 패밀리, 현대식 화 된 가족의 재구성.


J는 예술의 혼이 충만한 아이다. 앤디 워홀의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실크 스크린'을 전공했다. 지금은 자신의 전공과는 다른 ㅁ.ㅐ.ㄱ (M.A.C) 코스메틱에서 메이컵 아티스트 겸 재품 스페셜 리스트로 일한다. 그는 언제나 내가 특별히 메이크업을 받고 나가야 할 일이 있거나 파티 등이 있을 때 특별히 손을 봐준다. 한 듯 안 한 듯 한 내추럴한 메이크업을 좋아하는 내게 그의 손길은 과히 감탄을 자아내개 한다. 또 매달 그에게 무료로 할당되는 새로 나온 재품들 중 많은 아이들이 나에게 온다. 그 덕에 나는 메이크업에 대한 지출이 없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13년 초, 내가 호바트에 갑작스럽게 살 방을 구하면 서다. 이미 나는 20 곳도 넘는 곳을 방문하고  찾아다니면서 방 구하는 것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살아갈 공간이 필요했던지라 이를 악 물고 또 다시 한 번 가보자 하고선 인터넷에서 본, J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다. 집은 지어진지 오래된 터라 현대식 초인종 대신에 문에 노크를 하면 크게 소리가 나는, 쇠로  만들어진 고리가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내 눈 높이 비스무리한 위치에 놓인 고리를 잡고 '툭 툭' 노크를 하고 10초가 지났었나? '오 안녕' 하고 나오는 J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너무도 확신이 넘치게 느꼈다. 내가 그 집에 이사를 오게 될 것임을.


[옛 호바트 집] 초인종은 없어도, 집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구멍은 있었다. 내가 오기 얼마 전에 새로 달았다고 했다.

M은 멜버른 어느 부촌의 한 미용실에서 너무도 잘 나가는 헤어 디자이너이다. 그에게 머리를 손질하려고 저 먼  곳에서부터 차를 고 45분~1시간씩 걸려서 오는 분들까지 계시다고 하니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설명해 봐야 타자 치는 손가락만  피곤해질 뿐이다. (나는 그런 그에게 집에서 '무료'로 머리 손질을 받는다. 그런 후 나는 그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들; 예를 들면 바삭바삭한 치킨에 맥주, 잡채, 불고기, 제육볶음, 볶은 소고기 고추장에 비벼먹는 비빔밥을 진수성찬으로 요리를 해주면 그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행복해한다.)


M을 처음 만난 건, J 내가 2013년 말, 호바트에서 멜버른으로 이사 오고 나서 7~8개월이 지난 후였다. 솔로라 늘 외로움을 심심찮게 타던 J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M을 만나 나에게  소개주었다. 둘이 너무 예뻤다. 그런 예쁜 사랑을 하는 커플이 요즘 흔치 않은데. 옆에 있는 나까지도 행복함에 젖어 들게 했다.


뭐 지금 J와 M은 권태기라는 험난하고 어두운 숲을 여러 번 지났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은 반복해 가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가끔은 고래들의 연애 싸움에 내 등이 터져 나가는 날들도 여러 번 있었다.



[멜번 집] 내가 살고 있는 집 창문에 비치는 노을은 온종일 고단했던 나의 몸과 마음을 너무도 황홀하게 달래 준다. 수고 많았다고.


어제였다.

J가 샤워를 하고 나오는 나에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Thank you for your support and also thank you so much for that you never give up on me. When people are getting sick of me and leaving me because I am a sensitive spirit. But you are alwasy there for me whenever and wherever I need you to be, and also tell me the truth that I really need to see and understand where I am, where I've been lost. You are my true sister who I luckly have a chance to meet in my life time that I have only once."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난 내 스스로가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을 귀찮다는 변명하에 늘 포기하며 살아가는 속물 아닌 속물이라 단정 지으며 내  마음속 깊은 저 어딘가에서 늘 소리 없이 질책하며 살아왔다. 자책하며.


그런 나에게 있어서 J의 그 한 마디는 내가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그에게 해준 것이라고는 고작 그의 하루를 아무  말없이 들어주거나, 그가 어려운 일에 해결책을 못 찾아  힘겨워할 때 내 작은 생각을 공유해 주거나, 아니면 아무런  말없이 두 개의 요가 매트를 거실에 깔아 놓고서 거칠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하는 요가로 복잡한 머릿속을 잠시나마 아무 생각 없이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최근 J는 새로이 다가온 M과의 권태기에 들어서면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J를 무조건 나무라는 M과, 그런 M에게 받은 서운함에 J는 날로 날로 더 센시티브 해지고 있는 찰나였다.


삐쭉빼쭉 날카롭게 들어오는 서운함의 칼날은 여린 마음에 몹쓸 상처를 남기고 간다.


서운한 마음이 가득가득한 J에게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라고 보잘 것 없는 내 옛날 이야기를  하나해주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와 나의 친여동생.

우리는 서로에게 서운한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았다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서운했던 마음을 말해 서로가 미안해지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마음 아파지는 말들을 하며 지냈다. '미안해'라는 말을 하면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보잘것없는 자존심에 금이라도 갈까 절대로 사과를 건 낼 수 없었다. 거기에다 나는 언니니 먼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가치 있고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내 자존심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동생과의 관계인가? 무엇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인가? 무엇에 나는 더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살아가면서 자존심을 지켜야 할 일들은 많다. 그렇다고 그것이 과연 나와 내 사랑하는 동생과의 관계보다 먼저 지켜져야 하는 것인가?'하는 물음들에 솔직히 대답을 해 가다 보니, 내가 참으로 헛된 것들에 우선순위를 내어 주면서 정작 지켜야 할 많은 소중한 것을 포기, 아니 잃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동생과 다투는 일이 없어졌다.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울 일이 없어졌다. 그런 나에게 동생이 '우리 언니가 달라졌어요.'라고 했다. 그 말에 난 크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후, 나는 J에게 물었다.

'나에게 있어 내 동생은 세상에 둘도 없이 중요한 의미의 존재이다. 나도 당연히 내 동생에게 그런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너에게 있어서 M은 어떤 의미의 존재이며,  너는 M에게 어떤 의미의 존재가 되고 싶어?'


J는 나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한다.

'M에게 긍정적인 존재가 되고 싶고, 행복을  함께하는 마음까지 든든하게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의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후 하루 반나절이 지났다.


그때가 내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후였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자.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가진 두 가지  면의 나, 첫 번째로 '버리고 싶어도 버리기 힘든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나'와 두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먼저 위하려는 이타적인 내'가 서로 맞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무엇이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가치가 되어주는 것인가에 대해 현명하게 판단하고 그 결정을 향해 한치에 후회도 없이 나아가야 하기에 내가 내려야 하는 판단의 무게가 가볍게 다가 올 수 만은 없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본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좋은 의미의 소중한 존재가 되어주고 되어지는 그런 밝고 따뜻한 날이 항상 길 바라는 마음으로.



-Epilogue-

이제는 내 인생을 함께하고 나의 시간과 공간을 나누며 살아갈 반쪽을 만나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의미 있는 존재가,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


By Minnie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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